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오 Mar 16. 2019

백남준아트센터

같은 공간 다른 생각 #1

공간에 들어서며


희정은 어느 날 백남준아트센터의 존재를 알게 된다. 열 번 넘게 아트센터에 가봤다는 희정의 지인은, 백남준아트센터가 용인에 있으며 한 사람의 작품만을 위해 지어진 특별한 공간이므로 가볼 만한 곳이라고 추천했다. 구미가 당긴 희정은 테오에 백남준아트센터 방문을 제안한다. 혼자 이해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백남준을 같이 공부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백남준,하면 비디오아트,말고 다른 것을 좀 떠올릴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각자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한 마음에서.

멤버들의 답변은 긍정적이었다.


그렇게 테오는 어느 일요일에 모여 용인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를 찾게 된다. 백남준은 생전에 이 아트센터를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명명했다. 



우리는 백남준이 오래 사는 ‘그 집’에 2시간가량 머무르며 각자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했다. 다만, 감상하며 두 가지를 염두에 두기로 했다.


첫째. 백남준아트센터가 아티스트의 공간인 만큼, 가장 좋았던 작품 하나를 꼽아볼 것.

둘째. 함께 하나의 공간을 찾은 만큼, 공간에서 떠오른 키워드를 하나 꼽아볼 것.


2시간 동안 우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감상 이후, 우리가 써 내려간 이야기는 이랬다.



당신에게 가장 좋았던 작품은 무엇입니까


바깥

가장 좋았던 작품이라... 단 하나도 없다. 한 바퀴를 다 돌고 출구가 보였을 때 나 자신도 당황스러워서 다시 입구로 돌아가길 몇 번이고 반복했다. 무료입장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작품 자체의 난해함도 있었지만, 그보다 백남준의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전혀 준비되지 않은 탓이 컸다. 교과서에서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물을 보는 건 엄연히 다른 일이다.


특히 영상이 나오는 작품(거의 대부분이다)은 꽤 당혹스러웠다. 작품 옆에 비치된 헤드폰을 끼고 죽치고 앉아 전체 영상을 보란 말인가? 다른 관람객들도 있는데? 오디오 가이드를 듣는 정도가 아니다. 작품 설명에는 ‘28:27’과 같은 숫자가 적혀 있다. 재생 시간이다. 가장 짧게는 8분 41초짜리가 있고 길게는 4시간짜리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전체 작품이 아니라 하나를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관람을 재구성해보자. 입구에 들어서 이번 전시의 주제 ‘30분 이상'에 대한 설명을 읽는다. 순수함과 귀여움이 느껴지는 비디오 조각 ‘꽃의 아이'를 감상한다. 이제 나란히 놓인 세 개의 영상 작품을 마주한다. 각각 29분 2초, 28분 27초, 28분 30초가 소요된다. 하나를 감상하고 다른 작품을 보려고 하면 첫 장면이 아니다. 참고 볼 수는 있지만 그냥 찝찝하다. 누군가가 이미 감상하고 있다면 소리 없이 뒤에서 구경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 단 세 작품이 아니라 전체 전시 단위로 이러한 엇박자가 생기면 사실상 한번에 이 전시를 경험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오히려 이 지점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일반적인 전시 관람 방법의 파괴랄까. 길어봐야 한두 시간에 동선을 따라 하나씩 클리어하듯 관람하는 방식은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작품 하나씩 여유 있게 음미해야 하고, 정해진 동선보다는 타이밍에 맞게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전체 작품을 온전히 경험하려면 회전문 관객이 될 수밖에 없다.


백남준아트센터를 제대로 즐기려면 일종의 전략이 필요한 것 같다. 어떤 작품, 어떤 관점, 어떤 방법으로 볼지 미리 생각하고 가면 최소한 하나라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내게 그의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재밌게도 미디어 아트가 아니라 <딕 히긴스를 위한 위험한 음악>이라는 "악보"였다. 이 악보는 긴 종이 위에 "살아있는 암고래의 질로 기어들어가라(Creep into the vagina of female whale)"고 적혀있는 것이 전부다.


