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희 Aug 06. 2021

밤색 눈.

브런치 X저작권 위원회.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명작 공모전-눈의 여왕

    

좀 남달랐다. 처음엔 뭐가 다르다는 것인지 몰랐다. 남들과 똑같이 눈이 두 개였고 남들과 똑 같이 코가 하나였으며 남들과 똑 같이 입이 하나였다.


특이하다 싶은  그의 눈동자였다.


똑 같이 동그랗고 비슷한 크기였다. 그러나 그 색이 달랐다. 푸른빛이 감도는가 싶으면 시커먼 암흑 같기도 했다. 마치 다각 면에서 다양한 색의 빛을 내는 보석 같아 보였는데 각이 없는 구체에서 어떻게 다른 빛을 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재석은 단점 일지 장점일지 모를 특징을 백분 활용했다. 어렸을 때에는 보통 간식을 하나 더 얻는 데에 썼다. 젤리나 사탕.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이었다. 어둡고 밝은 눈으로 빤히 보고 있자면 무엇 하나 더 주지 못해 안달을 냈다. 말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누구나 그랬다. 손에 쥔 사탕이 전부인 어린아이도 일상에 지친 얼굴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점원도 고집 센 집주인 할아버지도 매한가지였다.


어린아이의 손에 들린 사탕을 빼앗고 점원의 무심한 얼굴에 웃음꽃을 피게 했다. 월세가 밀린 지 벌써 삼 개월 째였지만 집주인은 아무런 독촉이 없었다. 재석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가 모델을 꿈꾼 건 고등학생 때였다.      


몇 년째 비었던 옆집에 이사가 한창이었다.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바닥에 못 보던 장판이 깔렸다. 누군지 모를 이에게 얻은 봉지 과자를 씹으며 재석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초록빛 박스를 품에 든 여자도 함께였다. 선이 깔끔한 똑 단발을 한 여자가 박스를 고쳐 들을 때마다 그녀의 머리에선 꽃 냄새가 풍겼다. 새우 과자 냄새를 뚫고 나온 꽃 향기는 어린 재석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첫사랑의 시작이었다.


그때 재석의 관심사는 온통 옆집 누나였다. 어린아이가 준 사탕을 먹을 적에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고 덥수룩한 머리를 정리할 적에 그녀의 깔끔한 똑 단발을 상상했다. 그의 상상 속 하얀 목덜미를 장식한 단발머리가 바람결에 찰랑이며 어린 재석의 마음을 뒤 흔들곤 했다.      


모든 게 쉬웠던 재석이 그녀에겐 모든 게 어려웠다. 말 한마디 건넬 수 없었고 그의 특별한 눈동자는 선보일 방법조차 없었다. 그녀의 곁에 서 있노라면 재석은 제 심장이 눈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오직 눈 하나로만 사람을 홀리던 재석이라서 더 그랬다. 무언 갈 하지 않아도 되었던 그가 무언 갈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첫사랑인 옆집 누나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카메라 공부를 한다고 했다. 무엇을 찍는 사람이 될지 알 수 없으나 사람을 찍고 싶다고 했다. 호시탐탐 때를 기다리던 재석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무엇을 찍던 재석은 그녀의 카메라에 자신이 담겼으면 했다.


자신이 있었다. 여느 모델처럼 잘생긴 외모를 가진 것도 볼품없이 긴 다리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겐 특별한 눈이 있었다. 쉽게 사람의 호감을 훔치던 재석은 그렇게 모델이 됐다.     


녹녹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의 눈은 특별했으나 그는 특별하지 않았다. 누구처럼 남성미 넘치는 몸 선을 뽐내며 화보를 빛낼 수도 누구처럼 긴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무대를 뛰 놀 수도 없었다.      


재석은 보통 얼굴이 클로즈업된 화보를 찍었다. 얼굴 중에서도 눈의 비중이 컸다. 안경이나 선글라스. 렌즈를 홍보하는 화보가 대부분이었다. 그의 특별한 눈은 안경이나 선글라스, 렌즈 속에 가려져 빛을 바랐다. 그 누구도 화보 속 그가 그라는 걸 몰랐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상이 반복됐다. 자신의 인생이 잘못된 길로 흐르고 있구나. 알아차렸을 때엔 재석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안경이나 선글라스 또는 렌즈를 끼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뿐이었다.  

    

네 번째 월세가 밀리던 날이었다. 재석은 초록빛 렌즈를 끼고 촬영을 하고 있었다. 번쩍이는 조명 아래 커다란 렌즈가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카메라 렌즈 아래 초록색 그래픽이 그려진 컬러렌즈를 낀 재석은 마치 도마뱀처럼 보였다. 눈을 꿈벅이면 렌즈 속 그의 다갈색 눈동자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그거 알아? 네 눈에 유리 조각이 박혀 있어. 손톱만 하려나. "     



초록빛 컬러렌즈 속 재석의 눈동자가 카메라 렌즈 너머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깔끔한 똑 단발이 그의 시선을 따라 찰랑거렸다. 찰랑 거리는 그녀의 머리칼을 타고 꽃향기가 풍겼다. 익숙한 향기는 카메라 렌즈 너머 재석의 콧잔등을 두드리며 그를 두근거리게 했다.       



“방금 그 눈 예쁘다. 이쪽 좀 볼래?”     



재석은 두툼한 카메라 렌즈에 가려진 여자의 얼굴이 궁금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예쁜지, 그 예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지. 드디어 특별한 자신의 눈을 마주한 옆집 누나의 눈은 어떤 색을 뛰었는지.      

카메라 너머 유일하게 드러난 그녀의 입가가 미소를 지었다. 붉은 입술이 곡선을 타고 올라가자 재석은 눈을 껌벅였다. 이상한 이물감이 눈동자를 맴돌았다.     



“트롤이 내 거울을 떨어트려서 어쩔 수 없었어. 워낙 멍청해서 그런 거니까. 착한 네가 이해 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눈물이 났다. 재석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초록빛을 뛰었다가 파란빛을 내곤 붉은색을 뽐내며 흘렀다. 마치 다각 면에서 다양한 색의 빛을 내는 그의 눈동자 같았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이 밥 먹는 게 꼴 뵈기 싫어졌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