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C! 뭐 좀 할라고 하면....
유난히 추웠던 12월의 끝자락 긴 연휴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책상 앞에 앉자마자 몸이 으슬으슬 춥고 체한 것 같이 속이 좋지 않아 탄산음료를 사 먹으러 편의점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매일 회사 구내식당처럼 들리는 백반집의 산떠미같이 퍼주는 밥을 반 공기밖에 먹지 못해 먹으면서도
'어, 이상하다? 내 평소 양이 이정돈 아닌데. 왜 벌써 배가 차지?'
동네에서도 인심이 후하셔 특히 단골인 우리 부부가 가면 갓 지은 밥을 두둑이 챙겨주시는 사장님께 죄송했지만 정말 한 수저만 더 먹으면 배가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사장님, 오늘 정말 정말 죄송한데. 속이 이상해서 밥이 안 들어가네요. 처음으로 밥 남겼어요. 죄송해요."
하고 문을 나선 게 생각나 사이다를 들고 계산하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테기까지 구매했다. 몸이 좋지 않아 짐을 싸서 나온 상태라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기가 싫었지만 그렇다고 어쩌면 내 인생의 중대한 순간을 맞이 할 수도 있는데 어딘지도 모르는 공중화장실에서 체크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귀찮은 몸을 이끌고 그 추운 날 차디찬 사이다를 들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너무도 오랜만에 해보는 거라 실수로 젖지 말아야 될 곳까지 젖어 번짐 현상이 순간적으로 일어난 걸 보고
'아이씨, 5천 원 버렸네...'하고 휴지통에 버리려고 하는데..... 기술이 좋은 건지 비싼 거라 번짐 따위는 상관없는 건지 3분도 안 지났는데 빼도 박도 못할 두 줄이 뙇!
첫째 때는 한 줄이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희미해 아닐 거라 부정이라도 해봤지.. 이번 건 선명해도 너무 선명해 부정은커녕 곧바로 임신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내가 가장 먼저 연락한 곳은 남편도 엄마도 아닌 산부인과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오랜 친구였다.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이기에 내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당사자였고 혹시나 하는 임테기 불량률을 정확한 퍼센트로 이야기해줄 구세주였기에 말이다.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물어보려던 말은 목구멍이 막혀 물어보지 못하고 겨우 한마디 건넸다.
"두줄이야..."
그리고 그냥 목놓아 울어버렸다. 정말 오랜만에 울어보는 목놓음이었다. 전화기 건너편에선 축하도 위로도 해 줄 수 없는 친구의 '내가 너의 심정을 잘 아노라'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냥 울고 싶었다. 슬픔의 눈물도 기쁨의 눈물도 아닌 함께 일하고 있는 친구에 대한 미안함, 지원사업이 끝나며 입버릇처럼 내년부터가 진짜 본 게임이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달려보자 외친 부끄러움과 무책임함, 앞으로 회사는 어떡하지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감정들이 한꺼번에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리고 던진 한마디...
"아이씨, 맨날 뭐 좀 할라 하면..."
첫째를 가졌을 때도 나에겐 커리어적으로 그다지 좋은 시기는 아니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며 여러 출판사들과 연결이 됐지만 막상 한국에 돌아와서는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책 출판을 접으려던 찰나 어렵게 어렵게 세상에 책을 내게 됐고 출판기념회를 갖기로 한 하루 전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오랜 시간 매듭짓지 못한 일을 마무리 짓고 프레시 한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던 참이었는데 그때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출산과 임신에 발이 묶여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출산과 동시에 커리어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돌잔치 이후 곧바로 창업을 하게 됐다. 아이 한 명은 이곳저곳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일을 해볼 만했는데.... 사회에 나와 적응기를 거쳐 이제 제대로 좀 시작하려니 또다시 제로섬으로 돌아온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임신과 출산의 무게는 나 혼자만 짊어져야 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 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어쩌면 첫째를 나보다 먼저 출산했던 함께 일하는 친구(공동창업자)가 더 원했을 둘째, 하지만 일에 피해주기 싫어 아마도 갈등하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때를 기다렸을 친구가 느낄 배신감, 나를 믿고 지금껏 따라오고 있는 친구에 대한 신뢰를 저버렸다는 자책감.
이런 수많은 감정들에 기쁜류의 감정 따윈 떠올릴 수 없었다. 분명히 우리에게 찾아온 아이는 축복이고 사랑이란 걸 머리로는 알지만 지금 당장 내가 세웠던 목표와 기대치 등을 생각하면 그런 마음들이 희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나마 위로를 해본다면 둘째 계획이 없었던 건 아니었고 오히려 지금이 적기였기에 하나님께서 이유 있는 실수?를 허락해주신 게 아닐까란 생각을 해보는 정도였다.