1950년대에 존 케이지가 작곡한 <4분 33초>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4분 33초>는 자연의 소리, 그리고 공연장의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음을 표현하는 작품이었다. 백남준에게 존 케이지는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다. 달리 보면 청출어람 해야 할 디딤돌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백남준은 스승의 아이디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바이올린을 바닥에 끌며 소리를 내거나, 피아노 연주 도중에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가위로 자르는 등의 전위적인 행위음악을 선보인다. 바로, 반음악적인 행위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꼽은 <딕 히긴스를 위한 위험한 음악>은 여기보다도 한 단계 더 나아간 작품이다. '살아있는 암고래의 질로 기어들어가라'는 악보는 연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암고래는 어디서 어떻게 구할 것이며, 관객은 어디에 어떻게 모을 것이며, 목숨을 걸어야 할 이 퍼포먼스를 어느 연주자에게 부탁할 수 있겠나. 그렇다, 실현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악보를 백남준의 요구대로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노라면, 퍼포먼스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한다. 나아가 고래의 울음이라든지 파도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온다. 상상 속의 그 행위와 소리, 그림과 질감이 모두 음악이 되는 것이다. 작품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야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희정

가장 ‘좋았던’ 작품은 없다. 전시를 관통하는 그의 생각은 몹시 매력적이었으나, 이 작품 진짜 갖고 싶다, 두고두고 바라보고 싶다, 하는 작품은 꼽기 어렵다. 다만, <TV를 위한 편집>이라는 비디오물에서 젊은 백남준이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거 봐. TV는 항상 돈타령이라니까.”

정해진 시간과 분량 내에서 효율적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하는 방송의 논리를 꼬집는 듯했다. 이 한마디에, 그 공간에 있던 작품들을 다시 떠올려봤다. 그가 만든 30분짜리 영상물엔 이미 앞에 나왔던 장면이 나오고 또 나왔다. 물론 화면의 구성이 약간 바뀌어 변주되기도 했다. ‘돈타령하는’ TV에서는 절대 기대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필요하다면 했던 말을 또 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자신만의 TV’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생각을 했다. ‘백남준, 하고 싶은 거 다 해.’하는 생각이었던 걸까.



공간에서 떠오른 키워드가 있나요: 백남준아트센터와 OO


바깥 : <전작주의자의 꿈>

“한 작가의 모든 작품(全作)을 통해 일관되게 흐르는 흐름은 물론 심지어 작가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징후적인 흐름까지 짚어 내면서 총체적인 작품세계에 대한 통시/공시적 분석을 통해 그 작가와 그의 작품세계가 당대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찾아내고 그러한 작가의 세계를 자신의 세계로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하는 일정한 시선”


<전작주의자의 꿈>이라는 책에서 저자 조희봉 씨가 ‘전작주의’를 정의한 내용이다. 오래전 책 관련 TV 프로그램에 저자가 출연해 왜 전작을 읽어야 하는지 열변을 토했던 내용이 꽤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백남준아트센터에 머문 몇 시간 동안 지금은 절판된 이 책이 계속 떠올랐다.


한 작품만을 보고 그 작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쉽다. 물론 작가의 필모그래피는 개별 작품으로 구성되지만, 개별 작품이 작가의 과거와 미래를 온전히 담지는 못한다. 몇 가지 작품으로 그 작가를 이해하려는 건 수많은 퍼즐 조각 중에서 일부만 보고 무슨 그림인지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


그의 생각이 비교적 온전히 담긴 자필 원고도 참 어려웠다. 비디오아트의 개념에서 예술시장의 4D로, 통신학 얘기에서 한자를 언급하더니 한국인이 한자의 공동발명자라는 주장으로 퀀텀점프하는 그의 생각을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하물며 전시된 22가지 작품과 해설로 백남준을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특히나 시대를 앞섰다는 백남준이라면 백남준 전작주의자가 되어야 비로소 이 공간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쓴 글을 좀 모아서 보고 싶다. 아, 물론 전작주의는 좀 힘들지 않을까...


필: 만득이 장난감

1895년에 뤼미에르 형제가 <기차의 도착>이라는 최초의 영화를 상영했을 때, 관객 대부분은 공포에 벌벌 떨었다. 심지어 고함을 지르며 영화관을 뛰쳐나간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기차가 본인들을 들이받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눈 앞에 펼쳐진 영상 속의 시공간이 다르다는 것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점차 영상이라는 미디어, 그리고 다른 시공간의 체험에 익숙해지면서 관객들은 제3의 눈을 떴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 그리고 존재에 대한 한층 더 깊은 사유와 토론을 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사람들은 다시 영상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1940년대에는 어떻게 영화가 파시즘의 프로파간다에 사용될 수 있는지 목격하였고, 1950~60년대에는 얼마나 TV(바보상자)가 시청자로 하여금 현실에 순응하게 하는지를 느끼게 되었다. 영상을 시청자/대중들을 지극히 수동적인 존재로 학습시키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백남준이 등장했다. 백남준은 우선 시청자를 수동적인 존재에서 해방시켰다. 직접 비디오 신호를 왜곡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읽기'만 가능했던 매체에 '쓰기'의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이러한 사이버네틱스를 통해 그는 사람들이 영상 매체를 진정한 소통의 도구로 활용하기를 바랐다. 왜곡된 비디오 신호가 일종의 사이키델릭 체험을 하게 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 비현실적인 색채가 현실 세계에 덧입혀진 모습 등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것은 마치 영적 체험과도 같았다.


