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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Vada Sep 20. 2024

당신은 천사를 만났습니다

보라이모

내가 한국을 이민바람이 불어 떠난 지 어연 37년째, 그사이 2번 정도 놀러 갔었지만 언제나 아쉬움이 가득.  
이번에도 3번째의 고국방문을 계획하며 한 번도 안 가본 여수와 제주도를 구석구석 다녀보리라 서치하고 찾아놓았다.
대학교 4년을 무사히 마친 아들과 함께 시간은 빠듯하지만 여기저기 잘 다녀야지 하고 부푼 마음에 여행을 시작했다.
12일의 한국일정 중 1주일이 된 어느 날 제주도를 구석구석 구글로 찾아보며 must 가야 할 곳을 차례대로 적어보고 다시 카카오맵을 열고 어디로 이동해야 바로바로 연결이 돼는지 적어보았다.

0. 김녕미로공원
1. 스누피가든
2. 섭지코지
3. 성산일출봉
4. 일출랜드
5. 제주 민속촌
6. 천지연 폭포
7. 소인국 테마파크

사고당일날의 계획표.
마침 순영이가 오늘은 어디가?라고 카톡 했길래 보내줬던 리스트가 기록에 남아있었다.
아침부터 서둘러서 간 곳이 ㅅㄴㅍ공원. 입장료도 몇만 원씩 하는데?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입장료가 비싸서 좀 더 둘러보고 더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일념으로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그만 낙상을 하고 말았다. 살짝 발목을 삐었겠지? 싶었는데.. 아들이 "엄마 괜찮아?" 하고 부르는데 나는 바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왼쪽발목이 완전히 골절이 되 버렸다.
그다음은 그저 다 잊어버리고 싶은 순간들이다..

결국 나는 3주라는 시간을 더 한국에 묶어 있어야 했고. 계속되는 수술과 입원으로 꼼짝 못 하고 누워 지내며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낯선 입원실에는 나 말고도 3명의 70대 환자분들이 계셔서 가족들과 두런두런 화목한? 시간들을 보내고 계셨다. 나만 뚱하게 앉아있는 아들과 다 식어빠진 병원음식을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미국에 어서 돌아가고 싶은데.. 남편에게 막 엄살 부리며 내 편안한 침대에 누워있고 싶은데.. 친구들에게 "괜찮아?"라는 안부를 듣고 싶은데..
그저 캄캄한 곳에 나 혼자 빠져있는 기분이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곳에 다리가 끼어있는 기분...

그 와중에 시어머니가 카톡으로 연락을 주셨다. 나는 혹시라도 덜렁거리다 다친 며느리를 나무라시려나 싶어 마음이 불편했는데.. 어머님은 다짜고짜 연락처를 주시며 친척분인데 사촌여동생이라는 것이다. 내가 입원한 병원 근처에 사는 거 같으니 필요한 거 있으면 부탁해 보라고 하신다.
어머님도 이민오신지 반백년이 되셨을 텐데.. 아직까지도 연락하는 친척분이 계셨네 하면서 바로 연락해 보았다. 한 10분 만에 달려오신 이모님은 보라색 헤어스타일에 하얀 옷을 아래위로 입으시고 나를 처음 보시는데 "선경아~ " 하면서 입원실로 찾아오셨다.
스타일이 눈에 띄는 것도 있지만 처음 뵙는데 정말 알던 분처럼 반갑고 편했다.
"내가 이 병원에서 5분 거리에 식당을 하고 있어, 네 어머님이 가족 카톡방에다가 너의 사고 소식을 올리고 병원이름을 적어주는데 등골이 오싹했다. 서울이 이렇게 넓은데 어쩜 바로 코앞에 네가 입원을 하고 있을 줄이야!"
내 친구들도 멀고 먼 김포와 강동구에 뚝 뚝 떨어져 있어서 면회오기가 쉽지 않다고 하건만.. 어디서 나타나신 보랏빛 이모님이 이리도 가까이 계셨을까나?
거기다가 식당에서 맛난 메뉴들을 엄선해서 챙겨 오셨다. 칼칼한 육개장을 아주 따끈하게 데워서 챙겨주시는데 달아났던 입맛들이 다 제자리로 찾아와 주었다.
"하야~ 너무 맛있어요!! 그동안 병원밥이 맛없어서 못 먹고 있었는데! 이모님은 정말 천사가 맞으신 듯요! 옷도 하얗게 입으시고~"
"선경이 네가 그렇게 봐주니 나도 기분이 좋은데! 고맙다, 근처에 와 있어서.. 내가 너네 시어머니에게 항상 빚을 갚고 싶었었는데 이런 기회를 주어서!"
알고 보니 우리 시어머니 친정어머님이 보라이모님의 아버지와 남매 사이였고  어머님이 예전에 남동생을 대학 보내기 위해 많이 희생하고 양보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남동생네 가족은 아주 잘 사셨다고 근데 뒤늦게 누님네 빚을 갚으려니 우리 어머니네가 머나먼 남미로 이민을 가셨다고~
이런 아름다운 스토리가 깔려 있었다니!
내가 다친 게 그럼 다 우연이 아닌 것인가?
그날 이외에도 이모님은 하루가 다르게 병원에 바리바리 들고 찾아오셨고 나는 아주 통통히 잘 얻어먹고 건강하게 퇴원하였다.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내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아 이모님네 식당에서 송별회를 했다. 내가 거하게 쏠려고 했는데 이모님은 굳이 돈을 안 받으셔서 고깃값을 그냥 직원들에게 팁으로 나눠드렸다.(미국은 팁의 문화라 그걸 한국에서 해드렸다) 직원들이 한분 한분 오셔서 얼마나 감사해하시던지~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천사이모에게 계속 연락 중이다. 다음번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한국을 방문하여 그때는 제대로 빚을 갚아야지.. 우리들의 빚 갚기는 계속 이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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