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23
드디어 끝났다.
인생은 끊임없는 고난의 연속이다. 태어나기 전, 고작 몇 cm 코스에 모든 것을 건, 수 억만 분의 1의 레이싱에서부터. 거진 16년 간 매년 4번씩 보는 중간 기말고사. 학교에서 눈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운 일진 아이들과 교수님의 무자비한 C 뿌리기. 그리고 대한민국 남자라면 신의 아들을 제외하고 도망칠 수 없는 군대까지.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사고와 고난은 인생에서 끊이지 않는다. 그중 군대처럼 피해 갈 수 없는 고난이 있는가 반면, 내가 스스로 불러오는 재앙도 있다. 이번 고난은 후자에 가까운 재앙이었다. 바로 전세 대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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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동에서 살고 있다. 작년 초, 급하게 이사 온 터라 집을 구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급하게 구한 집은 꾸졌다. 진짜 개꾸졌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다. 북향이라 볕도 안 들었다. 벌레도 많았고 월세도 비쌌다. 그리고 내 직업 특성상 출장이 잦아서 전체 12달 중 집에 있는 기간은 반도 안 되는데, 가끔, 한 달 내내 출장지에서 지내면 월세가 아까워 죽을 것 같았다.
게다가 집의 위치도 문제였다. 안동, 나름 경북의 다섯 손가락에 (겨우) 들어가는 유고한 역사를 가진 도시라고는 하나, 사람보다 소가 훨씬 많이 사는 시골 동네다. 게다가 우리 집은 안동 내에서도 다소 구석진 곳. 나름 ‘강남동’. 이름만큼은 특별시이지만, 버스는 40분에 1대 다니는 그런 곳이었다. 사실상 조선시대 유배지.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곳이었다. 그런 이유로 시내 쪽에 있는 전셋집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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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름 집 구하기 고수라고 생각했었다. 대학시절 자취할 월셋집을 찾아다니기도 했었고, 심지어 강 건너 바다 건너 말도 안 통하는 콜롬비아에서 집을 구해본 경력도 있었다. 그래서 안동에서 집 구하기는 누워서 떡먹기 아니, 누워서 안동찜닭 먹기쯤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안동에서 전셋집 구하는 건 누워서 안동소주 한다라이 마시기였다.
바쁘다 바빠 21세기 현대사회. 핸드폰 하나로 안 되는 게 없는 대한민국이지만, 경북 대표 시골, 안동에서는 말이 많이 다르다. 안동은 아직 씨족 사회이고, 아날로그 사회이다. 그래서 안동에서는 직방이니 다방이니 그런 얄궂은 현대문명의 이기는 다 소용없다. 이곳의 집 구하기는 오직 정성이다. 인맥과 벼룩시장 같은 지역 소식지, 그리고 무한 발품 팔기뿐이다.
그렇게 집 구하기에 돌입.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전세 매물이 없다니. 소식지나 지인들에게 물어본 매물은 월세 매물뿐이었다. 피 같은 연차를 쓰고, 매머드 마냥 멸종한 전세 매물을 찾으러 부동산을 수십 곳 싸돌아다녔지만 헛수고였다. 대부분 부동산 입구에서부터 “전세 매물 없어요.”라는 말을 듣고 쫓겨났다. 그러다 가끔 있는 전세 매물은 담배 피우는 고등학생들이 출몰하는 죽음의 할렘가 지역 쪽에 있거나, 집의 수리가 하나도 안 되어 있어서 집 안이 할렘 같았다. 혹은 어쩌다 좋은 집을 찾아도 등기부 등본부터 전세 사기 냄새가 물씬 나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다 그러다. ‘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아무 집이나 계약해버리겠다.’는 위험한 마음을 먹을 때쯤. 나랑 동년배인 전세 아파트 집을 찾았다. 5층 꼭대기 집에 엘리베이터 없는, 낡다 못해 심령 스팟 같은 그 집은 의외로 내부는 말끔하게 공사가 되어 있었다. 터미널과 시내도 가까웠다. ‘이만하면 살만한데?’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에라이 계약금도 보내 버렸다. 그리고 추후 내가 계약하려는 집이 법인 물건인걸 알게 되었다. (이때 나의 고난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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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고난 집 찾기는 끝. 두 번째 고난은 전세자금 대출이다. 물론 큰돈을 빌려주는 거라서 어렵고 귀찮은 절차가 많으리라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고 하니 요구하는 서류가 수십 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등본, 초본, 가족관계 증명서에서부터 내 매달 따박따박 받은 월급 명세서, 우리 회사 사업자등록증. 나의 보잘것없는 신용상태 및 신용거래들을 모조리 하나하나 검사해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까지. 아마 그 무수한 서류들 사이에 돈을 갚지 못할 시 각막과 콩팥을 기꺼이 양도하겠다는 문서 하나쯤은 들어있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아무리 자연보호를 위해서 이면지를 쓰고 물자를 아끼더라도 지구에 도움이 일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두꺼운 서류뭉치를 은행에 제출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한 번에 다 제출하고 사인하면 좋을련만, 심사 단계 때마다 은행은 나를 불렀다. (이때 매번 1시간 한 대 다니는 버스를 탔고, 이사하기로 더욱더 마음먹었다.) 그리고 은행에선 법인 물건에 계약하는 나를 단단히 사기당한 사람이라는 듯이 보고, 더 많은 서류를 요구했다. 그리고 대출 심사가 그래서 안될 수도 있다는 설명과 (내가 느끼기에는) 조롱이 이어졌다. 내가 무슨 부와 명예를 얻으려고 이런 대출을 받나 싶었다. 그냥 나 주제에 전세 아파트 말고 매달 따박따박 월세나 내면서 살 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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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 나를 도와주는 건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오롯이 나 혼자 뿐이었다. 홀로 잠들기 전 밤, 전세사기를 당한 전세 선배님들의 유튜브가 나를 흔들었고, 유튜브 부동산 일타강사들의 영상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꼭 얼음 빙판길을 한걸음 한걸음 조심히 내딛듯이 조심했다. 덕분에 법인 건물이라고 다 위험한 건 아니고, 확정 날짜와 전입신고의 중요성. 그리고 등기부등본은 육십이억오천만 번을 보고 또 한 번 더 봐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중개사 아저씨도 회사 회계 담당도 엄청 괴롭혔다. 이렇게 했는데도 전세금을 잃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이건 검찰청장도 당할 집일 거다.
이렇게 인생 첫, 천문학적인 빚지기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대출은 잘 승인되었으며, 돈도 잘 집주인 통장으로 잘 안착했다. 계약금 잔금도 다 마무리되었고 등기부등본에는 끝끝내 사기의 정황도 나타나지 않았다. 드디어 나의 전셋집이라니, 그래도 전세대출받길 잘했다 싶었다. 한층 더 어른이 된 기분이다. 하지만 이때까지 몰랐다. 세 번째 고난 이사가 진짜 보스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