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희 Aug 11. 2021

소문.

브런치 X저작권 위원회.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명작-성냥팔이 소녀.

창석은 독립을 앞둔 보육원의 아이들을 위해 지어진 성냥 공장 속 유일하게 보육원 출신이 아닌 직원이었다.

 

갓 학교를 졸업한 그가 어떻게 보육원의 사람들로 이뤄진 성냥공장에 자리 잡을 수 있었는지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공장장은 그가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으나 보육원 출신이 아니라는 것을 쉬쉬하라 귀띔했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걸 걱정한 듯 보였다.


공장장의 충고를 달게 들은 창석은 입을 닫았다. 어쩌다 한 번씩 공장 사람들이 말을 걸어올 때면 혹시나 자신의 비밀을 들킬까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말문을 닫은 창석의 노력이 무색하게 공장 사람들은 대체로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성냥 공장 속 입을 닫은 창석의 하루는 매우 바쁘게 흘렀다. 갓 나온 성냥을 가지런히 박스에 넣고 꽃무늬가 화려한 스티커를 붙였다. 단순한 일이었으나 그 단순한 일을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반복했다.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 보면 하루가 다 지나 내일이 찾아왔다. 또 다른 오늘을 마주한 창석은 다시 가지런히 담은 성냥 박스에 스티커를 붙여야 했다


반복되는 일상이 따분해 질 무렵이었다.


 여자가 창석 시아에 들어왔다.


공장을 지은 보육원 원장의 딸이라고 했다. 딱히 하는 일은 없어도 성냥공장의 실세이니 조심하라 조언하는 동료의 말에 창석은 여자를 향한 시선을 거뒀다.


그러나 동료의 충고 이후 그의 시선엔 자꾸만 그녀가 걸쳤다.  왜 자꾸만 그녀가 보이는지 몰랐다. 창석의 시선 끝엔 언제나 그녀가 있었다.


건물 너머의 울창한 나무를 볼 적에 우연히 그곳에 있는 여자를 보았고  지루한 오후 시간에 하품을 하다 우연히  그녀를 보았다. 고인 눈물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여자는 우울한 구석이 있었다. 밝은 햇살 아래에 있음에도 그녀 위에만 그림자가 드리운 것 같았다.


그늘 진 그녀는 언제나 혼자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를 멀리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이 무표정한 얼굴이 섬뜩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가까이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관심은 모두 그녀를 향했다. 잠시 자리를 비울 때 면 모두들 그녀에 대해 말했다.


원장의 친 딸이 아니라더라. 누군가 버리고 간 애를 주어다 키웠다더라. 보육원에 버려진 수많은 애들 중 원장의 딸이 된 건 저 예쁘장한 얼굴 덕이었는데 여자를 보는 원장의 눈이 심상치 않더라. 부모가 아니라 연인 사이라더라.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녀에 대한 소문의 진위여부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일상에 그녀에 대한 소문은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놀이에 불과했다.

 

무성한 소문을 들은 창석은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였다.


멀리서 본 그녀는 그리 예쁜 여자가 아니었다. 넙데데한 얼굴에 작은 눈과 커다란 코, 두툼한 입술이 조화로웠다. 예쁜 외모라 할 수 없으나 시선을 이끄는 구석이 있었다.


 시선이 이끄는 데로 그녀를 바라보다 보면 남들은 모르는 그녀를 알 수 있었다.


밥을 먹을 때에 오물거리는 입매가 얼마나 단정한지, 카디건의 매무새를 정리하는 손가락이 얼마나 가냘픈지  또는 일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움찔 거리는 콧잔등이 얼마나 우스운지.


창석은 그녀를 보다 자신을 마주 보는 그녀를 상상하곤 했다.


상상 속 자신을 마주한 그녀의 두 눈에 시선을 맞추고 그녀의 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소매가 긴 카디건으로 가려진 어깨를 토닥였다.  


그의 마음속에 그려진 그녀와 그의 관계는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다정했다.


