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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Aug 10. 2021

사랑의 스토아주의

1. 알레르기성 피부염을 가리키는 용어인 '아토피'라는 말은 소크라테스의 '아토피아'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아토피아(atopia)는 어원적으로 '장소 없음' '분류할 수 없는 것'을 뜻하며,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유일무이한 독창성' '형언할 수 없는 사물 혹은 감정'으로 이해했으며, 신학에서는 '존재의 충만성'으로 해석된다. 롤랑 바르트는 <사랑의 단상>에서 연인 사이의 형언하기 힘든 사랑의 경험을 아토피아라고 불렀다. 장밋빛으로 물든 연인들은 선천적 과민증(hypersensitivity) 환자다.


2.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상대에게 낭만적으로 끌리며 때로는 격정적 감정상태에 휩싸이게 된다. 그것은 리머런스(limerence)라는 상태인데, 여기엔 성적인 이끌림이 포함된다. 달뜬 상태에서는 애착관계가 형성되거나 붕괴되고 또 다시 재생되는 등 감정이 격정적으로 북받치는 시기다. 이때 도덕적으로 억압된 사람에게는 그것이 성적 성가심(sexual harassment)으로 나타나 돌발행위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연인들이 포옹을 자주하는 이유는 상대방에 대해 끓어오르는, 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이다. 상대의 맹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복싱선수의 클린치와 닮았다.


3. 알프레드 메이슨 아마돈의 인체 해부도를 펼쳐보면 인체의 외관에서부터 뼈와 근육, 몸속의 장기들까지, 신체의 각 부위들을 묘사한 접힌 그림들이 연속으로 펼쳐진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마치 눈먼 시계공이 제작했을 것 같은 기관의 복잡성이 아니라 외설적 덩어리로서의 벌거벗음이다. 우리가 제 아무리 정밀한 기계로 인체의 층위들에 침투하더라도 우리는 그 신비를 온전히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뿐만아니라 그 깊이를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심연에 빠지게 될 터인데 그것은 우리가 비가시 영역을 바라볼 때 치러야 할 대가(cost)다.


4. 알랭 핑켈크로트는 레비나스를 따라 타자성을 '내 마음대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존재'라고 정의한다. 사랑에 빠진 이는 서로의 육체에 가장 근접해 가지만 육체는 두 존재를 연결시키는 문이 아니라 오히려 두 존재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과 같다. 육체는 오히려 서로를 밀어낸다. 그런데 더 가까이 다가갈 수도, 더 멀리 밀어낼 수도 없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타인의 얼굴이다. 연인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타자의 신비성을 이상적인 영역으로 쫓아내는 대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5. 이상적 사랑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폴 발레리는 가장 깊은 것은 피부라고 말했다. 그곳은 우울과 이상이 공존하는 공간이며 타자의 신비가 출몰하는 장소다. 사랑의 감정은 존재의 표면효과다. 연인의 작은 주름에서 새어나오는 한숨(Pneuma)은 그대 얼굴에서 산들바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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