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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an 14. 2024

크리스마스이브가 뭐라고

체질 공부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날이 아니었지만, 막상 24일, 이브가 되자 괜히 마음이 설레었다.


나 : 자기, 오늘 저녁에는 뭘 먹어볼까?

남편 : 뭐가 있지?

나 : 목살 있는데 그거 구워 먹을까?

남편 : 고기 좋아.

나 : 그럼 자기가 상추 좀 뜯어오세요!


추운 겨울이었지만 일찍이 집 안으로 옮겨둔 커다란 화분에 푸릇푸릇한 상추들이 빼곡히 모여 있어서 둘이서 실컷 먹고도 남을 만한 양이었다. 남편이 스테인리스 볼에다 상추를 수확하는 동안 나는 500g의 품질 좋은 목살을 꺼내어 프라이팬에 지글지글 굽기 시작했다.


엄마가 보내주신 견과류를 넣어 맛이 기똥찬 쌈장도 꺼내고, 마늘도 구워 둘이서 배가 부르도록 목살을 즐겼다. 그걸로 끝냈어야 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라 그런지 독일에서 크리스마스 때 먹는다는 슈톨렌이 급작스레 먹고 싶어졌다. 배는 충분히 부른데 말이다. 남편은 슈톨렌이라는 것을 며칠 전에 처음으로 먹어 보았고, 나는 그동안 슈톨렌을 단 한 번도 즐겨 먹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그것이 그토록 먹고 싶었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귀신에 씐 것이었는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상
문제의 슈톨렌


평소에 안 하던 짓을 기어코 하고야 말았다. 배달앱을 열고 동네 제과점에서 슈톨렌을 배달시켰다. 식사를 아닌 디저트를 배달시켜 본 것도 처음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명목하나로 슈톨렌이 오자마자 포장에 감탄하며 새하얀 눈을 뿌려놓은 듯 소복이 덮여있는 하얀 설탕가루(?)가 흐트러지지 않게 조심히 칼을 대고 얇게 잘라주었다. 처음에 남편과 둘이서 한 조각씩 먹고는 맛있다며 미친듯한 식욕에 계속해서 조금씩 잘라서 먹게 되었다. 아마도 반 이상을 혼자서 먹은 것 같았다. 식사 후 남편보다 내가 디저트를 더 많이 먹은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탈이 나기 마련인지.

다음 날인 크리스마스가 휴일이지만 월요일이었기에 남편은 이른 새벽에 일터로 가야 해서 슈톨렌을 먹고 잠시 후에 잠자리에 누웠다. 딱히 할 일이 없던 나도 심심해서 침대에 누워버렸다. 고기도 충분히 먹은 데다가 설탕과 밀가루의 집합소인 디저트까지 한가득 먹고는 움직이지도 않고 자리에 누웠으니, 내 속은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고, 다음 날인 크리스마스에는 물 이외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내가 생각해도 욕심이 과했고, 그 결과가 참담하게 돌아온 걸 알게 되자 뒤늦은 후회만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출근을 한 26일에도 여전히 속은 좋지 않았다. 역류성 식도염과 함께한 지 한참이라 그 증상 중 하나로 마른기침이 종종 나오는 편인데 명치가 꽉 막힌 데다가 가슴이 답답하니 마른기침이 쉴 새 없이 나오고 한숨은 또 얼마나 쉬어지는지. 그날은 팀원과 2023년에 사무실에 함께 나오는 마지막 날이라 맛난 점심을 먹고, 커피도 한 잔 했다. 물론 저녁은 먹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면서 역시나 점심 한 끼만 먹었는데도 속이 계속 답답하고 전혀 나아지지 않아 일주일째 되는 날 동네 내과를 내원하였다. 진료를 보시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무것도 드시지 마세요. 속이 많이 상했네요. 지금은 물도 많이 드시면 안 되고 약도 식사 안 한 상태에서 드세요. 속을 비워준 다음에 천천히 죽을 조금씩 먹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요? 그럼 점심 한 끼씩 먹은 게 화근이었을까요? 저 위내시경 한번 해 보면 안 될까요?"


"해도 되긴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먹지 말라는 진단을 받고는 약국에서 약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약을 먹어보았지만 전혀 동요가 없었다. 약도 전혀 효과가 없는 듯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속이 안 좋다고 말씀드렸더니 약국에 가서 위청수를 사서 마시면 좀 나아질 거라고 해서 마셨지만, 그것도 별 효과가 없었다. 해가 바뀌어도 나의 몸은 여전히 몹시 힘든 상태라, 여기저기를 알아보다가 회사 근처에 체질을 진단하는 한의원이 있어서 전화를 해 보았다. 그곳은 100% 예약제여서 토요일에만 한 자리가 있다고 했다. 바로 예약을 했다.


