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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임용 Feb 08. 2020

지난 일주일의 생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유



일단 인트로 15초로 판단한다


내 입에서 '오' 같은 감탄사가 나오지 않으면 탈락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곡들에겐 가차 없이 오른쪽 화살표


6~7번 정도 누르면 곡의 하이라이트, 소위 싸비(코러스)가 나온다


이 두 번째 관문도 통과한 곡들은 일단 안정권이다


내가 만들 플레이리스트 영상에 들어올 자격이 있다


곡이 주는 직관적인 느낌에 따라 플레이리스트의 제목을 짓고


여러 곡끼리 묶어본다


곡 수와 상관없이 그 플레이리스트의 총 재생시간이 20분 내외라면 OK


영상을 만들고 유튜브에 업로드를 진행한다


이번엔 곡의 마지막으로 가서 왼쪽 화살표


약 3~4번 정도면 짙은 여운을 남기는 곡인지 흐지부지 끝나는 곡인지 드러난다.


여기까지 통과하면 플레이리스트를 넘어 나중에 내가 시간을 내서


한 번 찾아 들을만한 곡으로 분류된다




음악을 추천하겠다는 생각

한 곡 말고 두세 곡씩 묶어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겠다는 생각

그것을 주기적으로 하겠다는 생각

그 작업을 유튜브를 통해 시작하겠다는 생각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지난 11월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만들던 플레이리스트였는데, 일주일째 손을 떼고 있다


위 방식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스스로를 보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 플레이리스트에 모든 노래가 위 방식으로 선별된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플레이리스트만을 위한 음악이 없었냐고 물어본다면 죄송하다, 있었다(극소수지만 열심히 들어주시던 분들이 계시기에)


유튜브로 돈을 벌려는 것도 아니었고, 영상을 올리지 않으면 누가 해코지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시작 후 100일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영상을 올리겠다는 목표


돌아보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 목표를 앞에 두고 정작 무엇이 중요한지를 잊어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부끄럼 없이 얘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의 부분인


음악에 싫증이 나버렸다




나는 음악 듣는 걸 정말 좋아한다


그런데 곡의 몇몇 부분만 듣고 기계적으로 곡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저 방식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악으로부터의 경험을 없애버렸다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를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듣고, 첫 트랙부터 다시 마지막 트랙까지 한 번 더 들었을 때


바이 바이 배드맨 <Because I Want To>의 브릿지에서 웨스 앤더슨의 영화 장면이 떠올랐을 때


쏜애플 [이상기후]의 잔잔한 첫 트랙 <남극>이 끝나고 <시퍼런 봄>의 화려한 첫 기타 리프가 귀를 때렸을 때


Wilco <Pot Kettle Black>, 검정치마 <Fling; fig from france>, Yuck <Get Away>, 12 rods <Make-out Music>, 이스턴 사이드 킥 <당진>,


내가 사랑하는 이런 곡들은 모두 내게 강렬한 몰입을 선사했다


그 심리상태는 육체로 전이되어 등골이 오싹하고 소름이 돋는 전율로 이어졌다


이게 바로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그럼 이런 곡들로만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보자


완전한 몰입, 피부에 돋는 소름을 만들어 내는 그런 음악들로 말이다


문제 해결?




음악에 싫증이 나고, 그 후에 내가 음악의 어떤 면을 좋아해 왔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이 과정은


앞선 나의 고민을 끝내지 못하고, 오히려 또 다른 고민을 낳았다


여기엔 근본적인 딜레마가 있다


음악의 강렬한 몰입은 그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면 들을수록 약해진다


예상치 못한 것이 나왔을 때 정신은 순간적으로 음악에 집중하게 된다


반면 반복은 결국 모든 것을 예상 가능하도록 만들어버린다


나는 한 음악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쾌감을 느끼기 위해 그 음악을 반복해서 듣지 말아야 한다


아니 애초에 듣지를 말아야 한다


우연히 좋은 음악을 찾아 듣고 그 음악에 몰입하는 순간


그 음악은 수명을 다해버린다




아직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결국엔 죽을 때까지 완전한 몰입을 위한 음악을 찾아


한순간들만을 소비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간간히 그 음악들을 반복해서 들으며 그 순간을 쓸쓸히 회상하는 수밖에 없겠지




어쨌든 플레이리스트도 다시 만들고 글도 쓸 생각이다


그 안에서 지금 이 딜레마를 해결할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번엔 양을 목표로 삼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3일 전부터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음악들을 다시 찾아 듣고


괜찮은 노래들을 찾아 반복해서 듣고 있다


완전한 몰입을 주는 음악들은 아니기에 오히려 내가 곡에 몰입하려 노력해보고 있는데, 썩 잘 되는 것 같진 않다


어쨌든 최대한 솔직하게 해 볼 생각이다


당장에 소름이 끼칠만한 곡은 아니지만


적어도 듣고 소름이 끼쳤던 적이 있는, 그리고 나는 아니지만 남에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곡들로 모든 작업을 해나갈 예정이다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몇 가지 있다


그건 차차 풀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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