지난 몇 주간은 임신소식에 얼어붙은 뇌가 잘 가동도 되지 않았고 일에 의욕도 생기지 않았고 앞으로 어찌하지에 대한 막막함에 무기력증까지 잠시 찾아왔었다. 책을 펼쳐도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글로 마음을 표현해 보려 해도 내 마음이 건조해져 있어 어떤 글도 써지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지금 이렇게 글을 한 자 한 자 적고 있단 건 그 힘든 시간의 터널을 잘 지나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되돌아보면 '내 커리어적 인생은 끝난 것 같아'라고 생각했던 첫째 임신과 출산을 통해 육아맘이 됐고 그 경험이 '헤이키도'를 세상에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돼 주었다. 주변 사람들의 "아이를 낳고 창업한다고? 그게 가능할 것 같아? 네가 애를 안 낳아봐서 하는 말인데"란 편견에도 어떻게 어떻게 회사를 운영해 나가며 그들의 상식이 가끔 통용되지 않을 때도 있단 걸 증명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난 항상 예상에 빗나가는 대반전의 영화를 좋아하듯 변태 같지만 반전을 만들어가는 인생의 희열을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또 지금 많이들 이야기하는 "야! 애가 하나 있는 거랑 둘 있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 2배 힘든 게 아니라 10배 힘들어! 아마 계속 일하기는 힘들 거야"란 편견도 갈아엎어 버리겠단 작은 포부를 가지게 됐다.
힘든 시간 동안 가장 위로가 됐던 건 나보다 먼저 걸어간 선배 워킹맘의 전설 같은 이야기다.
"외국 생활을 하다 남편과 아이 한 명을 데리고 한국에 돌아왔어요. 한국에 취직할 데가 있을지도 불확실한 데다 친정 부모님 집에 얹혀 지내는 신세였는데 대책 없이 둘째를 가지게 됐죠. 둘째를 품은 상태로 글로벌 재단의 한국 대표에 지원하게 됐고 4개월간 7번의 심층 면접을 거쳐 만삭의 몸으로 겨우 출산예정일을 빗겨 재단을 설립하고 공식 출범식을 가졌죠. 그러고 보니 그만한 태교도 없었던 것 같아요"
아쇼카 코리아를 8년 전 출범시킨 이혜영 대표님의 이야기다. 결코 임신과 출산이란 장애물을 뛰어넘어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낸 열정과 의지, 만삭의 몸으로 더 큰 일을 해내셨단 사실, 이 모든 것들이 나로 하여금 나도 할 수 있단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힘이 됐던 건 함께 일하는 친구의 눈물이었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은 하지만 말하지 않는 그것. 방에 있는 이 커다란 코끼리를 언제까지 무시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미안하다고, 임신 사실을 알고 제일 많이 생각하고 긴 시간 엉엉 울었던 건 너에 대한 미 안 함 때문이었다고. 나만 믿고 지금껏 따라왔는데.. 네가 느꼈을 허무함, 배신감, 실망감을 안겨 준 것 같아 기뻐할 수가 없었다고.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정일은 9월 초다. 한 달 정도 공백기를 가지고 돌아갈 계획이지만, 그래도 그전까지 내가 해놔야 할 일들은 많다. 시드 투자도 받아야 하고 새로운 인원 충원도 진행해야 하고 서비스 예약률도 높여야 하고 공방 수도 늘려놔야 하고 사무실도 이전해야 하고.. 이 방대한 일들에 데드라인이 있고 의무감과 책임감이 따블로 붙고 나니 오히려 더 속도감 있게 일들을 해낼 수 있겠단 무한 긍정의 힘을 가져본다.
첫째도 둘째도 항상 내겐 임신 사실이 기쁜 소식으로 다가오지 못하지 않았냐란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스러운 아들을 보며 미안함 감정도 느끼며 드는 생각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임신 사실의 기쁨의 눈물을 흘릴 여인들이 이 사회에 얼마나 있을까?이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에게는 또 그들의 고충이 있을 테고, 나처럼 창업하는 창업가에게는 나와 같은 고충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 인생에 임신이 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둘째 임신을 통해 또 다른 성장을 이뤄내는 경험이 만약 임신소식을 내 인생의 어떤 시기에 접하게 되더라도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