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의 나무를 보며
나무는 농부가 씨 뿌려 놓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그곳이 어디인지 불만을 품거나 좋은 곳으로 가는 꿈 꾸지 않고 거기 그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일에만 집중한다.
그곳이 어디든, 그 환경에서 자라고 보고 듣고 느끼며 경험하고 세월은 흐른다.
시간이 흐르듯 계절도 흐른다.
한겨울 뚫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생명의 찬가를 부른다. 무성해졌다가 화려했던 나뭇잎이 떨어지고 앙상하게 말라버리고는 겨울잠을 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다시 떠난다. 다시 돌아온다…
상처받고 다시 회복하고를 반복한다.
그렇게 자란 나무는 새들의 둥지가 되고 덥고 힘들 때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이 된다.
생명을 먹이는 열매를 맺고 사람들에게는 목재가 되어 그들이 사용하는 가구, 그들이 사용하는 집을 주기도 한다.
떼여서 먹이고 잘려서 내어주고, 잘린 자리는 앉을 수 있는 그루터기도 준다.
또 자라고 또 내어주고 또 만들어 내고 또 내어주고
그렇게 나무 한 그루는 농부의 목적 따라 씨 뿌려져 그 자리에서 태어나 세월을 지나고 언젠가 뿌리가 다 뽑힐때까지 내어주고 회복하고 내어주기를 반복하며 역사를 만든다.
그 자리에 뿌리를 박고 있어 주는 사람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모르겠다.
일상에 강하게 뿌리박고 언제나 거기 있는 사람, 거기에서 내게 그늘이 되어주고 생명의 열매를 내어 주고 내가쉬고 보호받을 집과 내가 편안하게 쓸 목재를 주고도 내게 앉을 그루터기가 되어주는 그 사람.
내게 다 주고도 즐거워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부지런히 회복하고 열매 맺고 성장하고 그늘을 만들어 내는 그 사람.
그 사람에게 받은 사랑을 먹은 사람들은 그 사람의 사랑을 온 세상으로 데려가 세상 모든 곳에서 살게 한다.
나무는 그 자리에서 뿌리 뽑혀 죽어도 이미 그의 사랑의 씨앗은 온 세상을 누비며 자라고 있다.
그렇게 내어주는 나무는 평생을 산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저 일상에 뿌리박고 성실히 자라서 세월과 계절을 맞으며 열매 맺고 내어주는 일만 했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