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장 37절- 3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너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첫째, 주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씀은, 모든 순간에 예수그리스도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
둘째, 늘 집중하는 단어는 네 이웃을, "너 자신같이", 사랑하라. 나 자신을 먼저 제대로 사랑해야 나의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나 자신을 어떻게 제대로 사랑하게 될까?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부터 혈액형, 별자리, 성격 테스트, 운세등 자기 자신을 참으로 알고 싶어 한다.
요즘은 MBTI가 만연해,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때, 꼭 이 테스트의 결과를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결과는 때에 따라, 기분에 따라 다르게 나온다.
이것은 확률이지, 정확한 내가 아니다.
내가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한 가장 정확한 방법은, 다시 마태복음 22장의 첫째 계명으로 올라가야 한다.
주님을 내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할 때,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면 알수록, 내가 누군지도 정확해진다.
예수님과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나를 창조해 주신 창조주이며, 내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는 심판자인 주님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오직 예수님의 거울 앞에 서야만 참된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두 계명은 동시에 일어난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면 나를 알게 되고,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내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그를 사랑하게 된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교집합 안에 '나를 알고 나를 사랑하게'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나를 안다는 것은, 예수님의 기준에서 내 목적이 무엇인지,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주님이 만들어주신 이유는 계획에 실수가 없으신 주님의 계획이고 비전이기에 주님 안에서 나는 그가 만드신 걸작품이고 완벽하고 완전하다.
하지만 세상은 이것과 반대로 절대 기준이신 하나님을 벗어나 '다른 사람'을 통해 내 정체성을 확립하라 말한다. 내가 이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고 내가 원하는 상을 만들고 무엇이든 그대로 될 수 있다고 나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나 어른들, 친구들, 내 주변이 평가하는 나를 통해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생각한다. 또, 사회에서 소위 '이런 이런 사람이 인기가 많고 사랑을 받는다'는 국률같은 것이 있어 스펙을 쌓고 성형을 하며 남들보다 우위에 서려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세상의 기준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피조물이고 변화무쌍하고 모두 하나님의 다른 목적으로 지어졌기에 다를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다르게 태어난 인간을 어떻게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가?
그러니 타인을 통해 왜곡된 자아상을 가지고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도 그런 사람인 줄로만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니면 자기가 생각하는 좋은 기준이 있어서 그것이 닮고 싶어 자신을 미워하고 학대한다. 그 기준에 닿기 위해 성형수술,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며 '~누구처럼'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해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이 구매하는 고가의 제품이나 브랜드를 구매해 그와 같은 사람이 되는 착각에 빠지기도하고 내가 가진 것들을 ‘좋다, 나쁘다’ 끊임없이 판단 평가하며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하기도 하고 감추려 하기도 하며 거짓말을 할 때도 있다. 또, 반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지나치게 드러내려 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내세우기도 한다.
인간은 서로 지어진 목적이 다르기에 서로가 서로를 기준 삼는 것이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하는 서로의 거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려 하니 우리 자신을 잘 모를 수 밖에야...
자기에게 필요한지 아닌지 분별하지 못하고 세상 풍조가 이리 가면 이리로, 저리 가면 저리로 왔다 갔다 하며 바쁘게만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그래서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서 가져지는 책임감도 없고 자기 절제도 없다.
예수님의 거울 앞에서 내가 누군지를 똑바로 알고 내 목적이 분명하다면, 세상풍조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대신 내게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먼저 분별할 수가 있다. 자신을 위해 선택하고 절제하며 자신의 목적에 대한 책임감이 높아질수록 '자신을 알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
가만히 보면 믿음, 사랑, 자유, 평화 중에 책임과 절제가 따르지 않으면 그 어느 것 하나도 완성되는 것이 없다.
이렇게 진정으로 예수님과 나를 똑바로 알고 사랑하게 되면, 다른 사람도 똑바로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각자의 다양성과 다양한 목적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비교하지 않는다. 내가 죄인이라 주님이 내게 필요한 존재가 되시듯이 다른 사람에게도 예수그리스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에게 상처 주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알지 못해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 화를 참고 용서할 수 있다.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기도하게 된다.
주님의 계명대로 이웃을 사랑하고 참아주고 용서해 주고 어려운 이웃을 살피고 도와주는 일도 할 수 있다.
내가 주님을 붙잡고 매일 회개할수록 다른 사람의 잘못도 이해되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내 옳음의 기준'에서 벗어나 '죄성의 나'를 통제하고 절제하는 능력과 힘을 주신다. 무엇보다 주님의 자녀로서, 내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기에 '책임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 갈등하고 단절하는 선택에서 벗어나 화해하고 화평하고 평화를 지향하며 살게된다.
우리는 절대로 우리의 의지로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문제가 '내가 나를 잘 안다'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잘 안다'라고 생각하기에 '내 방식대로 사랑' 한다. 그래서 서로 기대하고 실망하고 화를 낸다.
아무리 어떤 한 사람이 상대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려 해도 인간의 의지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아무리 노력하고 상대를 맞추지만 계속 다투기만 하고 사랑한다 하면서도 서로에게 상처만 준다.
하나님 없이 나를 알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을 알 수도 없다.
내가 판단하는 내 자신과 타인은 오염된 본성과 이 세상의 죄성으로부터 세뇌된 왜곡이고 거짓말일 뿐이다. 이 거짓말에 속아 예수님을 제대로 알 지 못하니 주님을 사랑할 수도, 나를 사랑할 수도 없고 상대를 사랑할 수도 없다.
인간관계에서 이런 문제가 있다면 자기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제대로 상대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구나 깨닫고 주님 앞으로 나와 회개부터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