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시댁식구들이 먼저 이민 와 자리 잡고 있었던 미국으로 우리 부부는 두 번째 이민을 왔다.
어른 둘이 타는 비행기에 우리는 4명이? 탔다. 1살 배기 딸이 남편 무릎에 앉고 내 뱃속에는 3개월짜리 아들(당시는 성별을 몰랐지만)이 있었다. 비행기쭈욱 12시간 타고오다중간에 마이애미에서 갈아타고 다시 대여섯 시간을 지나 엘에이에 도착!그렇게 우리의 이민 생활이 시작 됐다.
내 직계 친인척은 아무도 없던 이곳 엘에이, 임신까지 한 상태라 음식도 입에 안 맞고 차가 없으면 어디 갈 수가 없는 동네라 답답하기까지 했다.
거기다가 우리 딸을 봐주신다면서 자연스레 시부모님과 합치게 되었다. 그때는 그저 아이들 학교 갈 때까지 같이 살자고 하신 건데.. 지금 23년 동안 ing 상태다!
시부모님과 같이 산 것이 여러모로 다 장단점이 있는 거라 어떤 게 좋고, 어떤 게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우선은 시부모님 덕분에 편하게 아이들 키우고 내 커리어를 쌓으며 그렇게 패턴 디자이너 공부도 하면서 미국생활에 적응해 갈 수 있었다.
내가 18살부터 큰애 낳기 2달 전까지 쉬지 않고 9년을 일하던 직장인이었는데 둘째가 태어나서 기저귀 띄고 어린이집에 갈 때까지 꼬박 4년을 육아와 공부에 전념하며 나름 힐링의 시간을 보냈다.
참 희한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중학교 때부터 그렇게 팝송이 좋았고 영화도 미국영화가 재밌었다. 그렇다고 영어도 잘 못하면서 팝송가수들의 CD를 모아 들으며 흥얼거리고,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가 나오면 바로 관람하러 달려갔었다.
특히 내 최애 배우는 '브래드 피트'였다.
그 당시 이 매력적인 배우를 바로 알아본건 그의 첫 할리우드 작품인 "흐르는 강물처럼"이었다. 아, 로버트 레트포드를 닮은 멋진 모습, 거기다가 20대의 싱그러움이라니!
남편을 만나기 전에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많이 동경했었다. 97년도에 마침 중학교 동창이 뉴욕으로 이민 가 있어서 남미에서 한국으로 놀러 가는 길에 뉴욕에 들려 맨해튼도 걸어보고 자유의 여신상에 가서도 사진을 찍고 그랬었다.
하지만 그때 만났던 내 친구의 지인들을 보니 불법 체류자가 되어 흑인들을 상대로 매니큐어 샵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들의 발바닥이 엄청 두껍고페디큐어를 하기 위해 발을 닦아주고 발톱을 정리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미국에 오고 싶지 않았다.
1주일 동안 뉴욕의 한인이민자들의 민낯을 보고는 그렇게 정착하지 않기로 다짐을 했다.
나는 꼭 정식으로 영주권을 받고 이민을 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미국으로 재 이민 안 갈 것이다~
나의 꿈은 "더 시크릿" 책에 나오는 것처럼 절실히 원하면 우주를? 끌어당김의 법칙에 의해 내 생각이 곧현실이 되는 것이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을 때만 해도 미국으로 이민올 지 몰랐었다. 남편이 그당시 남친 이었을때 나를 만나다가 이민서류가 준비되어 허가서가 나오면 나를 버리고? 자기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혼자 가려고 했단다그 당시만 해도 결혼생각 없이 비혼주의자였다나!
그런데 그 이민서류가 남편혼자의 이름으로 했을 때 빠꾸를 맞았다. 엘에이에서 진행되는 변호사가 서류 비를 몇만 불 받은 게 미안하니 혹시 와이프 이름으로 따로 돈 안 받고 다시 취업이민에 넣어주겠다고 한 것이다.
미국에서 어머님이 부랴부랴 나를 만나러 아르헨티나에 오셨다. 보자마자 내 한복 치수를 재고 반지사이즈를 재 더니 3달 후에 결혼식을 올리자고 하신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 알고 보니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여기 사귀는 아가씨 있으니 그럼 엄마가 아르헨티나에 와서 보고 결혼을 결정하자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