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삼 개월 하고 일주일 만에 다시 브런치를 찾았다. 좋아하는 책을 읽는데 '모든 것을 기록해두라'는 얘기가 계속해서 나오길래 그 단락이 끝나자마자 브런치 앱을 열었다.
여기는 올림픽공원에 있는 한 카페.
핸드볼을 하러 간 남편을 기다리며 책을 읽는 중이다. 브런치에 소식을 전하지 않은 동안 내 인생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핫한 변화는 아무래도 그토록 기다리던 남편과의 재회겠지. 손가락을 꼽아보니 우리가 떨어져 있던 시간이 무려 21개월이 넘었더라는.
올 2월에 첫 번째 비행기를 못 탔을 땐 이게 무슨 일이야 했다가 올 3월 초에 러시아 전쟁으로 두 번째 비행기가 취소되어버리자 일하다 말고 대성통곡을 했던 게 생생히 기억하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내 생일 전날 도착한 남편은 올해 내 생일에 가장 큰 선물이 되어주었고, 큰 덩치만큼이나 많이 먹는 남편으로 인해 엥겔지수 레벨이 확연히 달라졌지만 그래도 혼자보다는 둘이가 훠얼씬 좋은걸 말로 어찌 다할 수 있을까. 엄마가 보내주신 쌀이 혼자 있을 때에는 도대체 줄어들지가 않더니 남편이 오자 하루가 다르게 쌀이 쑥쑥 줄어드는데, 난 그게 참 좋다. 사람 사는 것 같아서.
무엇보다 좋았던 건, 결혼기념일에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다는 것이리라. 혼자 보냈던 작년 결혼기념일엔 얼마나 쓸쓸하고 서글펐던지. 글을 쓰며 스스로 위로하고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했지만 내 속은 많이 아팠었다. 인간은 모두 외로운 존재라고 위로해보아도 서글퍼 눈물이 찔끔 나왔더랬다. 그런데 올해는 함께여서 특별한 곳에서 기념을 하였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태리 친구의 레스토랑에 가서 깜짝 축하도 받고, 페루 친구의 라틴 바에 가서는 축하 칵테일을 선물 받았다. 스페인어가 통하는 페루 친구를 만나자 남편의 기분은 한결 가벼워져 그 커다란 몸뚱이가 곧 날아갈 것만 같았고, 쿠바 음악이 나오자 둠칫 둠칫 몸이 절로 흔들리며목청껏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남편의 외국인등록증이 발급되었고, 본인 명의로 은행계좌도 오픈하고 핸드폰도 내 명의에서 변경하여 온전히 그의 것이 되었다. 한국에 도착한 지 삼일째 되던 날에 동네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헬스장에 등록하여 매일 4시간씩 운동을 하는 것도 모자라 집에서도 틈만 나면 운동을 한다. 얼마 전에는 누가 버린 운동기구를 주어와서 너무 좋다며 열심히 사용 중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버린 물건들 중에 멀쩡한 물건들이 참 많다. 그런 버려진 물건들을 보면 남편은 그게 아까워 자꾸만 집으로 가져오려고 하지만, 꼭 필요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은 큰 집으로 이사 가면 그때 주워오라며 거절하고 있다.남편만큼 나도 멀쩡한 물건을 보면 안타깝지만 지금 사는 집에서 최대한 짐을 늘리지 않는 게 목표라면 목표인지라 지키도록 노력 중이다.
핸드볼 선수에 코치였던 남편이 한국에 있는 외국인 핸드볼팀을 찾아 내가 연락을 하였고 수요일에 처음으로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에서 그들을 만났다. 같은 주제로 만난 지라 금방 친해졌는데 십 년 만에 하는 핸드볼은 남편의 온몸에 크나큰 고통으로 환영해주어 결국 나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의 얼굴에는 연신 웃음이 만개했다.
"자기,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파이팅!"
몸은 부서질 듯 아팠지만, 몹시나 고대하던 핸드볼 경기장에 함께 와서 간절히 원하던 걸 경험하게 해 주어 고맙고 사랑한다며 계속해서파이팅을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너무 아픈 자신의 모습이 민망해서 그런 걸 지도. 훗.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도움이 필요한지라 몸은 피곤하지만 남편을 위해 오늘도 함께 올림픽 경기장을 찾아왔다. 다음부터는 혼자 와야 하니 길을 잘 봐 두라고 했더니 오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두었다. 아직은 물가에 내어둔 것처럼 걱정이 되지만, 이 시간도 금세 지나가리라. 우리가 다시 만나기까지 걸렸던 그 시간처럼.
덧붙이는 말) 제 안부를 궁금해하시고, 연락 주신 작가님들과 독자님들에게 답변 못 드려서 죄송하고, 연락 주셔서 참 마음이 따뜻해지고 많이 감사하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