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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희 Aug 05. 2021

당신이 밥 먹는 게 꼴 뵈기 싫어졌어.

브런치 X저작권 위원회.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명작 공모전-인어공주각색

인어공주는 벌써 며칠 째 잠을 설쳤다. 매일 같이 즐기던 커피를 끊고 부러 러닝머신을 뛰며 몸을 고되게 해 보고 머리맡에 양파를 두고 자면 숙면을 취한다는 말에 주방에서 양파를 가져다 놓고 잠을 자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을 쓴들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저 놈 때문이야.  


오늘도 잠들지 못한 인어공주가 왕자를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한 것이 언제였는지, 손을 마주 잡은 건 언제였는지. 또 마지막 대화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결혼을 한지 십 년이었다. 십 년. 고작 십년 사이에  인어공주와 왕자의 관계가 변했다. 부부였으나 부부보단 동거인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사이가 멀다 해서 부부가 아닌 건 아니었다.

 

인어공주는 왕자를 위해 매일 따뜻한 밥과 갓 한 반찬을 상에 올렸다. 귀하게 자란 만큼이나 입 짧은 왕자의 입맛을 고려하는 건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왕자는 대체적으로 기름진 고기반찬을 선호했다. 가끔 상 위에 고기반찬이 없는 날이면 밥투정을 하곤 했는데 결혼 이년 째 만 해도 인어공주는 그의 밥투정을 귀엽게 여겼다.

 

지금 생각해 보자면 다 큰 어른의 밥투정이 뭐가 귀여울까 싶었지만 콩깍지가 덜 벗겨진 그때의 인어공주는 왕자의 모든 행동을 귀여워했다.


눈만 맞아도 사랑이 불타오를 때가 있었다. 눈가에 핀 기미가 젊은 청년의 여린 피부에 올라온 주근깨처럼 생기 있어 보였고 밤이 되면 짙어지던 수염자국이 야성미 넘쳐 보일 때가 있었다. 누군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어공주도 사랑을 했다. 사랑에 빠진 인어공주의 눈에 왕자는 모든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을 남자였다.


그러나 지금의 왕자는 달랐다. 무엇하나 맘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생기 넘치던 주근깨는 꼴 보기 싫은 점들로 바뀌었고 귀엽게만 보이던 밥투정은 그녀를 화나게 하는 주범이었다.  


하루 중 유일하게 왕자를 마주하는 건 밥을 먹을 때였다. 인어공주는 문뜩문뜩 밥을 먹는 그를 보곤 했다. 그는 서툰 젓가락질로 밥을 떠먹었다. 젓가락으로 밥을 떠먹는 건 외 놈이나 하는 건데. 밥은 수저로 떠먹어야지. 밥을 먹는 그를 보는 인어공주의 시선은 대부분 못마땅했다.


젓가락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입은 짧으면서 욕심은 또 얼마나 많은지 한 손에 쥔 젓가락으로 밥을 뜨고 또 다른 손에 쥔 수저로는 국을 떠먹었다. 두 손에 수저를 든 모습은 못 배운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보통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밖에 흘리는 것이 더 많았다. 접시 아래 깔아 두었던 직접 수놓은 식탁보는 점점 그가 흘린 음식들로 얼룩졌다. 매일 끼니를 챙길 때마다 인어공주는 식탁보를 빨아야 했다. 된장국이나 하얀 반찬이 만든 얼룩의 경우에는 쉽게 뺄 수 있었지만 빨간 반찬을 흘릴 경우에는 무슨 짓을 해도 희미한 얼룩이 남았다. 그와 밥을 함께 한지 일 년이 되던 어느 날 인어공주는 그가 흘린 음식의 얼룩이 가득한 식탁보들을 치웠다.

식탁 위, 하얀 천이 주었던 아늑한 맛은 사라졌지만 왕자의 식사를 챙기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식탁보를 치우고 두 손에 수저를 들지 못하게 했다. 고기반찬을 빼앗고 그녀가 좋아하는 해초 위주의 반찬을 꾸렸다. 그러나 이런들 저런들 그녀의 노력이 무색하게  밥을 먹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밉기만 했다.


더욱이 우스운 건 밥을 먹는 그의 모습이 미워지자 그의 모든 단점이 눈에 들어온 다는 거였다.


엄지발가락보다 검지 발가락이 긴 발 모양이 별로였고 손가락 위에 복실 거리는 털이 재수 없어 보였으며. 가슴 사이에 난 만성 여드름이 지저분했다. 또 인어 공주의 신경을 거스르는 건 왕자의 사소한 생활 습관이었는데 머리를 감고 굳이 화장실에서 나와 거실에서 털어 재낀 다는 것과 집에 들어 올 적에 신발을 대충 벗어던지는 버릇이 대표적이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권태인가. 여전히 잠들지 못한 인어공주가 뒤척이며 팔을 괬다.


고난과 역경을 뛰어넘은, 무려 인종을 뛰어넘은 사랑이 그렇게 쉽게 식을 수 있나. 진짜 사랑이 식은 거라면 어쩌지. 밥 먹는 게 꼴 보기 싫어지면 끝난 거라 봐야 한다던데 뭐가 끝나긴 한 건가.


우리는 이제 그렇고 그런 부부가 되어버린 걸까.


인어공주의 시선이 잠든 왕자를 향했다. 시끄러운 부인 속도 모르고 저렇게 곤히 잠을 잘 수 있나. 인어공주는 괜스레 잠든 왕자의 콧잔등을 때렸다.



"나는 잠도 못 자고 있는데 넌 잠이 오니?"

"왜 못 자는데? “



꿈결에 우연히 답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인어공주는 오랜만에 들은 남편의 목소리가 썩 맘에 들었다. 코앞에서 흘러나오는 입 냄새가 고약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당신 밥 먹는 게 꼴 뵈기 싫어졌어.”



인어공주가 말했지만 왕자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얼굴은 잠이 든 것처럼 고요했다.


방금 했던 말은 꿈결이었네. 인어공주는 물끄러미 왕자를 바라보았다. 희미한 달빛에 비친 왕자는 여전했다. 처음 물가에 나올 적에 보았던 높은 콧대와 눈 끝에 매달린 주근깨가 여전히 시선을 끌었다.



“나는 당신 밥 먹는 거 좋던데.”

“응?”



잠이 든 줄 알았던 남편이 몸을 뒤척거렸다. 은근슬쩍 파고든 팔이 인어공주를 감싸 안더니 팔베개를 했다. 평소 팔이 아프다며 죽어도 해 주지 않던 팔베개였다.



“당신 밥 먹는 거 복스럽잖아. 오물거리는 게”



어여쁘다 하는 말도 아니었고 사랑스럽다 하는 말도 아니었다. 그러나 인어공주는 왕자의 복스럽다는 말이 좋았다. 어여쁘다 하는 말이 아니었고 사랑스럽다 하는 말이 아니라서 였다.


잠자코 그의 팔베개를 받아들인 인어공주가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겨드랑이 안쪽에 코를 묻고는 눈을 감았다.


잠이 몰렸다. 코를 묻은 겨드랑이에서 콤콤한 땀 냄새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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