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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채식인 Dec 22. 2020

먼저 이해가 필요해

나를 이해 해달라고 하기 보다 남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채식을 시작한 지 1년이 가까워질 무렵 나는 한 가지 고민을 안고 있었다. 가족, 친구들 사이에서는 채식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하고 실천도 잘 했지만, 회사에서는 채식을 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회사에 이야기하면 왠지 왕따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은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을 하고 있는 아내는 회사를 다니는 동안 본인이 채식을 한다는 이야기를 결국 하지 못했다.


하루는 지인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런 고민을 말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한참 듣던 지인은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그냥 이야기해, 그게 뭐 하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래. 그리고 말을 해야 네가 채식을 오래 할 수 있어."라고 했다. 그리고 "건강은 알아서 챙겨야지, 남이 챙겨주는 것 아니야."라고 덧붙였다. 순간 내가 문제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채식을 시작한 계기와 목적은 아내의 암 치료와 가족의 건강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혹시나 회사 내 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채식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그 다음날부터 회사에서 상사와 동료 등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있을 때마다 채식을 시작했다는 말을 했다. 일부러 말을 먼저 꺼내진 않았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 내게 이유를 물어보면 채식을 한다고 대답했다.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지만 우려한 일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도 했다. 피곤하게 산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야, 인생 그렇게 길지 않아. 너무 피곤하게 살지 마라." 저녁 술자리에서 맞은편에 앉은 상사 한 분이 이야기했다. 다들 고기를 구워 먹으며 저녁 식사를 하는데 순두부찌개를 시켜놓고 먹는 내가 눈에 띄였나 보다. "그래도 술은 조금 하잖아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웃어넘겼다.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도 생겼다. 그중 평소 나름 가깝게 지낸 사람들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들에게 서운했다.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채식을 하는 것처럼 그들도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있으면 음식 선택의 폭이 좁아져 괜히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식습관이 달라진 나를 그들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과의 불편한 거리도 얼마 가지않아 다시 가까워졌다. 그러는 사이에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도 생겼다.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몇몇 직원들이 찾아왔다. 채식을 하면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는지 물어보기도 했고, 자신도 가끔은 채식을 한다며 직접 싸온 고구마나 과일을 나눠주기도 했다. 먼저 점심 식사를 함께 하자며 내가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는 식당을 예약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채식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누구나 채식이 좋다는 것 또한 안다. 단지 아직은 소수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직장에서 말하는 것을 주저할 뿐이다. 유난 떤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는 때로 고무줄과 같다. 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한다. 과거의 나는 내가 먼저 남을 이해하기 보다는 남이 먼저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랬다. 욕심이다. 이런 마음이 혹시나 남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멀리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을 만들어냈다. 내 가족의 건강을 위해 시작한 채식을 방해했고, 회사 내 동료들에 대한 서운함까지 느끼게 했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다. 나름의 이유로 채식을 시작한 스스로를 상대방도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이 사실을 알면 괜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잠시 멀어졌던 사이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새 다시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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