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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호성 Feb 04. 2023

<전망하는 인간, 호모 프로스펙투스>

마틴 셀리그먼 외 3인 


 <전망하는 인간, 호모 프로스펙투스>는 책의 제목만큼이나 두껍고 이해하기 어려운 다양한 학자들의 연구 논문을 근거로 다른 생물들과는 차별화된 인간 고유의 능력, 예측능력에 대해 강조한다. 셀리그먼과 저자들은 지능이라는 범주 안에 전망하기라는 능력을 비중 있게 두고 호모 사피엔스(지능) -> 호모 프로스펙투스(예측능력)로 생물학적 인간의 분류를 변경해야 한다고 까지 하니 과연 전망 하기에 관해 얼마큼이나 깊은 인사이트를 줄지 그 논지가 궁금했다.


 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먼은 두 마리의 개를 이용한 무기력함에 대한 실험 사례가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았던 심리학자이다. 한쪽 집단의 개들에는 지속적인 전기 충격을 가하지만 빠져나올 수 있는 장치를 두었고 반대 집단의 개들에는 같은 조건 하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올 수 없도록 했다. 반복적으로 전기 충격을 가했을 때 전자는 노력하면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하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후자는 고통을 받는 와중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1970년도에 시행된 심리학 실험이었으니 꽤나 오래된 심리학 실험이었는데 학습된 무기력함에 대한 실험과 이 책은 저자가 같다는 것만큼이나 비슷한 논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책을 읽으면서 다소 연결성이 낮다고 생각되는 여러 가지 의견들을 관통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은 ‘학습’을 통해서 미래를 전망한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혹은 와닿았던 몇몇 구절들을 중심으로 단편적인 나의 생각을 적어봤다.  


'종합해 보면 예측역량을 발달시킨 존재가 자연선택에서 살아남게 되고 예측 역량으로 행동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리 생각해 보기’를 ‘행위’와 결부해야 한다고 수정 제안하고자 한다.' P30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행동을 선행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다. 미래를 생각할 줄 알지만 그에 대비한 행위를 하지 않는 자는 지능만 갖춘 자. 미래를 생각할 줄 모르니 엉뚱한 행동만 하는 자는 멍청한 자. 이 세 카테고리 중 나는 어디에 속할지 의문이다.   


'직관 시스템이 경험에 기반하여 투사하는 다른 시스템처럼 양질의 데이터로 양질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P 117


 나는 직관(intuition)이 인간이 가진 고도화된 의사결정 메커니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직관적인 판단은 대개 1분도 안 걸릴 정도로 짧은 경우가 많지만 그 1분 안에 인간은 그동안의 삶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모든 교훈을 집약하여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것들 중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왔을 때 우유부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우유부단함이 심사숙고 혹은 신중함의 탈을 쓰게 하는 것만큼 위험한 행동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훌륭한 직관을 가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학습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실제로 많은 경험을 쌓은 전문경영인 혹은 훌륭한 성과를 거두는 금융 투자자들 중에는 직관적인 시스템을 토대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책에서도 주장하는 바와 같이 직관적인 예측 시스템은 기타 시스템만큼이나 양질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전망 능력 덕분에 미래에 발생할 사건의 결과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고, 그로 인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정서 상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스스로 떠올린 생각(예를 들면 마음 거닐기)은 최적의 행동 방식을 찾고 다가올 일을 준비하며 목표를 성취하게 해주는 적응적 과정이다.' P137


 잡생각. 나는 잡생각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일명 ‘마음 거닐기’라는 행위가 이렇게나 유용한 것이었다니! 인간이 하는 생각 중에 절반 이상이 지금도, 앞으로도, 영영 일어나지 않을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치부했던 나에게 이 부분은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잡생각(마음 거닐기)이 최적의 행동 방식을 찾고 다가올 일을 준비하는 적응적 과정이라...


 생각해 보면 오늘 아침 샤워를 하며 회사에서 팀원들과 점심을 먹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친구와 맛있는 덮밥을 먹는 상상을 했는데.. 결국 그렇게 못했지만 이런 생각이 나를 팀원들과 점심 식사를 하게끔 만든 것인가? 최근 팀원들과 식사를 많이 못했던 것은 사실이라 오늘 팀원들과 식사를 하며 좋은 시간을 보낸 것은 보수적인 회사라는 커뮤니티 속에 속한 나의 처세에 0.5%의 도움은 됐을 것 같다.  


'이 사례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바로 미래는 개인이 아닌 사회적 집단이 창조하고 계획해 나간다는 것이다. 당신이 혼자 살고 누군가와 절대로 교류하지 않는다면, 월요일이 있을 필요도 없고 예약을 할 필요도 없으며, 비행기를 탈 필요도 당연히 없을 것이다.'


 이 부분은 정말 와닿는 말이었다. 개개인을 움직이는 동력은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집단에 있다는 것에는 크게 동의한다. 사회적 합의에 순응하며 개개인의 인간은 나름대로의 의미와 동기부여를 받는 것 같다. 좋은 식사를 하며 와인을 마시는 즐거움을 함께 할 사람이 없다면 그곳에 어울리는 멋진 옷이나 구두를 살 필요도 없다. 멋진 옷이나 구두를 살 필요가 없다면 생활할 만큼의 돈 이상으로 사치품을 사기 위한 돈이 필요하지 않고 그렇다면 열심히 일해서 연봉을 인상시킬 필요도 없다.


'대신에 바우마이스터 등(2007)은 정서의 목적이 성찰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서는 중요한 사건으로 주의를 이끌고 그에 대한 심적 처리를 촉진한다.' P259


 감정이 행동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학술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많은 이들이 감정에 휘둘려 행동하는 것만 같은데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실험 결과의 수가 많지 않다고 한다. 대신 저자는 어떠한 행위를 함으로써 느껴지는 정서는 개인의 행동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개인 성찰에 기여한다고 한다.


 신기하다. 물론 이성적으로 행동할 때도 많기는 하지만 때때로 기분이 태도가 되는 경험을 다들 한 번쯤은 해보지 않나? 나의 경우 때때로 기분이 좋을 때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밥을 사며 우쭐대기도 하고 기분이 엉망진창일 때는 얘기 들어줄 사람을 불러 고주망태가 된 적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사실 그런 경험 이후에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너무 기분대로 행동했나? 기분이 좋을 때는 경거망동하는 것처럼, 기분이 나쁠 때는 필요 이상으로 비관적이 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는 기분이 좋을 때건 나쁠 때건 일희일비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정서가 성찰을 자극하는 것이라는 말 역시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전망이 엉망이 되어버리면 정서, 인지 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고, 우울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는 잘못된 전망이 우울의 핵심적인 인과 과정이라고 제안한다.' P346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심지어 우울 증상과 일반적인 무기력감을 바로잡은 후에도 자살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경향을 보인다.’ P351


 미래가 지금보다 암울할 것이라는 확신은 인간을 우울하게 한다. 현재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인간은 깊은 무기력함에 빠진다, 셀리그먼의 개 실험 속 그 개들처럼 말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은 본인도 모르게 긍정적인 미래를 전망하기보다는 부정적인 미래를 전망하며 대비책을 세운다. 너무나도 낙관적일 필요는 없지만 미래에는, 내일은 더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는 것도 우울로부터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 될 듯하다. 



책 | 마틴 셀리그먼, 로이 바우마이스터, 『전망하는 인간, 호모 프로스펙투스(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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