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혼 숙려 캠프라는 리얼리티 쇼를 보고 있다.
아이들 앞에서 심한 막말과 몸싸움, 괴성과 괴물 같은 눈빛으로 서로를 잡아먹으려 하는 모습과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로 칼싸움을 하는 것 같은 부부의 모습을 보며 적지 않게 놀랬다.
어떻게 저런 여자가 엄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정서가 저 가정에서 과연 얼마나 정상으로 자랄 수 있을까? 정말 미친 여자 같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 여자를 욕하면서 그 프로그램을 봤다.
그런데 갑자기 뒤통수를 뻥 맞은 것 같았다.
친구들과 그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는 도중, 우리 모두에게 그런 모습이 있다며, 너도 얼마 전에 그러지 않았었냐고 나를 지목하며 한 친구가 농담했다.
그런데 그 말이 너무 인정이 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아들 친구가 놀러 왔는데도 화가 나 흥분해서 소리 지른 사건이 있었다. 나는 스스로가 ‘지랄병’이 걸린 여자라고 표현할 정도로 남편에게 화를 냈었다. 아이들은 친구에게 그 모습을 보여줘 부끄럽다고 말했고 딸아이는 아빠 엄마가 꼭 곧 이혼할 것 같은 싸움이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슬픈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그 정도로 소리 지르며 말하지 않았는데 소리가 조금 들렸나 보다, 애들이 내가 하는 육두문자는 듣지 못했겠지, 그날 남편이 나를 열받게 해서 어쩔 수 없었다며 나의 행동을 합리화했었다.
자기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며 ‘자기가 아닌 것 같다. 저 정도인 줄 몰랐다.’라고 말했던 이혼 숙려캠프의 여자를 보며 나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어떻게 자기가 행동하고 말하는데 그것을 인지를 하지 못할 수 있나? 그 여자의 변명이고 합리화며 그녀의 거짓말이라 생각했었는데,
나도 스스로 합리화 한 그날의 행동을 영상으로 찍어두었다면, 이 여자와 내가 같은 모습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그 말에 동의했고 인정이 되었기 때문에 진짜 가슴이 철렁했다.
욕했던 그 여자의 모습이 적나라한 내 모습이었다.
아니, 그 여자가 나였다.
‘자식이 있는 앞에서 어떻게 저렇게 아이들이 불안하게 행동하나? 남편을 함부로 대하는 미친 여자다.’ 했던 그 모습이 내가 우리 남편에게 했던 모습이었고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 앞에서 해왔던 모습이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다. 하는 것은 순전히 내 착각이고 내 거짓말이었다.
다시 가슴이 철렁했다.
범죄자를 거칠게 욕했고, 그룹을 지어 다른 사람을 험담하며 나는 착한 사람이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나는 그보다 나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 나쁜 인간과 내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내 자신을 모르고 다른 사람들에게만 높은 기준으로 나만의 잣대를 대 이리저리 잘라대며 정죄하고 가르치려 했었나 생각하니 부끄럽고 죄책감이 들었다.
최근 내가 우는데 꼭 예수님이 내가 미워하던 친구를 가엽게 여기시며 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은 이상한 경험을 했다. 울던 내 마음이 그 친구에게 완전한 이해와 사랑으로 변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 친구를 위한 주님의 눈물’이 아니라 ‘나를 보시며 흘리신 눈물’이었다.
나에게 못되게 굴었던 그 친구를 지으신 이도, 아이들 앞에서 소리 지르고 남편을 무시하며 폭력적으로 굴던 나를 지으신 이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사람도 범죄자를 지으신 이도 주님이시다.
사랑하는 자녀가 주님 없이 사는 모습에, 즉 사랑 없이 사는 모습에 주님이 가여워 우셨던 것이다.
사랑 없는 나를 위해 우셨고 나는 그것을 본 것이다.
예수님이 그 친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그 눈물로 깨달았다 생각했는데, 그 눈물은 ‘사랑’없이 사는 내가 가여워 흘리신 나를 위한 눈물이었다니...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주여, 주여’ 하고 외쳤지만 단 한 번도 내 마음 중심에 모셔드리지 못했는데 어제 겨우 처음으로 주님이 내 중심에 계신 것을 보았다.
완전히 내 마음에 들어오셨기에, 나는 울었고 친구를 진정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진짜 예수님의 임재를 느낀 것이었다.
내게 대단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사랑이 내 마음에 이제야 온전히 들어왔다.
이제야 온전히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셨다.
어렴풋이 진단받았던 내 많은 문제들을 이제는 본격적으로 주님이 회복하시게 되겠구나. 기대가 된다.
내 마음의 단단한 교만의 성을 허물고 드디어 주님의 성전이 다 지어져 이제야 내 마음에 주님을 완전히 모실 수 있게 되었다. 주님이 계시는 내 마음이 ‘사랑’으로 부드러워졌다.
[에스겔 11:19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실 때, 우리의 마음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돌 같은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이제는 주님과 동행하며 실시간 소통하며 매 순간 주님과 대화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
주님이 내 마음에 온전히 임재하셨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