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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조 Mar 13. 2019

회사에서 잘렸다.

아니에요, 제가 부족해서죠

 살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석양이 아름답게 지고 있었고 햇빛이 겹겹이 레이어링 된 커튼면처럼 천천히 공간을 감싸며 내려왔다. 나는 어쩐지 나 자신이 초라하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흐르는 음악의 선율이나 식물의 푸르름 같은 것들이 지나치게 아름다워서, 나는 언제까지고 부끄러웠다. 얼굴을 가리고만 싶은 아름다움 들이었다.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내게 비춰 지기엔 너무 아까운,  찬란한 아름다움이었다.


 출근한 지 이틀 만에 첫 직장에서 잘렸다. 대표님이 동행했던 회의가 문제였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대표님이 팀장님을 불렀다고 한다. 팀장님은 곧 사람이 하나도 없는 한적한 회의실로 나를 불렀다.


"일단 아쉬운 얘기를 전하게 되었어요."


 대표님이 생각하기에 신입사원인 내가 어떻게 회의에서 졸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졸았다니?





아연실색한 나는 재빨리 내가 필기한 노트를 보여주었다. 장장 여덟 페이지에 걸쳐 빼곡히 회의 내용이 적힌 필기노트를 본 팀장님은 곤란한 눈치였다.


"제가 필기하느라 고개랑 자세를 좀 숙이고 있어서 그랬나 봐요."


팀장님은 일단 대표님에게 상황을 설명해보겠다고 했다. 한참 후 팀장님은 어두운 얼굴로 돌아왔다.


"대표님께서 오해할 소지를 제공한 것도 그쪽 문제라고 결정 번복은 없으시다네요."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집에 돌아오니 문 앞에 택배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게 보였다. 더듬더듬 가위의 날카로운 면을 세워 테이프를 뜯고 박스를 열어보니 업무용으로 쓰려고 산 다이어리가 나왔다. 회사 면접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고 신이나 주문을 했던 기억이 스쳐갔다. 멍하니 그 애매한 질량감의 노트를 바라보던 나는 그냥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도 없는 회의실에서 팀장님을 기다리면서, 사실은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왠지 그럴 것 같았다. 한번 꼬인 상황은 안 좋은 쪽으로만 흐르게 마련이니까. 어떤 관계는 아무리 노력해도 회복되지 않는다. 틀어진 관계는 가끔, 아니 자주 그러니까.


 오스카 와일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평생에 걸친 로맨스의 시작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온 우주가 나를 미워하는 것만 같은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는 정말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나를 미워하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을 미워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를 못했다. 사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면 되는 단순한 문제인데도 나는 그것마저 잘 되지가 않았다.


 팀장은 ‘우리’가 내 부족한 부분을 품기에는 너무 부족한 사람들이라서 그렇다고 말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이 정확히 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말이 더 아팠다.


 아니에요, 제가 부족해서지요.


그렇게 답하며 나는 속으로 한번 더 주억거렸다. 내가 부족해서 그래. 내가 너무 부족하고, 너무 미숙해서.  배울게 너무 많아서. 그런데 배워야 할 점을 발견할 때마다 있을 자리를 잃는다면 난 어디로 가야 하지.


 오늘도 미숙한 나는 맞지 않는 우주복을 입은 채 홀로 우주를 유영하는 비행사처럼, 떠돌듯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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