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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민 스님 Apr 22. 2019

따뜻한 햇살 같은 포옹


혹시 이런 말 들어보셨나요? 누군가가 나를 아주 따뜻하게 안아주면 내 생명이 하루 더 연장된다는 말이요. 물론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 확인해볼 방법은 없지만 아마도 어떤 의미로 이런 말이 생겼는지 다들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살면서 세상에 치여 상처받고 힘들 때 누군가 나에게 왜 힘든지 그 이유를 구구절절 논리적으로 설명해주는 것보다, 그냥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따뜻하게 안아주는 포옹이야말로 더 큰 치유의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너의 아픔을 내가 대신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네 편에 서서 이 힘든 순간을 내가 도망가지 않고 함께하겠다는, 몸과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표현이 포옹이지요.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저는 서양 사람들의 인사 방법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머리를 공손히 숙이면서 하는 우리전통 방식의 인사가 아니고 고개만 살짝 끄덕인 후 “헤이.”라고 말하면서 걸어가는 친구 간의 격의 없는 인사, 악수를 하되 그냥 살짝 손만 잡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적당한 세기로 잡는 법 등을 배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인사 방법 중에 저에게 익숙해지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사실 포옹이었습니다. 특히 승려가 되고 난 뒤에는 공손히 두손을 모으는 합장 인사가 아닌, 두 팔을 쫙 벌리고 누군가를 껴안는다는 것이 왠지 좀 쑥스럽고 어색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알다시피 인사라는 것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헤어질 때 상대는 포옹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데 나는 그냥 악수로 대신하자고 손만 달랑 내미는 것도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나와 그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의도적으로 그어놓는 듯한 느낌을 주어 다소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더라고요. 시간이 좀 지나 어느 순간부터는 친한 친구나 동료와 헤어질 때 자연스럽게 포옹을 주고받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처음의 어색함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유대감, 친밀감 그리고 따스한 행복으로 채워졌습니다.


최근에 포옹과 관련된 흥미로운 조사 결과들을 알게 되었어요. 바로 포옹이 우리 건강에 상당히 유익하다는 과학적 증명이지요. 호주 시드니 대학의 앤서니 그랜트 심리학 교수는 포옹이 스트레스에 반응하면서 분비되는 코르티솔이라고 하는 호르몬을 낮춰 병균으로부터의 면역성을 강화하고 혈압을 내려주며 심리적 불안이나 외로움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또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의 캐런 그레원 교수에 의하면 아침 출근하기 전에 부부가 20초 정도 따뜻하게 포옹하고 손잡아주면, 그렇게 하지 않은 부부에 비해 스트레스 지수가 절반가량 떨어진다고 합니다. 즉 아침에 잠깐 사랑하는 가족끼리 따스하게 포옹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하루 동안 받게 될 스트레스로부터 정신적, 신체적 보호막을 쳐주는 놀라운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인으로서 저도 종종 그런 보호막을 사람들에게 쳐주어야 할 때가 있어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시는데 서울에서 제 책을 읽은 독자와의 만남을 가질 때였습니다. 어떤 여성분이 제 책에 사인을 받는 도중 갑자기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스님, 두 달 전에 애들 아빠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충격 때문에 지난 두 달간을 집 안에서만 멍하니 보냈어요. 제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동생이 옆에서 안타까웠던지 스님 책을 선물로 주면서 읽어보라고 했는데 첫 장부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이를 둘 키우고 있는데 왠지 스님을 만나 뵈면 마음의 용기를 얻을 것 같아서 아침 일찍부터 기차 타고 지방에서 이렇게 올라왔습니다.”


그분의 얼굴을 보니 이미 눈물로 가득했고 목소리는 힘겹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분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두 팔로 따스하게 한참을 안아드린 후 울고 계신 그분을 향해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가신 아이들 아빠를 위해 저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을 돌보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저세상에서 보고 계실 거예요. 지금은 많이 외롭고 힘들지만 지금의 경험 때문에 훨씬 더 지혜롭고 강한 나로 거듭나실 것입니다. 이제부터 점차 괜찮아지실 것입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흐느끼시는 그분을 안으며 조용히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내가 비록 많이 부족하지만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따뜻한 햇살 같은 종교인이 되자고요. 또한 나의 포옹이 필요한 분이라면 언제든지 인색하게 굴지 말고 기꺼이 안아드리자고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힘들어하는 가족이나 친구를 종종 따스하게 포옹해주세요. 그로 인해 정말로 생명이 하루 더 연장될지도 모르잖아요.


혜민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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