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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 Nov 15. 2020

빼빼로와 아메리카노

익숙하고 익숙한 맛

 두 어 달 만에 엉덩이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바쁘기 그지없던 한 달을 보내고 덜 바쁜 한 달을 보내는 동안 바쁜 만큼 공허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고 하고 싶은 줄 알았던 일 마저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생기기까지 하면 머리가 아득하고 혼란스러워진다. 나의 경우 당장 다음 주 금요일까지 중요한 글을 써야 하고 그전에 다른 일들을 해야 했다. 중요한 과업과 해야 할 일을 병행하면 되겠지만 인생사 어디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나. 둘 중 하나 제대로 완료하지 못하였고 조바심에 사로잡혔다. 모름지기 글쓰기란 엉덩이 싸움이라 믿는 나는 마스크와 아이패드를 챙겨 동네 카페로 왔다.


 동네 카페라 해서 숨겨진 맛집이라던가 인테리어가 기가 막히게 예쁜 곳은 아니고 흔한 프랜차이즈 가게이다. 혼자 시간을 보낼 때는 프랜차이즈를, 친구와 담소를 나눌 때에는 개인 카페를 찾는다. 개인 카페는 사장님의 고유한 감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어 같은 아메리카노가 같은 아메리카노가 아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곳은 잘 볶아진 원두로 만들어진 커피로 운을 띄워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말하자면 대화의 시발점이다. 한편 프랜차이즈는 어떠한가. 세상 어디를 가도 익숙한 인테리어와 메뉴를 고수하며 혀가 아는 맛이 상주한다. 홀로 있는 날엔 적당히 북적거리고 가까운 곳이 새로운 데보다 낫다. 언제든 동일한 맛과 향을 선사해주는 그곳에 4100원을 지불했다.


 옆 테이블 손님이 두 번 바뀔 때까지 앉아 있다가 세 번째 손님이 올 때 화장실을 다녀온 참이었다. 글이 써지지 않고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고 있던 뜨개질 거리를 꺼내 모자를 만드는데 코가 자꾸 빠져 세 번이나 실을 풀었다. 정한 만큼 읽고 쓰기는 물 건너간 듯했다. 집으로 가고 싶다는 충동이 넘실거렸지만 지금 들어갔다간 정말 무엇도 하지 않을 게 뻔했다. 엉덩이에게 작전 타임을 외치고 아몬드 빼빼로를 꺼냈다. 5일 전 빼빼로데이 세일 기간을 노려 저렴하게 장만한 녀석이었다.


 껍질을 북 찢고 과자 부분을 집어 오독, 오독 씹었다. 나무색 막대기와 함께 아몬드 조각이 입 안을 채웠다. 일반 빼빼로를 먹을 땐 초콜릿이 달게 느껴졌는데 아몬드가 더해져서 그런지 단맛이 중화되었다. 그래도 달다 싶으면 아메리카노를 쪽 마셔 익숙한 맛에 익숙한 맛을 더했다. 공허한 마음이 900원짜리 과자로 채워지고 아득했던 머리가 조금 정리되었다. 혼자 보내는 날에 프랜차이즈 카페를 찾는 건 단순히 가깝고 적당히 북적거려서가 아니라 혼란으로 과부하된 뇌에 익숙함을 끼얹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익숙한 향과 빛에서 안정을 찾으니까. 익숙한 아메리카노와 익숙한 빼빼로를 음미하며 생각했다. 에잉  속도대로 하지 . 인생사 어디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되나.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거였으면  세상에 글쟁이들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에 남은 초코맛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금 액체를 들이켜고 이렇게   만에 글을 썼다.

 4시간 30 겨루기가 어땠냐고 묻는다면 ‘졌지만  싸웠다 말할 것이다. 해야  일과 중요한 글을 생산해 내지 못해 명백하게 져버렸지만, 내일의 나와 모레의 , 금요일까지의 내가 얼마나 고생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만  싸웠다.   만의 엉덩이 결투에 무려  시간이나 버티지 않았는가. 3 만에 들춰보는 중요한 글과 주간 행사로 돌아오는  정도는 뚝딱 해낼  있을 것이다. 그래도  풀리지 않아 머리가 지끈거려지면 다시 익숙한 빼빼로와 익숙한 아메리카노를 찾아 되뇌일 것이다.  속도대로,  속도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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