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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 May 04. 2020

어정쩡한 편지

크고 작은 폭풍이 가득하였던 삶에 당신같이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긴 옷장 오른 한 켠에는 두 칸짜리 플라스틱 서랍이 있다. 모든 게 다 있는 곳에서 구입하였는데 수납력이 좋아 이번 집에도 데려왔다. 거기에는 손이 자주 가진 않지만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여러 잡동사니 중에서 하양 바구니를 제일 좋아한다. 성인부터 받은 편지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는 상자다. 쓸린 옷자락을 젖혀 윗 서랍을 열면 보물상자를 발견한 소녀처럼 바구니를 쳐다보곤 한다.


 짐들을 욱여넣느라 그간 편지들을 방치하고 있었다. 정리하려고 보물상자를 열었다. 세 달 만이었다. 하나하나 읽으며 편지를 깨우고 보낼 것들과 둘 것들을 구분하였다. 얼추 정리하니 버려지지도 남겨지지도 못한 녀석들이 생겼다. 떠난 사람들이 남긴 편지들이었다.


 발신자들은 보통 내가 떠났거나, 상대가 떠났거나, 자연스레 소식이 끊긴 자들이었다. 실은 떠났다고 정의하였지만 원인이 불분명하며 굳이 꼽자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추억만 가지고 살기에 우리들은 달라졌고 시간은 뒤돌아 오는 방법을 몰랐다. 타인에게 접한 이야기로 재단했다 한들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언제까지나 추측일 뿐인 데다 나도 당신들을 조용히 떠났으니까. 악감정이나 서운함이 생기지 않았다.


 크고 작은 폭풍이 가득하였던 삶에 당신같이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를 깊이 생각하며 위해준 덕분에 많이도 울고 기대어 성장하였다. 지금이 지난 인간 관계보다 안정적이고 최고라고 생각하였지만 이전에도 그러했다. 그 마음이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고마웠다. 언젠가 다시 만날지 모르겠지만 만나게 된다면 고맙다고 두 손 잡아 말해주고 싶다. 변한 시간에 변하지 않는 채로 남아 끈질기게 마음을 붙든 편지에게도 고마웠다. 시간은 유한하고 관계는 분명히 움직인다. 그렇기에 지금이 소중하고 과거가 꼭 더럽지만은 않는 법이다.  어정쩡한 편지들을 바구니 가장 아래 깊숙한 곳에 넣었다.


 이 손을 떠난 수많은 편지들이 있다. 그들이 떠난 사람 곁에 어정쩡하게 기대어 제 역할을 다면 좋겠다. 우리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내가 당신들을 이렇게나 사랑했노라고. 꾸준히 남아 알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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