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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Valerie Mar 14. 2019

#4.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내 인생의 멘토

나탈리의 정체가 드러나다.

[이 글은 1,2,3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뉴욕 생활 4년 동안 나탈리와 난 뉴욕에서 만나지 못했다.

유럽에 자주 가 있는 나탈리와 약속 시간을 잡는 것도 힘들었지만, 나도 뉴욕 생활이 바빠지며 잠시 나탈리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오랜만에 나탈리와 주고받았던 이메일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뉴욕 증권거래소 맞은편에 살고 있다는 나탈리의 글이 지금에서야 보였다. 뉴욕 생활 2년 동안 내가 살았던 동네도 Wall st. 이였는데....


오히려 뉴욕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와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게 나탈리였다. 그래서 몇 년 만에 연락을 해 4년 만에 연락을 주고받았다. 


정작 같은 곳에 살 때는 연락도 주고받지 않다 한국에 돌아와 연락을 다시 했단 게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하지만, 그렇게 우린 또 반갑게 언제 연락이 끊겼다는 듯 고민을 이야기하고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주는 사이로 돌아왔다.


작년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오랜만에 나탈리와 연락을 주고받는데, 불현듯 그녀는 사회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플랫폼이 활성화되지 않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녀가 누군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만 알고 싶은,

나만 알고 있는 내 인생의 멘토이고 나의 최고의 응원자인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이 한번 의문을 아주 잠깐이라도 품고 나니 궁금해졌다. 그래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구글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해봤다.


10년 만에 그녀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구글 이미지에 가장 첫 페이지에 나온 사진. (© Susan Cook)
David Merrick and Natalie Lloyd in December, 1998. (Photo by Aubrey Reuben)
image source: masterworks broadway

그녀는 5,60년대 뉴욕의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전성시대를 열은 미국의 전설적인 뮤지컬 제작자

David Merrick의 생전 마지막 아내였다.

우리가 흔히 잘 아는 <42번가>, <헬로, 돌리!>, <집시>, <카니발>, <위대한 개츠비> 등의

뮤지컬들을 제작한 토니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7년간의 연애 끝에 David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법적으로 부부가 될 수 있었고

결혼생활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병간호를 하며 그의 마지막을 지킨 인생의 마지막 파트너였다.


뇌졸중으로 대화가 힘들었던 그의 마지막 생을 옆에서 살뜰히 보살폈던 이 둘의 러브스토리는 90년대 말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뉴욕포스트 등 미국의 여럿 신문사의 기삿거리로 장식돼 있었다.


구글 이미지에는 할리우드 배우들과 전설적인 브로드웨이 제작자 등 예술계의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뉴욕 예술계의 인싸임이 틀림없었다.


상상도 해보지 못한 나탈리의 모습에 정말 놀랐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만약 나탈리를 조금만 더 일찍 검색해 봤다면...


'뉴욕대 입시원서에 추천인으로 썼을 테고, 1년 앞당겨 뉴욕에 올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일하고 싶었던 미술관 인턴쉽 자리를 나탈리가 추천서를 써줬다면?'


수많은 계산적인 생각들이 잠시 떠다녔지만...

오랜 시간 그녀의 정체를 알지 못했던 것에 오히려 감사했다.


아무런 편견 없이 내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달려 가 질문하고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곳이 존재했기에

내가 지치지 않고 내 꿈과 계획들을 하나씩

온전히 내 힘으로 이뤄내지 않았나란 생각 때문이다.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얽히고 생각이 많아지면 그만큼 관계들이 어려워지는 경우들을 종종 봤다.


우리의 만남을 우주가 혹은 신이 정해준 만남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금처럼 순수하게 그리고 소중하게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


11년 전 세상의 고민은 다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았던 22살의 소녀와 강아지들을 자식처럼 아끼며 사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던 50대 중반의 아줌마 나탈리의 그 모습 그대로 오래도록 남기를 바래본다.


오늘은 오랜만에 나탈리에게 이멜을 보내야겠다.

얼마 전 엄마가 됐다는 소식을 전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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