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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호성 Dec 16. 2021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박상영

“스물넷, 누군가는 아직 아무 시작도 하지 않았을 나이에 나는 포기와 체념이 때로는 나를 위한 최선일 수 있음을 배웠다.” (p.277)


“우리는 웃고 떠들고 술 먹고 섹스하다 죽을 줄이나 아는 동성애자들일뿐, 그 이상의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애초에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아니며, 그러므로 영원히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p.215)


“세상의 꽤 많은 것들이 이미 다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시절.” (p200)


 책을 읽으며 밑줄을 쳐 두었던, 몇 가지 인상 깊은 구절들이었다. 쳐놓고 나니 이 책의 주제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다. 모든 것에 철저하게 실패한 루저들의 자기 시인. 맥없이 풀이 죽어 하염없이 고개를 숙이고 술에 의존하여 맥없이 살아가는 한마디로 '리얼 루저'들의 하소연인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박상영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과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비주류의 사람들이다. 성적 취향부터 생각하는 성향과 자라난 환경, 직업 모두 대한민국 사회에서 흔히 정상적인 범주라고 규정짓는 테두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책을 읽다 보면 주인공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신들에 대한 인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일곱 편의 단편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모두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성적 취향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어렸을 적, 가정문제로 인해 상처를 가지고 자라난 소라는 자신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단 한 사람을 찾아 나서지만 김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뿐더러 그녀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예술적 로맨티시즘과 그녀의 꿈을 이해하지도, 지지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상처 때문에 점점 더 불륜을 저지르고 인스타그램으로 자신의 허영심을 채워나가는 그녀. 영화감독의 꿈을 포기한 채 퀴어 영화 전문 제작사에서 퀴어물을 검색하는 주인공과 현대무용에 소질이 없는 것을 알고 꿈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왕샤, 전 남자 친구의 포르노 리벤지 덕분에 매춘녀로 전락해 버린 여자 등등.. 책 속에는 애초부터 비주류였던 사람들이 아니라 살아가다 보니 그렇게 된, 후천적으로 우세에서 밀려난 언더독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무서운 것은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실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실상으로부터 그리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소설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을지라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책을 읽은 독자들    번이라도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글귀와 상황에 부분적으로라도 공감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축하한다, 그는 진정한 행운아다.


 사회는 언제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한다.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열심히 일해야 하고,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단 한순간도 늦으면 안 되고 실수가 반복되면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대한민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소리를 지겹게 들으며 자라왔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이 모든 것을 완벽히 지키며 살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삶에서 루저가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의 성적 취향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거나, 자신의 꿈을 이루기엔 자신의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여 실의에 빠지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모두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된다. 루저 같은 비주류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 속에 어렴풋이 존재하고 있다. 작가가 제시하는 이 주인공들의 좌절과 실패는 어쩌면 한 때 우리를 쓰러뜨렸던 바로 그 문제들로부터 야기된 모습이다.


 한국사회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라벨을 찍어 붙이는 공장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바늘구멍 같은 주류의 기준을 들이대며 그 안에 들어간 사람들을 주류라고 부르는 사회. 한 개인이 가진 직업과 경제력을 합쳐 그 사람에게 라벨을 찍어 붙이고 웃기게도 그 라벨을 모두가 수용하고 인정하는 매우 정밀한 시스템을 갖춘 사회. 파란 라벨을 주류이며 빨간 라벨은 비주류. 비주류의 사람은 루저. 몇 가지의 외양만으로 사람들을 라벨링 해버리는 한국 사회에서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위한 외양적 개발 이외에 사람을 성장시키는 내면의 발전은 없다. 박상영 작가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대한민국 사회의 안타까운 현주소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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