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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만화 Sep 22. 2021

시집을 간다는 말부터 바꿉시다

출가외인이라니요!!!


사촌이 결혼을 해서 몇 년 만에 누군가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그 몇 년 사이에 내 생각도 부쩍 바뀌어 있어서인지 결혼식의 여러 면에서 거스리는 포인트가 있었다. 그 기이한 기류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시집간다’ 워딩에서 느껴지는 바이브였다.


이번에 새롭게 깨달은 사실인데 스몰웨딩으로 하든, 웨딩홀에서 하든 형식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결혼식의 메시지, 즉 알맹이가 그 행사의 전반을 좌우한다. 그러니 인스타에서 핫한 곳에서 굳이 할 필요는 없다. 어디서든 두 사람의 주체적인 결정과 결단이 있으면 그 행사는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러니깐 나는 시집 가는 게 아니라는 거지! 그것을 보여주는 자리를 만들자는 거지! (내가 한다는 건 아니고ㅋㅋ)


이번 결혼식은 주례가 없는 결혼이었는데, 전반적으로 여성을 남성이라는 가장에게 인계하는 형태의 워딩이 종종 사용됐다. 아마도 고모부도 신부측 집안도 학습된 관습에 의해 그런 표현을 사용하고 분위기를 만들었을 터인데, 가정의 주체는 결국에 둘이고, 이 둘은 하나가 될 필요가 없으며, 결국 각자의 인생을 각자가 책임지고 나아가야 한다. 여성은 시집을 가는 게 아니라 그냥 결혼을 하는 것뿐이다. 그 결혼으로 바뀌는 건 있다? 없다? ‘없다’가 나의 답이다. 정체성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책임과 짐이 늘었을 뿐이지.


그런 관점에서 신부 아버지가 신부를 신랑에게 건네주는 것도 싫다. 아빠의 슬하에 있다가 이제는 남편의 슬하로 보내는 것 같다. 여성을 남성의 보호 아래에 있어야만 하는 존재로 보는, 오랜 구습의 잔재다. 우리 아빠는 관종이라 평생 이날만을 기다렸을 위인이라 이걸 하지 않겠다고 하면 날마다 섭섭 소리를 할 사람이다. 그렇다면 엄마아빠오빠남동생, 원가족의 손을 다 잡고 들어갈까. 맞짱 뜨자는 마음으로! (내가 한다는 건 아니고 그냥 상상 중ㅋㅋ)


결혼식에서 이런 주례는  기지만,

언제든 아니다 싶으면 돌아와라!

집안의 모든 책임은 둘이 나눠서 지는 것이므로

집안일에 있어서도 동일한 책임을 진다!

서로에게 충실하되 충만하게 각자의 인생을 살아라.

인생의 모양은 다양하고

어떤 모양으로 살아도 괜찮으니

네가 행복한 삶을 택해라!

누구의 희생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그리고 부모의 서약이 있었으면 좋겠다.

1. 자녀가 이룬 가정을 존중하고 분리해서 생각한다

2. 며느리에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구습을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알맹이가 있는 결혼식을 보고 싶다. 축제 같고, 진짜 페스티벌 같은. 모두가 유쾌하고 모두가 행복한 다짐을 하는 자리. 완전히 원가족과 새로운 가정이 분리되어 나아가는 그런 자리.


그래서 명절 아침 밥을 먹으며 부모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별나다” 소리를 들었다.


아빠가 몇 초 생각을 하더니

“그럼 우리 집에 신랑이 시집 오는 걸로 할까” 해서

차라리 그게 낫겠다고 깔깔됐다.


부모가 자녀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남편이 신부의 인생을 구원해줄 수 없다.

시집을 가는 것도, 장가를 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두 사람이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 것뿐.

그 메시지가 생생한 결혼식이 많아지면

좀 더 결혼 제도에 마음이

열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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