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숙제를 한다. 국어교과서의 단어와 문장을 따라 쓰는 숙제다. 며칠 전에는 학교에서 생전 처음으로 받아쓰기도 했다. 입학할 때는 한글을 읽고, 쓰는 게 서툴렀지만, 이제는 받침이 있는 글자도 읽고 쓴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아이의 첫니가 빠지는 것은 중요한 신호이다. 하늘에 속했던 아이의 영혼이 땅과 몸으로 더 깊이 내려와 세상의 것들을 배울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가 문자를 읽고, 쓰는 것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그래서 문자 교육도 보통 첫니가 빠지는 7세 이후부터 한다. 문자도 그냥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 원리와 배경부터 그림과 시로 아름답게 전한다.
나는 아이가 첫니가 빠진 뒤, <발도르프 한글 첫 걸음>이라는 교재를 만든 이소영 작가님이 진행하는 발도르프 한글 수업을 들으며,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 사람이라는 '천지인'에서부터 아이와 한글의 모음과 자음을 하나씩 익혀나갔다. 글자의 원리와 의미를 음미하느라 익히는속도는 느렸지만 내가 쓰는 언어, 우리 민족의 뿌리, 내가 서 있는 세상을 돌아보게 되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이도 새롭게 알게 된 글씨를 정성을 다해 힘 있게, 바르게 옮겨 쓴다. 오늘은 빼곡히 글씨가 쓰인 공책과 몽달연필들에 시선에 머문다.
연필이 짧아진 만큼 아이는 커졌다. 여름날의 풀처럼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의 성장을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
아이를 더 많이, 더 오래 지켜보기 위해서는 분주한 생각들을 내려놓고, 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필요하다. 바쁜 일상 중 글에 잔상을 담아 잠시 숨을 고르며 쉼표를 찍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