그러나 연인의 모습을 생각한다고 해서 그녀와 연인이 되고 싶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창석은 그저 그녀를 보듬어 주고 싶었다. 위로의 말을 건네고 달래 준다면 어둠이 드리운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를까. 궁금했다.


성냥공장을 다니기 시작한 이래 처음 늦잠을 잔 날이었다. 감지 못한 머리 위에 모자를 눌러쓰고 한차례 늦어진 통근 버스를 기다렸다. 사람이 없는 정류장에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눌러쓴 모자 속이 뜨거웠다. 모자를 벗을까 말까. 고민하는 창석의 손이 슬쩍 모자를 들어 올려 안 쪽의 열기를 빼냈다. 상가 유리에 비친 자신을 보며 모자 사이로 삐져나온 잔머리를 정리했다. 일을 할 때 모자를 써도 되나. 생각에 잠긴 창석의 눈이 한 곳에 멈췄다.


유리 속 모자를 쥐고 선 창석의 곁에 그녀가 있었다. 창석은 모자를 손에 쥔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보았던 여느 날과 다름없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 또한 그를 보았다. 창석이 그녀를 주시한 이래 처음으로 두 사람의 눈이 서로를 마주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와 눈을 마주한 시간은 순간의 아주 짧은 시간 같기도 억겁보다 긴 시간 같기도 했다.  


그녀의 눈이 은근슬쩍 그를 피하자 창석은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쉬웠다. 조금만 더 눈을 마주하면 안 되는 걸까. 유리를 걸친 그의 시선이 그녀를 따라 흘렀다.  


잠시 잠깐 마주했던 눈매를 바라보다 높다란 콧대를 구경했다. 콧대를 타고 올라가니 아기 엉덩이 같이 볼록한 이마를 보였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그녀의 잔머리가 창석을 두근거리게 했다.  숨을 들이켰다. 바람을 타고 온 그녀의 향기가 느껴졌다.


가까이 본 여자는 예뻤다. 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몰고 다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공장의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를 시기했다. 그녀만이 가진 담백한 매력은 그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이 특별했다.  누구라도 탐이 날 법한 그녀의 매력이 수많은 소문을 만들어 냈을 터였다.


창석은 그녀를 보며 상상했던 수많은 모습처럼 그녀의 곁에 마주 서고 싶어 졌다. 그녀의 손을 마주 잡고 기다란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 올리면 그녀의 눈이 반달을 뛰며 웃겠지.


유리 너머의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유리에 비친 그와 그녀의 손가락이 겹쳐지자 정말 그녀의 손을 마주 잡은 것만 같았다.


보들 거리는 그녀의 손가락 위에 수 놓인 수많은 흉터를 쓰다듬고 긴 카디건에 가려진 멍울을 매만졌다. 창석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무엇이 그를 눈물짓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도망쳐요.”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그녀가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창석은 괜한 참견을 한 것 같아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그녀와 창석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둘 중 누구도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할 건 없었다. 창석과 그녀는 인사를 나눌 사이가 아니었다.      


그 일이 있고 한참이 지난 이후 공장에는 큰 불이 났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사이에선 새로운 소문이 돌았다.


공장의 실세인 원장의 딸과 눈이 맞은 남자가 공장에 불을 질렀다더라. 착한 줄 알았던 보육원 원장이 사실은 못 되 처먹었는데 공장에 문제만 생기면 애를 그렇게 때렸다더라. 매일같이 입던 까만 카디건 안이 멍울 천지인 걸 본 남자가 대신 복수해 준거라더라. 화난 원장이 두 연놈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그 둘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더라.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그 진위여부를 알 수 없었다. 불이 난 이후 새로 지어진 공장은 여전히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부지런히 돌아갔다. 일자리를 되찾은 공장의 직원들 또한 부지런하게 새로운 소문들을 만들어 냈다.


원장의 딸, 그리고 그녀의 연인에 대한 소문이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의 입방아 속 분주한 공장 안 창석과 그녀는 자취를 감췄다.


창석과 그녀가 사라졌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 딸과 직원을 잃은 원장도 그들의 소문을 만들어 낸 직원들조차도  매한가지였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으로 낳은 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