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manf Nov 16. 2024

104. 내 정체성과 세상의 거짓말

마가복음 14장 61-62절,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자기의 정체성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고 밝히신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다.

마가복음 14장 63-65절,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오

그 신성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한 사람의 정체성은 나를 만드신 분, 창조주 앞에서만이 온전히 드러난다.

창조주는 분명히 나를 목적대로 지으셨고 목적에 맞게 지으셨기에 그 목적대로 지은 나는 주님의 걸작이다. 

나는 주님의 작품이기에 하나님 형상으로 닮았고 천하 만물보다 주님이 나를 귀히 여기시고 인도하시고 공급하시고 베푸신다. 

주님이 나를 귀하게 여기시는 증거는 내가 죄성에서 태어났지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을 알고 믿으며 내가 죄인 되어 몰랐을 때부터 나를 구원하셔서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 것이다. 나의 죄를 주님이 대신 받고 값을 치르셨으며 피로 영원히 나를 구속하셨다. 그리고 성령으로 내 안에 함께 계시며 죄에 대해 죽고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하셔서 내가 성령으로 진리에 눈을 뜨고 성경을 이해하고 말씀과 기도로 영적으로 양육받고 가르침을 받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나에게 거짓말을 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라 하고 네가 세상에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이런 것들을 소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사랑받고 인기 얻을 수 있는 일에 힘쓰라고 말한다.

그 거짓의 세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고 비교한다. 그것이 세상의 절대적인 기준이다.

네가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라, 자신의 가치를 위해 이것을 가져라,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이런 이런 일을 하라.

이 세 가지 기준은 세상의 풍조와 유행에 따라 변한다. 변하는 것이 어떻게 기준이 되는가? 세상은 시시각각, 장소에 따라 강점, 약점/ 성공, 실패를 나누고 다양한 비교할 수 있는 카테고리를 나누어 사람들을 나누기에 바쁘다.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고유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각 목적과 가치가 중심이 아니다.

그들은 각 사람의 고유한 정체성보다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 어떤 것을 소유해야 가치를 인정받는가와 요즘 사람들이 사랑하고 인정받는 것을 가지고 있는가의 기준에 따르기에 사람들 보고 그 기준에 따라 열심히 살라고 가르친다.


나는 하나님께 이런 가치를 부여받고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라고 말할 때, 세상은 '하나님 같은 소리 하네', 하면서 무작위로 세상 기준으로 쉽게 낙오자로 만들고 조롱하고 모욕을 주며 쓰레기 치우듯 사람을 치워버리며 주목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사람에게 신성모독, 미치광이나 나쁜 사기꾼, 고리타분한 사람, 쓸데없는 종교인이고 욕을 한다. 우리 사회가, 이 세상이 한 사람의 소중한 정체성에 대해 얼마나 폭력적인가?

자기들의 세상 기준으로 쓸모없는 사람으로 프레임을 씌우고 언어폭력을 하며 한 영혼을 말살한다.

이것은 결코 사이코패스와 다르지 않다. 

사이코패스는 소위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과 자신을 구별하고자 생긴 용어일 뿐, 지금 이 모든 세상 사람들이 사이코패스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은 타인을 통제, 지배하려는 부분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 타인의 가치에 대해 절대 기준이 아님에도 세상의 기준 세 가지로 사람을 판단하고 그 사람을 함부로 그 기준에 맞춰 단정 짓고 취급하고 스스럼없이 언어폭력을 하며 고통을 주고 존중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없이 자신이 타인을 지배하고 통제권을 얻는 것에 만족하는 세상.

그것은 자녀의 개성을 무시하고 세상의 기준을 강요하는 부모가 될 수 도 있고, 자신의 생각이 옳고 결정을 따라야 맞다고  강압하고 권위적으로 구는 배우자가 될 수도 있다. 

물리적인 살인만 하지 않았지, '사랑한다'라고 하면서 상대의 고유하고 소중한 정체성은 짓밟고 자신이 상대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자기 마음대로 끌고 가려는 가스팅이나 세상 기준에 맞춰 한 사람의 가치와 개성을 잘라대며 영혼을 죽이는 것 또한 살인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하는데 강요하고 한 사람의 뜻과 계획대로 밀어붙이는건 절대로 사랑이 아니다. 상대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죽이는 것이다.

인간이 그 어떤 다른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정의하지 못한다.

오직 인간은 각자 예수님 앞에서만이 우리의 궁극적인 존재의 목적과 이유,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가? 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3. 죄는 발가벗은 몸으로 시선을 이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