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을 이민바람이 불어 떠난 지 어연 37년째, 그사이 2번 정도 놀러 갔었지만 언제나 아쉬움이 가득. 이번에도 3번째의 고국방문을 계획하며 한 번도 안 가본 여수와 제주도를 구석구석 다녀보리라 서치하고 찾아놓았다. 대학교 4년을 무사히 마친 아들과 함께 시간은 빠듯하지만 여기저기 잘 다녀야지 하고 부푼 마음에 여행을 시작했다. 12일의 한국일정 중 1주일이 된 어느 날 제주도를 구석구석 구글로 찾아보며 must 가야 할 곳을 차례대로 적어보고 다시 카카오맵을 열고 어디로 이동해야 바로바로 연결이 돼는지 적어보았다.
사고당일날의 계획표. 마침 순영이가 오늘은 어디가?라고 카톡 했길래 보내줬던 리스트가 기록에 남아있었다. 아침부터 서둘러서 간 곳이 ㅅㄴㅍ공원. 입장료도 몇만 원씩 하는데?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입장료가 비싸서 좀 더 둘러보고 더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일념으로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그만 낙상을 하고 말았다. 살짝 발목을 삐었겠지? 싶었는데.. 아들이 "엄마 괜찮아?" 하고 부르는데 나는 바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왼쪽발목이 완전히 골절이 되 버렸다. 그다음은 그저 다 잊어버리고 싶은 순간들이다..
결국 나는 3주라는 시간을 더 한국에 묶어 있어야 했고. 계속되는 수술과 입원으로 꼼짝 못 하고 누워 지내며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낯선 입원실에는 나 말고도 3명의 70대 환자분들이 계셔서 가족들과 두런두런 화목한? 시간들을 보내고 계셨다. 나만 뚱하게 앉아있는 아들과 다 식어빠진 병원음식을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미국에 어서 돌아가고 싶은데.. 남편에게 막 엄살 부리며 내 편안한 침대에 누워있고 싶은데.. 친구들에게 "괜찮아?"라는 안부를 듣고 싶은데.. 그저 캄캄한 곳에 나 혼자 빠져있는 기분이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곳에 다리가 끼어있는 기분...
그 와중에 시어머니가 카톡으로 연락을 주셨다. 나는 혹시라도 덜렁거리다 다친 며느리를 나무라시려나 싶어 마음이 불편했는데.. 어머님은 다짜고짜 연락처를 주시며 친척분인데 사촌여동생이라는 것이다. 내가 입원한 병원 근처에 사는 거 같으니 필요한 거 있으면 부탁해 보라고 하신다. 어머님도 이민오신지 반백년이 되셨을 텐데.. 아직까지도 연락하는 친척분이 계셨네 하면서 바로 연락해 보았다. 한 10분 만에 달려오신 이모님은 보라색 헤어스타일에 하얀 옷을 아래위로 입으시고 나를 처음 보시는데 "선경아~ " 하면서 입원실로 찾아오셨다. 스타일이 눈에 띄는 것도 있지만 처음 뵙는데 정말 알던 분처럼 반갑고 편했다. "내가 이 병원에서 5분 거리에 식당을 하고 있어, 네 어머님이 가족 카톡방에다가 너의 사고 소식을 올리고 병원이름을 적어주는데 등골이 오싹했다. 서울이 이렇게 넓은데 어쩜 바로 코앞에 네가 입원을 하고 있을 줄이야!" 내 친구들도 멀고 먼 김포와 강동구에 뚝 뚝 떨어져 있어서 면회오기가 쉽지 않다고 하건만.. 어디서 나타나신 보랏빛 이모님이 이리도 가까이 계셨을까나? 거기다가 식당에서 맛난 메뉴들을 엄선해서 챙겨 오셨다. 칼칼한 육개장을 아주 따끈하게 데워서 챙겨주시는데 달아났던 입맛들이 다 제자리로 찾아와 주었다. "하야~ 너무 맛있어요!! 그동안 병원밥이 맛없어서 못 먹고 있었는데! 이모님은 정말 천사가 맞으신 듯요! 옷도 하얗게 입으시고~" "선경이 네가 그렇게 봐주니 나도 기분이 좋은데! 고맙다, 근처에 와 있어서.. 내가 너네 시어머니에게 항상 빚을 갚고 싶었었는데 이런 기회를 주어서!" 알고 보니 우리 시어머니 친정어머님이보라이모님의 아버지와 남매 사이였고 그 어머님이 예전에 남동생을 대학 보내기 위해 많이 희생하고 양보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남동생네 가족은 아주 잘 사셨다고근데 뒤늦게 누님네 빚을 갚으려니 우리 어머니네가 머나먼 남미로 이민을 가셨다고~ 이런 아름다운 스토리가 깔려있었다니! 내가 다친 게 그럼 다 우연이 아닌 것인가? 그날 이외에도 이모님은 하루가 다르게 병원에 바리바리 들고 찾아오셨고 나는 아주 통통히 잘 얻어먹고 건강하게 퇴원하였다.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내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아 이모님네 식당에서 송별회를 했다. 내가 거하게 쏠려고 했는데 이모님은 굳이 돈을 안 받으셔서 고깃값을 그냥 직원들에게 팁으로 나눠드렸다.(미국은 팁의 문화라 그걸 한국에서 해드렸다) 직원들이 한분 한분 오셔서 얼마나 감사해하시던지~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천사이모에게 계속 연락 중이다. 다음번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한국을 방문하여 그때는 제대로 빚을 갚아야지.. 우리들의 빚 갚기는 계속 이어질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