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치마의 [Good Luck To You, Girl Scout!]
[Thristy] 이후 검정치마에 대한 여론은 완전히 극과 극으로 갈렸다. 이를 예상이라도 하듯 [Thirsty]의 1번 트랙 <틀린질문>을 통해 검정치마는 미리 선언한다.
"나에게 뭐든 물어봐" / "대답은 바르게 해줄게"
나는 <틀린질문>의 방점이 이 두 문장에 있는 줄 알았다.
때문에 당연히 <틀린질문>은 헤이터들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생각했다. '[Thirsty]라는 앨범은 [TEAM BABY]와는 다를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실망할 것이며, 나는 그걸 모두 알고 있다'는.
하지만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생각해보니, 사실 <틀린질문>의 방점은
"알잖아, 난 항상 똑같아"에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틀린질문>은 헤이터들 뿐만 아니라 팬들에게 하는 부탁처럼 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Thirsty]라는 앨범은 [TEAM BABY]와는 다를 것이고, 여러분도 이 앨범 이후로 달라질 것이며, 나는 그걸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201]때나 지금이나 항상 똑같다'는.
[Thristy]는 검정치마의 팬들과 헤이터들이 서로 물고 뜯는 싸움터였다. 헤이터들은 검정치마를 미친듯이 물어 뜯었고, 일부 팬들은 이에 동조하며 검정치마를 떠나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정치마의 팬을 자처한 나 같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아니 [Thristy] 이후로 더 많이, 검정치마를 사랑하게 됐다.
그런데 검정치마의 팬들 중 일부는 이 싸움 이후 '검정치마는 원래 찝찝한 게 매력'이라는 식의 이상한 생각에 갇혀버린 것 같다. 나는 일부러 더 찝찝한 방향으로 검정치마를 해석하고 싶어하는, 그걸 통해서 검정치마를 또 다른 힙스터들의 전유물로 삼고자 하는, 그런 식의 태도가 싫다. (멜론 앨범 댓글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멜론 댓글창이 음악을 주제로 가장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창구라고 생각한다.)
검정치마는 그냥 검정치마다. 팬이나 헤이터를 염두에 두고 bittersweet한 가사를 쓴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항상 똑같은 것 뿐이다.
"[Thirsty]보다 세다", "[TEAM BABY]랑은 재질이 다르다", "한글로 썼으면 또 논란 됐을텐데 영어로 전부 써서 다행이다"라면서 오버하고, "검정치마가 어떤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인지는 알고 앨범을 듣자"고 가르치려드는 태도가 오히려 작품을 한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빠'든 '까'든 누구도 토달지 말라는 식으로 성역화하려는 건 아니고, 솔직히 검정치마를 '가사가 찝찝해서' 좋아하기 시작한 사람이 누가 있겠냐는 거다. 검정치마는 그냥 항상 존나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다. 그냥 거기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가사 하나 하나를 뜯어보면서 욕하는 사람이나, 그 가사 때문에 내가 검정치마를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이나 내 눈엔 똑같아 보인다. 그걸 염두에 두고 일부러 영어로 가사를 쓴 거 아니냐는 억측도 진짜 웃긴 것 같고. (물론 나도 이번 앨범이 전곡이 영어로 되어 있는 첫 번째 앨범이라는 소리를 듣고 놀랬다. 왜 당연히 그런 앨범이 있었다고 생각했지?)
다 떠나서, 내게 이번 앨범은 딱 '좋다' 정도다. 내게 [Thirsty]는, 이런 저런 장점들을 따져보았을 때, 사랑을 주제로 한 음악 중 1등이다. 그렇다고 이번 앨범이 실망스럽단 얘긴 아니고, 뭐랄까, 규모로나 작품성으로나 엄청난 작품을 발표한 감독이 그 다음에 갑자기 단편 독립영화를 연출한 것 같달까? 그냥 취향의 차이다. 나는 음악에 있어서는 블록버스터를 더 좋아하거든. 처음엔 좀 밋밋한가 싶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좋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나온 검정치마의 5개 앨범들 중에서 내 맘대로 3위 정도?
무엇보다 요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는데, 걸스카웃이라는 컨셉으로 사랑 노래를 풀어냈다는 사실이 곱씹어 볼수록 '천잰가?' 싶다. "누가 검정치마 앨범 세계관으로 영화 좀 만들어봐"라는 댓글이 있었는데, 가장 맘에 드는 한 줄이었다. 색이 바랜 멜로디를 듣다보면, 이런 저런 장면들이 떠오른다. <싱 스트리트>, <서브마린>, <조조 래빗>, <문라이즈 킹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