예전에 팀원 한 명이 한의원에서 체질을 확인하고는 음식이 도움 많이 되었다고 해서 나도 체질검사를 해 봐야지 하면서 십여 년째 하지 않았는데, 몸이 극도로  힘들어지자 드디어 체질검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환자들이 아주 많은 유명한 한의원이었다. 체질은 한 번에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세 번은 와서 꾸준히 맥을 짚고, 검사를 해야 결과가 나온다고 하셨다.


그 한의원은 아침 7시부터 진료를 하는 곳이라 월요일, 화요일 아침 7시로 예약을 했다. 월요일에는 7시 조금 늦어 도착했는데 이미 사람들이 많았고, 나의 대기 순서는 7번이었다. 예약을 왜 하는지 무색하게 예약을 해도 한참을 기다렸다가 진료를 보는데, 이 병원의 좋은 점은 의사 선생님이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씩 모두 기록하며 참고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진료실 침대에 누우면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가며 두 번씩 맥을 짚고, 손과 팔 그리고 발과 다리에 벌이 침을 듯 아주 빠른 속도로 침을 톡톡 하며 놓으시는데 꽂아두는 침이 아니라서 별로 아프지도 않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선생님의 손이 아주 빠르셨다. 그렇게 세 번을 방문한 날, 내 체질이 나왔다.


금음체질


이 체질의 건강 1조는 모든 육식을 끊는 것이고, 제2조는 약을 쓰지 않는 것이며, 제3조는 화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해로운 음식에 보면, 모든 육식, 마늘, 커피, 설탕, 밀가루등 크리스마스이브날 내가 먹은 것들이 모두 있었다.

금음체질


생각해 보니 올해 만으로 반백세가 되는 해였다. 그러니까, 거의 50년 동안 먹어왔던 것들이 내 몸에 쌓여있다가 욕심을 과하게 부렸던 그날 폭발을 한 것이었다. 욕심이 화근이었다. 평소에 나는 고기보다는 생선구이나 조개구이에 야채를 더 좋아하긴 했고, 삼겹살이나 소고기를 먹고 나면 배에서 전쟁이 나면서 화장실을 가곤 했는데 그래도 고기를 먹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원래도 나는 양이 많지 않아 조금씩 먹었지만 한 번씩 고기는 먹어야 힘이 난다는 생각인 데다, 고기를 거의 매일 먹어주어야 하는 남편과 살다 보니 나름 꾸준히 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고기를 끊으라니...!


유익한 것을 보니 한숨만 나왔지만, 일단 몸을 회복해야 하니 나의 체질에 맞는 음식을 조금씩 먹어보기로 하였다. 내가 참 좋아하고 남편이 쉬는 날마다 해 주던 사과, 당근 주스와 이제는 안녕을 해야 하고, 아침마다 먹던 삶은 계란도 노른자는 좋지 않으니 먹지 말라고 하셨다. 흑미, 귀리에 서리태를 넣어 지은 잡곡밥은 먹지 말고 흰쌀밥을 먹고, 모든 근채류에 버섯류도 좋지 않다고 하니 나는 이제 뭐를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잠시 슬프기도 했지만, 덕분에 나의 체질을 알게 되고 나에게 유익한 음식과 해로운 음식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해산물은 좋다고 하여 회사 나가는 날에는 점심을 최대한 생선구이로 하고, 죽을 먹을 때에는 게살죽을 먹었더니 확실히 속이 편안해지는 듯했다. 아직 가슴이 답답하고 회복되지 않아 이번 한 주 동 안에도 매일 아침 7시에 한의원을 예약해 두었는데, 덕분에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고, 신문도 읽고 책도 일게 되어 여러모로 좋은 점이 있긴 하다.


나의 체질을 알게 되면서 크게 깨달은 점은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나에게는 독이 될 수 있고, 모두가 좋지 않다고 하는 음식이 나에게 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기질이 모두 다르듯, 체질도 모두 다른데, 남들이 좋다고 해서 매일 먹으려고 했던 당근, 사과 주스가 나 같은 금음체질에게는 맞지 않는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여간 큰 수확인 아닐 수 없다. 그냥 나이가 들어서 여기저기에 염증이 잘 생기고 뾰루지도 잘 올라오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나에게 맞지 않는 음식들이 쌓여서 그런 결과를 가져다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의원에서 8 체질의학책이 있길래 구입하여 읽고 있는데, 사람의 체질을 8가지로 분류해 놓고 체질마다 맞는 음식이나 운동이 다르다는 게 신기하여 꾸준히 공부를 해 볼까 한다. 책을 읽고 음식들을 볼 때마다 궁금한 게 많아서 의문점이 생길 때마다 적어두고는 한의원에 가면 선생님께 여쭤보면서 의문을 하나씩 푸는 것도 매일 한의원에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건강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모두의 바람이듯, 나 또한 그러하다. 사랑하는 모든 이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서 함께 좋은 것을 보고, 맛난 것을 먹으며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라도 나에게 해로운 것은 조금씩 멀리하고, 유익한 것을 가까이하면서 몸을 서서히 바꿔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건강만큼 소중한 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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