50년대 비트 세대가 기성세대를 거부하고 개인의 내면으로 숨어들었다면, 60년대 히피 세대는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 과정에서 히피들은 사회의 구조를 벗어나 본질에 가까운 영적인 체험을 하기 위해 마약을 하였다. 백남준은 마약의 해로움을 제거한 사이키델릭과 능동적으로 신호를 조작할 수 있게 된 사이버네틱스가 결합된 TV가 70년대를 열 것이라 예견했다. 요컨대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나의 작품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30분 이상") 소통의 매체로써 적극 활용하라는 것'이다.


분명 사이키델릭한 백남준의 작품들은 쉽게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려한 것은 또 아니다. 그보다는 넋을 놓고 보게 되는 싱거운 매력이 있다. 특히나 영상에 더 심한 조작이 가능해진 오늘날에 그의 작품은 오히려 투박해 보이기까지 한다. '백남준아트센터'도 그렇다. 곡선의 통유리로 되어있는데 화려하지는 않지만 유행을 타지 않는 멋이 있다. 내부 공간도 위로는 천장이 높고 앞으로는 시야의 막힘이 없이 넓다. 그의 작품도, 예술센터도 마치 만득이 장난감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만득이 장난감은 최근에 유행한 피젯 토이와 달리 촉감에서 걸리는 데가 없다. "미끌매끌, 매끌미끌"하다. 손가락에 자극을 주는 곳도, 손에 잡히는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중독성이 있다. 그 싱거운 중독성이 백남준아트센터의 마력이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희정: 이해

그래, 나는 그를 영영 이해할 수 없어, 하다가 그래, 한번 무슨 이야기를 남겼는지 들어나 보자, 하는 마음이었고 두 시간 동안 그의 작품을 보며 내 머릿속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무엇인가를 이해해보려는 몸부림, 그 자체였다.
그를 이해하기 위한 나의 노력은 이랬다.


첫째. 전시의 제목 ‘30분 이상’에 걸맞게 한 작품을 30분 이상 들여다보기(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끝까지 다 본 나, 칭찬해~)
둘째. 작품에 달린 설명을 찬찬히 읽어보기
셋째. 내 마음대로 한번 휙 돌아보고, 도슨트 설명과 함께 다시 돌아보기


그리하여 내가 이해한 백남준은 이랬다.
첫째. 그는 인간과 기술이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기술’하면 삭막하다, 어렵다, 굳이 왜, 같은 생각만 해왔던 나의 생각이 흔들렸다.
둘째. 그는 시공간을 초월하려 부단히 애썼던 사람이었다. 지구 건너편의 사람들과 소통하려 했고, 비디오에 예술을 남겨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도 메시지를 보낸 사람. 나에게도 조금이나마 그의 메시지가 당도했으니, 그의 시간 초월은 성공한 셈.


그래서 너 정말 백남준 이해하고 왔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가 보낸 메시지를 읽어보려고 온갖 몸부림을 쳤다고 대답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아무리 원해도 할 수 없고, 마음조차 먹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이해’지만, 그래서인지 다른 존재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더 가치를 갖는 것 같다. 어쩌면 백남준은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려는 노력, 그 자체를 우리에게 선물해주고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공간을 나서며


작년, 백남준아트센터는 젊은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 교환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크리스 쉔이라는 작가가 선정됐고, 그는 두 달 동안 백남준아트센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프로그램의 결과물로 그의 작품 <루메(자동)>가 전시되고 있었다.(전시는 지난 3월 25일 종료됨) 백남준이 아닌 다른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수많은 센서등이 바닥에 깔려있었다. 작품에 다가서면 파바바박, 하고 센서등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내가 움직임을 멈추면, 센서등은 하나둘씩 다시 자신의 불을 거두었다. 어둠 속에 혼자 서있는 기분이었다. 한쪽 발을 옆으로 살짝 옮기니, 저 멀리 있던 센서등 하나가 켜졌다. 마치 센서등과 대화를 하는 듯했다. 인간과 기계의 합작품을 지향했던 백남준이 다시 떠올랐고, 이 작품이 왜 이 공간에 있게 됐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루메라는 이름의 이 작품을 보며 했던 생각은 하나 더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구나.’


움직이지 않으면 그저 암흑일 공간에서, 움직임의 가치를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영영 알지 못했을 백남준을 공부해보겠다는 우리의 움직임이 가치 있게 느껴졌다. 비록 우리에게 다가온 백남준이 다 달랐을지라도, 우리가 백남준을 한 뼘도 채 이해하지 못했을지라도.



이제, 몸을 움직여 센서등을 켤 것.


*방문은 2018년 3월 18일에 했다.


http://from-theo.com/archives/34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