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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희 Aug 09. 2021

마음으로 낳은 딸.

브런치 X저작권 위원회.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명작 공모전-엄지공주.

 어렸을 때엔 입양이란 말이 뭔지 몰랐다.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적에 덧붙이곤 했는데 그 말이 나이나 성별 또는 키와 같은 나를 설명하는 특징인 줄로만 알았다.


보통 애잔한 얼굴을 한 사람이 나에 대해 물으면 엄마는 자랑스럽게 나를 설명했다. 나이 성별 또는 키가 아닌 언제쯤 어디서 굳이 나를 왜. 같은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공개 입양을 말하며 나를 소개하는 엄마의 얼굴은 만족의 빛이 감돌았다. 품에 나를 안곤 내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이면 나는 엄마의 손길에 따라 미소를 지어야 했다.


“우리 엄지 예쁘죠?”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더욱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어깨를 감싼 엄마의 온기가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촬영이 끝난 뒤였다. 엄마는 화가 나 있었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화의 이유가 자신 때문인 건 분명했다.


“밥을 안 먹이냐고? 애가 좀 작을 수도 있지. 그게 아나운서라는 사람이 할 소리야?”


깔끔하게 정돈된 엄마의 손가락이 핸들을 빠르게 돌렸다. 거친 자동차의 움직임에 거울에 달린 묵주가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햇살에 반사된  크리스털 묵주가 반짝 빛을 내며 시아를 방해했다.


"너는 거기서 고개를 끄덕거리면 어쩌자는 거야? 다들 내가 밥 안 주는 계모인 줄 알 거 아니야! “


엄마의 호통에 작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보통 엄마가 화를 낼 때엔 눈치 것 행동해야 했다. 말을 너무 많이 해서도 말을 하지 않아도 안됐다. 화가 난 엄마를 달래야 했는데 고작 여섯 살 된 아이가 화가 난 어른을 달래는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잘못했어요.”


버릇 저럼 쏟아지는 말은 의미가 없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엄마는 왜 화가 났는지 몰랐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엄마의 화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의 잘못이 됐다.


“잘못했어요. 엄마.”


어렸을 적엔 그게 당연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곳이면 엄마는 자주 화가 나 있었다. 아주 가끔씩 사소한 실수를 할 적이면 엄마는 감정 없는 눈으로 바라보곤 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작은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어릴 때 시작된 버릇은 성인이 된 지금 까지도 여전했다.      


어느 주말 아침이었다. 햇살이 드리운 거실에는 텔레비전 소리가 울렸다.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겸 점심으로 시리얼을 먹고 있었다. 엄마는 거실 한쪽 구석에서 글을 쓰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노트북을 두드리는 엄마의 키보드 소리가 단정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리듬감으로 울리는 키보드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녀의 심취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 나를 마음으로 낳았어? “


뜬금없이 그게 왜 궁금했는지 몰랐다. 나 학교가. 오늘 저녁 반찬은 뭐야? 같은 일상 속 익숙한 질문처럼 그냥 자연스레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때 엄마가 쓰고 있던 글이 '마음으로 낳은 딸.'이라서 물은 건 절대 아니었다.


나의 물음에 엄마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노트북을 두드리는 손가락은 여전히 단정 했고 고심하는 얼굴색도 여전했다.


나는 혹시 엄마가 못 들은 것이 아닐까 되물었다.


“나를 정말 마음으로 낳았다고 생각해?”


타자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멈췄다. 큐빅이 박힌 붉은색 안경을 벗어 든 엄마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감정이 뒤 섞인 눈으로 한참을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렴풋이 내가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엄마의 눈은 다시 노트북 모니터를 향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처럼 잘못했다 말이 나올 것만 같았다. 간질간질한 입안에 눅눅해진 시리얼을 욱여넣었다. 입이 빌라 치면 다시 시리얼을 밀어 넣었다. 잠시잠깐 입이 빈 사이 사죄의 말이 튀어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그날의 엄마의 눈을 잊을 수가 없었다. 감정이 어린, 그러나 들어내지 않는 눈은 변명을 하는 것 같기도 오히려 당당해 보이기도 했다.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왜 말하지 않았을까.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했던 건 아닐까. 나의 궁금증은 그로부터 한참 뒤에야 풀릴 수 있었다.      


엄마의 열여섯 번째 소설이 출간된 지 보름이 지난 무렵이었다.


그날따라 일이 없었다. 일이 없는 회사에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상사의 눈치를 살피던 나는 인터넷 창 메인 기사를 줄줄이 읽어 내렸다.

속이 쓰릴 때엔 산미 있는 커피를 마시는 게 좋다는 기사를 읽고 불륜 스캔들에 휘말린 정치인의 기사를 읽었다. 더디게 흐르는 시간 속에 흥미 없이 기사를 읽어 내리던 나의 눈이 한 곳에서 멈췄다. 엄마에 대한 기사였다.


출간을 축하한다며 시작된 기사는 엄마의 작가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엄마가 써 내린 공개 입양에 대한 글들과 그 글 속 모녀 관계에 대한 찬양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기사를 마주했던 것처럼 흥미 없이 읽어 내리다 문뜩 마지막 질문에서  시선이 머물렀다. 오랜 시간 궁금했던 나의 질문의 답이 그곳에 있었다.


‘언젠가 딸아이가 물은 적이 있어요. 자신을 정말 마음으로 낳았느냐고.’


전문가의 솜씨가 엿보이는 흑백 사진 속 엄마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엄마는 친절한 미소를 덧붙였을 터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떻게 자식을 마음으로 낳겠어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죠.'     


엄마의 답변에 대한 질문자에 답엔 '하하' 보기만 해도 가식적인 웃음소리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 '하하' 문장을 읽으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용했냐고요? 글쎄요. 적어도 나는 진짜 엄마한테 견주어도 지지 않을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주려 했어요. 그 정도면 엄마로선 할 만큼 한 거 아닌가요?‘       


아침을 먹는 내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내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던 걸까. 내가 상처 받을까 걱정을 했던 걸까.  그래서 나는 나를 마음으로 낳지 않았다는 엄마의 말에 상처를 받았을까.      


내가 상처를 받았던 받지 않았던 분명한 건 엄마가 나를 마음으로 낳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의 관계가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거였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딸이었고 엄마는 여전히 나의 엄마였다.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관계였다.   



센 세계명작 공모전-눈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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