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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희 Apr 20. 2022

퇴근길에 내가 똥 멍청이라는 걸 또 한 번 깨닫는다.

오늘이 끝났구나. 퇴근 시간 버스에 몸을 실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창가에 비친 한심한 나를 보며 나는 오늘은 또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가. 손꼽는다.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동물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래도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에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나는 매번 다양한 실수를 만들어내는 동물이다. 어떻게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까. 과거의 내가 한 신박하기 그지없는 실수를 마주하며 나는 다시 깨닫는다. 


아. 나는 똥 멍청인가보다.


어렸을 때부터 실수가 잦은 아이였다. 엄마는 언제나 화가 난 눈 또는 한심한 얼굴빛으로 나를 보곤 했다.

 

조심하라고 했지! 또는  너!,  내가 못살아!

  

화가 난 엄마의 눈썹이 뜰썩거리고 볼륨을 높인 입 속에선 쉴세 없이 잔소리가 튀어나온다. 주눅 든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던 어린 내가 말한다.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었어.


어여쁜 레이스가 자글거리는 원피스는  언제나 얼룩이 가득했다. 하얀 타이즈의 무릎은 까맣게 때가 묻거나  무릎보다 큰 구멍이 나 있다. 아침 바쁜 시간에 공들여 따 놓은 양갈래 머리에 잔머리가 이리저리 튀어나와  지저분했다. 내가 기억하는 조그마한 나의 모습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조금, 아니 조금 많이 덤벙거리는 아이였다.  


멀쩡히 길을 걷다가 없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음료를 먹다가도 가슴팍에 흘려 흰옷에 얼룩을 만들어 냈다. 가만히 있는 걸 유독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제 옷이 멀쩡한 날이 없었다. 얼룩덜룩한 옷을  빨며 엄마는 언제나 답답한 얼굴을 했다.  도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길래 이 꼴을 만들어 와!  화가 난 엄마의 목소리가 화장실 속에서 울려 퍼지며 어린 나를 혼내었다. 


 엄마는 정말 나를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 얼룩은 어디서 나온 걸까. 빠르게 얼룩을 지워내는 엄마의 손을 보며  아랫입술을 쭉 내밀었다. 억울했다. 억울하고도 억울한 일이었다. 화가 난 엄마만큼 무서운 건 없었지만 어린 나는 용기 있게 변명하곤 했다.  내가 안 그랬어. 나는 진짜 안 그랬단 말이야.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말하면 엄마는 단호히 내 변명을 잘라냈다.


시끄러! 


바쁜 엄마의 일상을 더 바쁘게 하는 딸내미가 얼마나 미웠을지. 그때의 엄마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그 말을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하루를 산다는 건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을 품 안 가득 쥐고 감당할 수 없이 버티고 있는 것만 같다. 이걸 어떻게 해.  적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는 알려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의문이 들지만 아무도 그 의문에 답을 해 주진 않는다.


해답이 없는 세상에 덩그러니 서 있는 성인이 된 나는 실수 덩어리에서 엄청난 실수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봐도 이상한 실수가 가득한 하루를 보낸다. 이걸 왜 이렇게 했을까. 과거의 나에게 묻지만 솔직히 그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쉽 없이 일을 시키는 상사에게 탓을 돌리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실수가 내 실수가 아닌 게 되는 건 아니다. 


어른이 되면 조금은 야무진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적어도 실수를 무한 생성해 내는 직장인이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어렸을 적 예상과는 다르게  칠칠맞은 어른이 되어 버린 나는  나의 실수를 마주하는 게  언제나 벅차다.


언제쯤 실수를 하지 않게 될까. 아니 적어도 실수를 마주하고 당황하지 않는 어른은 언제쯤 될 수 있을까.


그저 지친 얼굴을 하고 퇴근을 하는 수많은 직장인 사이에 끼어 생각한다. 


아. 나는 여전히 똥 멍청이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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