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퇴사만화 Feb 27. 2021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녹음만 3번을 했다

조리를 밥 말아먹는 썰

팟캐스트의 시작은 지난 늦여름이었다. 책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호기롭게 시작은 했는데 막상 해보니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왜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는지 그 근본 없는 충만함에 놀랄 정도였다.


함께  이야기를 해보자고 꼬드긴 이서수 작가님께 죄송스러워질 정도로 우리의 기획은 오래도록 답보 상태였다.  번을 녹음을 했는데, 기획+구성+편집이 우리에게 무리가 있다는 것을 녹음을 마치고 헤어질 때면  수면 위로 올라와 우리를 무력하게 했다.  모르고 뛰어든 거다. 무식하면 누가 용감하댔나. 우리는 무식해서 개고생을 반복했다.


기획의 어려움은 주제가 전문적이다 보니 대본 쓰기가 오래 걸린다는 거였고, 편집의 어려움은 음향기기와 음향 편집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루기 힘들다는 거였다. (너무나 어려웠다. 음향은 모든 부분에서 내 예상을 뛰어넘는 예민함과 날카로움이 속출했다) 또 생업이 있는 우리가 일주일에 한번씩 만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작도 전에 꾀가 났다. 봄에 나 캠핑 못 가면 어쩌지, 하는.


그래서 다시 한 달여의 휴지기를 가지며 우리는 가획과 녹음, 편집 방식을 바꿔나갔다. 소설을 전문적으로 소개하지는 데에서 신간으로 범위를 넓혔고, 매주 둘이 수다를 떠는 형식에서 격주 각각 진행을 한 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방식으로 서로가 숨을 고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편집을 맡은 나는, 어려운 오디오 편집 시스템을 버리고 손에 익은 유튜브 편집 방식으로 진행을 하기로 했다. 그러자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막상 녹음에 들어가자 세 번 녹음을 하고 만 나... 이유는 웃기고 싶어서고, 책 얘기할 때는 김영하 선생님처럼 지적으로 보이고 싶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저 나였으니, 어설프고 횡설수설은 기본이었다.


누가 쥐어주지도 않았는데 마이크를 잡은 돌잡이 진행자인 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힘없는 종결어미, 과한 겸양체였다. 누가 나를 겸손한 여자로 만들었는가!!!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그다지 활발하지도 다정한 타입의 유형의 인간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 제 일에만 성실한 둔한 사원이었다. 그런 내 성향은 나긋나긋하고 유머러스한 막내를 바랐던 상사에게 눈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제 나름 택한 것이 말이라도, 느낌이라도 공손하게 하자는 전략이었다. 겸손하고 주눅든 어투는 그 환경 때문에 만들어진 것 같다. (사실 그 분이 어려워서 해야 할 말을 하는 것도 어렵긴 했다) 그래서 녹음을 하며 과하게 겸손하다고 느껴지는 말투 ‘~부탁드립니다’, ‘~좋겠습니다’, ‘~같습니다’를 의식적으로 줄여나갔다. 동사형에 신경을 몰빵했더니 이번에는 명사형과 부사형이 왜 자신에게는 소홀하냐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약간’, ‘좀’, ‘진짜’, ‘정말’, ‘제가’ 같은 쿠세도 왜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지. 한평생 마이크를 쥘 일이 없다 보니 말의 어휘는 글의 어휘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쪼그라든 상태였다.


그래서 밤만 되면 마이크를 설치하고 노트북을 켜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


마침내 더는 녹음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목의 체력이 너덜너덜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에 웃기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게 되었다. 나는 첫 녹음에서 두 권의 책을 소개했고, 그 책과 관련된 작가님과의 소소한 인연을 전하기도 했다.


그 책들은 요리 에세이 <경양식 집에서-피아노 조율사의 경양식집 탐방기>, 타임리프 sf 소설 <그날 그곳에서>다.




둘 다 누군가의 소개를 애타게 기다린다는 운명적인 필이 왔다. 모든 책이 많은 사람들에 눈에 뛸 수 없다 보니 책들은 언제고 누군가의 호명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신세다. 리뷰가 많이 올라오는 책들의 경우, 순수한 리뷰도 있지만 마케팅이 태반이고, 그러한 마케팅에는 비용이 발생된다는 것쯤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가능한 선택되어지기를 기다린다는 느낌의 책을 선정해 책을 골랐고 (그럼에도 너무 취향적 선택이지만) 아주 재밌게 두 책을 읽었고, 팬심과 사심으로 44분을 떠들어댔다.


그렇게 팟캐스트의 첫방이 무사히 편집이 되었고 지난 목요일 공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도움도 받았고 (과읽남 피디님께 감사를) 응원도 받았다. 모두 유튜브를 통해서 만난 분들이다. 나는 사실 이분들의 격려와 응원의 댓글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져왔다. 나란 인간의 작은 그릇을 이분들이 채워주고 넓혀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도 무엇으로든 보답하고만 싶어지는 밤이다. 부족함은 지지로 채워진다는 것을 또 한 번 배운다. 내가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겪어보지 못했을 너른 마음이다.




*팟빵 채널 올려둡니다. 팟캐스트와 네이버오디오클립은 승인 대기 중이라 며칠 소요된다고 합니다. 유튜브에서도 일부 간편히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s://m.podbbang.com/channels/1779043


https://youtu.be/TJ9YeoCbeEM



작가의 이전글 책기획자의 사적인 노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