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동안 구입한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텀블러, 화장품, 가방, 신발... 메모장에 한가득 적어두었던 위시리스트들은 그렇게 비싼 것들이 아니었다. 1~2만원대인 물건들도 많았으며 그보다 가격대가 높은 물건들은 할인 혜택들을 적용해 합리적으로 구입하였다. 그동안 소비를 하지 못한 건 돈이 없어서, 가지고 싶은 물건들이 터무니 없이 비싸서가 아니었다. 마음가짐이 중요했다. 이 정도는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다는 마음.
2. 새 물건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다.
당근 마켓과 중고나라를 만나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 새 제품을 이렇게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니. 새 제품과 진배없는 중고 제품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중고 사이트 하면 사기, 오래된 상품을 떠올렸던 과거를 반성한다. 선물용 신발을 시작으로 중고 사이트를 열심히 들락거리고 있다. 최근에는 운동화와 커피 캡슐을 구입했다. 같은 제품이면 저렴하게 구입하고, 버리긴 아깝지만 사용하곤 싶지 않다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줄 수있는 곳. 중고 사이트는 이용만 잘하면 좋은 플랫폼 같다.
3. '예전부터'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 만족도가 높다.
당근 마켓 3일 차였나. 바디 미스트 세트에 눈이 꽂혔다. 주변으로부터 좋다는 평을 들어본 제품으로 국내에선 구할 수 없었다. '남들 다 써 보는 거 나도 써보자!' 퇴근길 지하철에서 판매자와 연락을 취했다. 1시간 뒤 바디 미스트 4종 세트가 손에 들려 있었다. 계획에 없었고 시향도 해보지 않은 소비였다. 넷 중 하나라도 맞으면 득템일 터. 괜찮은 소비라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네 향 모두 취향에 맞지 않았다. 전. 혀. 진하고 오래가는 향을 좋아하지 않는데 바디 미스트들은 미스트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존재감을 뿜었다. 디퓨저용으론 괜찮을까 화장실에 뿌려봤지만 어찌나 강한지 화장실 입구를 뚫고 방 안에 향이 진동했다. 괜찮지 않은 소비였다. 결국 75ml짜리 디퓨저들은 일주일째 재 당근 중이다.
오래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물건들은 길게 고민해서 그런지 결과가 만족스러웠다. 손이 자주 가고 쓸 때마다 기분이 좋아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반면 충동적으로 구입한 제품들이 주는 기쁨은 잠시였다. 소비 자체로 즐거워지기보다 소비한 물건으로 즐거워야 현명한 소비다. 그러니 제 바디 미스트, 가져가 주시면 안 될까요.
4. 구매에 신중해진다.
이전까진 남은 돈으로 사치품목을 샀다면 이번에는 살 수 있는 돈을 미리 책정해 보았다. 수입의 n퍼센트 내에서 자유롭게 소비하되 남은 돈은 다음 달 소비 예산에 이월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소비 가능 금액이 매 달 정해져서 그런지 한 번 살 때 잘 사려 한다. 구입한 물건을 얼마 사용하지 못하면 몇 개월 뒤에 다시 사야 할 수 있다. 반대로 말해 좋은 제품을 길게 사용할수록 다른 범주의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예산이 확보된다. 만 원 이 만 원 아끼려다가 한 철도 넘기지 못하고 버린 제품들이 얼마나 많은지. 얻고자 하는 물건들의 품질과 디자인, 향후 사용 여부를 찬찬히 살피게 되었다. 당장은 돈을 더 주더라도 멀리 보면 낭비를 아끼는 소비임을 이제는 안다.
5. 소비가 줄었다.
원하는 것들을 손에 얻는데 소비가 줄었다. 잔고에 큰 변화가 없다. 이상하다. 가계부를 잘못 썼나? 카드 어플로 내역을 확인해도 똑같다. 항목별로 뜯어 살펴보았다. 아, 식비와 생활비 지출이 전월보다 줄었다. 전 달이나 이번 달이나 나는 잘 먹는다. 과자를 끊지도 않았다. 대신 불필요한 음식을 쟁여두지 않게 되었다.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을 살 때를 제외하곤 냉장고와 서랍에 있는 음식들로 끼니를 챙기고 있다. 그런데도 서럽다거나 불편하지 않다.
소비 총량의 법칙 이랬던가. '사치'로 분류해둔 물건들을 구입하지 않은 대신 '사치가 아닌' 물건들을 사며 소비하고 있었다. 어차피 먹을 빵들, 냉동 보관할 수 있는 마카롱들, 쟁여둬서 손해 볼 것 없는 청소 용품... 이들은 당장 필요하지 않지만 사치품도 아닌 생필품이었다. 생필품을 구입하면서 소비 욕구를 분출하고 이러한 소비에 합리화했다. 쓰지 못하고 먹지 못해 버려지는 양들을 무시한 채.
원하는 것들을 조금씩 구입하면서 지출 습관이 고쳐졌다. 더는 불필요한 소비를 필요한 소비로 포장하지 않는다. 필요한 소비로만 가계부를 채우고 있다. 소비 총량의 법칙을 다른 방식으로 지키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