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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 May 12. 2020

혐오 사회

모두가 잔뜩 화나 버렸다.

 용어와 현상 중 누가 먼저 태어났을까? 현상이 우선하여 용어가 생긴 걸까, 용어가 우선할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수준의 논의에 용어라 답하고 싶다. 일전에 존재했던 현상들은 우리 곁에 존재하였으나 현상이라 말할 수 없다. 언어로 단정되지 않은 배경에 불과할 뿐 지칭되지 못하였다. 존재하였지만 존재한다고 볼 수 없던 '것'들이 것이 아닌 무언가로 정의되는 순간 용어가 탄생한다. 용어에 걸맞은 현상들이 예시로 다닥다닥 붙으면 사람들은 예시 비슷한 모습들을 가리켜 용어 부른다. 사람들은 단어를 스읍, 흡수해 주변에 있었으나 있지 않은 줄 알았던 것들을 다시금 인지한다. 어떠한 용어를 보면 세상에 무수히 떠다니던 생각들이 뜰채로 잡혀 담기는 모습이 그려진다. 부유하지 못하고 글자에 갇혀 제자리에 진동하는 것들. 글자에 벗어나지 못하는 관념과, 생각과, 현상들.


 그저께였다. 지인과 수다를 떨다 그가 화장실을 간 사이 밀린 톡들을 확인하였다. 단톡방 내용을 슥슥 건너다 한 단어에 시선을 두었다. 어떤 직업을 비하하는 용어였다. 아니, 비하인지 폄훼인지 알 수 없을 수준의 단어였다. 단톡방 사람들은 어떤 사건에 뿔이 나 있었고 분을 이기지 못한 한 분께서 그 단어를 사용하였다. 요즘은 이 사람들을 000이 아닌 XXX라고 부른다더라고요, 000를 넘어 XXX. 몇몇 사람들이 동조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은 침묵하였다. 다음날 모임 이야기 도중에도 직업이 재언급되었다. 한참 마음을 정리하다 주최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친구에게도 하지 않은 속사정을 꺼내야 했다. 주최자님, 저희 가족 중 한 분께서 저 일을 하세요. 화가 나신 멤버들 마음도 너무나 공감하고 저 역시 비판받아야 하는 부분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저 표현을 접하니 제가 너무 무기력해지더라고요.... 주최자님, 저희 가족과 직장 동료분들, XXX 아니에요.


 주최자님께선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셨다. 단톡방에 글을 적어도 되겠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해당 모임은 동종 업계 종사자들이 모인 곳으로 어디에 근무하는지 알 순 없으나 마음만 먹으면 알 수 있는 구조였다. 사건의 발단이 되신 분들과 모임 구성원 대부분이 상사시거나 나보다 연차가 높았다. 톡방에는 모임 이전부터 알고 있던 지인들이 있었으며 그들에게 가족 신상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말을 꺼낸 사람들이 반성할지도 의문스러웠다. 맥락이 바뀐 마당에 구구절절 글을 적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언제 만날지 모를 자들에게 신상 노출을 무릅쓰고 사생활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부당한 일이나 표현을 두고 그건 잘못되었어, 편견이야,라고 곧장 말하던 나였다. 이는 극복하였거나 겪지 않은 일에 한정된 행위였나 보다. 아무런 말을 남기지 않고 단톡방을 나갔다. 정의롭지 못해 도망쳤다. 절이 좋아도 함께 지낼 중이 싫으면 떠나는 거다.


 부유하지 못해 글자에 갇힌 현상들은 용어로 정의되며 용어는 이내 분위기를 형성한다. 신조어의 대부분이 특정 집단을 지칭하거나 어조가 부정적이라면 사회가 그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상징한다. 문제는 뜰채에 잡힌 생각들이 쉽게 풀어지지도 바뀌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루머를 해명할 때 즈음에 루머가 사실처럼 여겨지듯 용어와 표현도 그렇다. @@충이라 정의되면 정말로 @@들이 벌레처럼 느껴지게 된다. @@의 행동들이 '-충'으로 묶여버렸기 때문이다. 용어가 부정적일수록 집단 구성원의 행동들은 부정적으로 보일 것이고 용어와 인식 간 악순환이 반복될 테다.


 싫음, 반대를 넘어 어느덧 혐오로 사회는 향하고 있다.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때 노라고 말하는 목소리와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용기는 우리 시대에 중요하고 가치 있는 자세이다. 하지만 상대를 상처 주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타인을 짓누르고 깎아내릴 때 사이다라 외치고 치켜세우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다. 혐오 표현이 만연한 공간에서 지내고 싶지 않다. 당신이 던진 가시들이 누군가에겐 유머로 소비되겠지만 가시 끝에 매달린 누군가에겐 대못  수 있다. 어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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