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린이날 다음 어버이날

by 달리아

돌아보면, 나는 결코 좋은 딸은 아니었다. 어릴 때는 몸이 많이 아팠었고, 대학생 때는 심한 우울증 때문에 부모님께 걱정을 끼쳤다. 진정한 행복을 찾는다며 떠난 인도 등지에서는 집에 연락도 몇 번 안 드리고, 몇 달간 방랑했었다. 그때 핸드폰 너머 엄마는 내게


"네가 집시가 아니야!"


라고 큰소리로 외쳤더랬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임용고시를 치고 교사가 되었는데, 3년 차에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두문분출 국내외를 쏘다니며, 강의를 한다고 보따리장수처럼 돌아다녔으니,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참 속을 많이 끓일 수밖에 없으셨을 거다.


이처럼 속 썩이는 딸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내게 힘든 내색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우울증 때문에 교환학생 도중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도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셨고, 교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도 반대 대신 응원을 해주셨다. 내게 상담 공부를 제안해주시기도 했고, 어느 날 결혼을 한다고 인사드린 지금의 남편도 그저 환영해 주셨다.


청춘의 시절에는 나의 행복과 고통이 세상에서 제일 크게 느껴졌기에,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없었지만, 내가 마흔이 되고, 두 아이를 기르는 부모가 되고 나서야 나는 조금씩이나마 가늠하게 된다. 두 분이 내게 보여주신 인내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말이다.


어린이날 연휴를 무사히 잘 보내고, 어버이날을 앞둔 밤, 문득, 내가 우울증에 걸렸을 때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아빠가 정색을 하셨던 표정이 떠오른다. 아빠는 워낙 감정표현이 없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는데, 그때만큼 놀란 눈을 크게 뜨신 아빠의 모습은 전에도 후에도 잘 본 적이 없다.


그 다음날인가 아빠는 하루종일 계속 누워만 있던 나를 거의 끌다시피 하여 뒷산에 오르셨는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빠는 '산 위에 앉아 보이는 경치가 다르듯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라는 의미의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그때 그 말씀보다 내 기억에 더 남은 건, 어릴 적 사고로 아버지를 잃으시고 갖은 고생을 하시며 살아오셨던, 어딘가 외롭고도 의연한 아빠의 옆모습이었다.

@픽사베이

고난과 시련을 견디기 위해 바위처럼 굳었던 아빠의 얼굴과 몸과 마음이 결국 나와 우리 가족을 지키는 방패이자 보호막이 되어주었다는 건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안타깝고 어리석게도,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되듯, 나는 아빠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서야 아빠가 내 삶에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깨달았다.


아빠의 사고 이후, 나는 어린 시절 엄마가 유방암 수술을 하셨을 때 느꼈던 아득한 두려움에 휩쌓였다. 그 뒤로 몇 번의 수술 등을 거쳐 기적적으로 아빠가 회복하고나서야 나는 일상의 중심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부모라는 존재가 내 삶의 뿌리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그 뿌리를 더듬어 나의 부모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의 부모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시작을 알기도 어려운 무한한 사랑과 생명의 강줄기가 내게 흘러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픽사베이

첫 아이가 백일 때, 백일상을 차려놓고 기도를 했을 때도 나는 자식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정성과 마음을 다해 상을 차리고 기도해 온 엄마, 엄마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들과 연결성을 생생하게 느꼈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세포와 DNA에 새겨진 이 지극한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생명과 삶을 이어준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본능처럼 흘러 내려오는 그 사랑의 강줄기 소리를 들으며, 부모님께 보내드릴 시 한 편을 찾아 읽는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 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 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셨는지도 알게 되었다

- 정호승, '아버지의 나이' 中


'아버지의 나이'라는 시의 제목처럼, 나는 부모님과 같이 나이를 들어가며 뒤늦게 두 분의 크고도 깊은 사랑을 헤아려본다. 갚을 수 없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적어도 너무 늦어지지는 않게, 자주 연락도 드리고, 작은 마음이라도 전하며 살아가고 싶다.


내게 살아갈 기회를 주시고, 죽음의 문턱에서도 몇 번이나 살려내신 두 분이 오래오래 건강히 이 생에 함께 해주시기를...나는 진부한 인사말이나마 감사를 전한다. 더불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오해와 상처를 넘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비를 머금은 아카시아향이 깊고도 고요하게 퍼지는 밤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린이날은 이 정도면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