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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호성 Dec 16. 2021

<불륜>

파올로 코엘료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우주의 끝은 어디이며 우리가 어디서부터 태생되었는지에 대한 논의만큼이나 정의 내리기 어려운 문제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수없이 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은 ‘사랑’이라는 것을 정의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각각의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할 뿐, 우리에게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었다. 나는 파올로 코엘료의 <불륜> 역시 사랑이라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하나의 축을 제시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자극적이고 잔인하리 만치 생생한 표현들과 주인공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결론은 '사랑을 하라'이다. 온갖 믿음과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들 뒤에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 말이다. 사랑이 도대체 뭔데? 나는 반문하고 싶다. 도대체 사랑이 뭔데 마치 린다의 행동이 모두 사랑이라는 절대적인 개념을 뒷받침해주는 일련의 정당한 과정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지. 작가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추측하건대, 작가는 린다를 통해서 모든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모험을 추구하는 성적 욕망, 그리고 충족되지 않은 어떠한 불만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감정중 하나인 사랑을 통해서 해소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적 욕망과 자신에 삶에 대한 불만을 사랑을 통해 해소하고 치유한다. 책의 끝 부분에도 나오듯이, 인간의 삶에 사랑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며, 몇몇 이들에게는 삶의 목적이자 성공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작가가 책의 끝머리에서 한 말들에 대해서 동의하는 바이다. 인간은 사랑이 없으면 살기 힘들다는 것을 나는 실제로도 경험해 보았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이며 어디까지가 사랑으로 인정되는 건지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정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기 때문에,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독자들은 기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옳고 그름의 개념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는 것을 발견하고, 과연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사랑이 아닌지, 그리고 도대체 린다의 어떤 행위까지가 잘못이고 아닌지 분명하게 판단할 수 없다. 코엘료의 불륜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품게끔 유도한다. 이성과 성행위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이성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가? 배우자 혹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과 만남을 가지는 것은 사랑인가? 사회가 정해놓은 결혼이라는 규범 아래 배우자를 속이고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 역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은 동시에 두 명 이상의 사람과 에로스적 사랑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이성과 어떤 관계까지 가야 ‘사랑’을 한다고 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끝도 없이 머릿속을 맴돌고 책을 읽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사랑이란 뭘까? 사람들은 대개 어느 한 대상이 끊임없이 생각나고 그 사람과 함께 할 때 긍정적인 유대감이 형성된다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이게 정말 사랑일까? 그런 생각들과 좋은 감정들은 대개 영원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감정 역시 영원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다면 결혼이라는 행위도 정당화될 수 없지 않은가? 왜냐하면 누군가를 한 순간도 끊임없이 좋아하고 생각하는 행위는, 우리 모두가 겪어봐서 알겠지만,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것이 사람의 감정인데, 한 사람에 대한 감정이 남은 인생 동안 동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생 상대방을 변함 없이 사랑할 거라는 서약 역시 성립될 수 없다.


 사랑에 관한 모든 문제는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인간은 애초에 불완전하며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이 변하는 것을 막아낼  없다. 자신이 하는 생각과, 상황, 주변 환경이 변함에 따라  대상에 대한 감정은 변하게 마련이고,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어느 순간  감정은 예전과는 180 다른 감정으로 변모하여 점점 상대와 자신을 피로하게 만든다.  피로도가 쌓이면 쌓일수록 관계를 끝내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게 되고, 그렇게 대부분의 연인들이 사랑이라는 행위를 종료한다. 동일한 감정을 품고 일평생을  사람과 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계가 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의무, 자식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 사회적 비난의 이유 등으로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린다가 매일 아침 일어나기 싫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고 실제 상당수의 부부들이 행복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상태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이유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본래 가지고 있는 변질적인 특성을 우리는 윤리라는 테두리 안에 가둬 두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며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 탓에, 결혼이라는 제도가 형성되었고 그것이 관습이 되어 모두가 따르고 있는 상황이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결혼생활 내내 ‘사랑’을 강렬하게 경험할까. 즉, 사랑이라는 감정과 우리가 사랑이라는 것을 정의 내리고 제도화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린다는 답답하고 가슴을 옥죄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일까, 통계적으로 사람들은 7명 중 한 명 꼴로 불륜을 저지른다고 한다. 이들은 사회적인 비난과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무릅쓰고 그들이 생각하는 한시적이지만 강렬한 ‘사랑’을 경험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누구도 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린다가 잘못한 것은 자신의 배우자와 자식들을 ‘속였다’는 것에 있지 다른 사람을 사랑한 것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리적으로 린다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이 책의 논지와는 벗어나기에 다루지 않겠다. 그렇지만 코엘료가 우리더러 사랑을 하며 살라는 말이 과연 어떤 말인지. 나름대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정의 내려 그 사랑을 하며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깊은 고민과 숙제를 던져주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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