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을 향해 내딛은 첫발
나는 스스로를 경험주의자라 인식한다. 그것은 어쩌면 내 안의 예술성 때문인지 모른다. 내 신체를 통해 그 현장에서 직접 받아들이는 그 분위기와 감각에서 마주하는 임의적이면서도 유일한 현실이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그런 예술성이다. 굳이 정의란 걸 해보자면 그렇지만 한마디로 새로운 곳에서 영감을 받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이번에도 영감이 필요하긴 했다. 특별히 이번 여행은 어떤 ‘전환(Switch)’의 차원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도였다. 유럽에서 3년 간 지내면서 숱한 미국인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미국이란 곳에 대해 낯설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한창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나이에 꼭 경험해야만 하는 국가라는 것도 느꼈다. 그런 미지의 세계를 꼭 만 서른이 되는 시기에 경험해보고 싶었다.
마침 지인의 소개로 평소 가보고 싶었던 학교에서 주최하는 컨퍼런스에 신청하게 되면서 한 달 간의 미국 여행 계획이 시작됐다. 그리고 지난해 영국을 떠나기 전 방문했던 브리스톨 호스텔에서 만난 캐서린 할머니의 초대가 떠올라 이메일을 보냈더니 얼마든지 오래 머물러도 좋다고 하셨다. 그렇게 미국 중서부 지역과 남동부 지역의 루트가 확정됐다.
하지만 내게는 치명적인 취약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운전이었다. 무엇보다 운전면허라고는 5년 전 취득한 뒤 장롱에 잠들어 있는 게 다지만 뉴욕시를 제외한 곳에서는 차가 없이는 이동 자체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우버나 리프트 같은 택시 서비스가 있다고는 하나, 버짓 트래블러인 나 같은 경우에는 부담되는 가격일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내 기도는 응답되었고, 운전을 할 수 있는 언론사 인턴 동기 오빠와 로스 엔젤레스(LA)에서 만나 차를 렌트할 수 있었다. 또 결론적으로 다른 곳에서도 차는 모두 해결되었다. 그렇게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된 후 10시간 반 정도의 비행 뒤 LA에 도착했다.
일단 하늘에서 본 LA의 첫 인상은 영화 라라랜드 첫 장면에 나오는 하이웨이들, 그리고 그 도로 위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차들이었다. 또 잘 정리된 길 위에 지어진 프로방스풍의 아름다운 집들과 키 큰 야자수들이 여기가 캘리포니아라고 얘기해주고 있었다. 하늘에서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공항에서는 ‘Welcome to the United States’를 보는 순간 뭔가 울컥했다. 남들 다 가는 미국을 이제야 와보는구나 싶어서였다. 그리고 특별히 내가 오랫동안 안고 있던 두려움을 이기고 온 곳이면서도 가장 오랜 기간 집을 떠나온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살 때는 사실 근처에 저렴한 여행지도 많았기 때문에 큰 생각 없이 훌쩍 떠날 수 있었지만 미국은 대륙도 다르지만 막연히 낯선 것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길이나 무게, 온도 등 측정단위도 다르고 유럽과는 또 다른 미국만의 문화가 어떨지 가늠이 잘 안 됐다.
그리고 미국 땅에서 처음으로 만난 미국인은 바로 입국심사관이었다. 자고 일어나서 부스스한 상태에서 일명 ‘벙거지 모자’인 버킷햇을 푹 눌러쓴 채 심사대 앞에 섰다. 오랜 대기 끝에 꽤 지친 얼굴이었을 것이다. 그런 내 눈 앞에 타이거 우즈를 연상케 하는 흑백혼혈의 입국심사관이 보였다. 영화에서 자주 보던 그 짙은 청색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꽤 젊은 청년이었다.
미국에서의 첫 입국심사라 살짝 긴장한 미소로 여권을 주며 “Hello” 하고 인사했다. 그런데 심사관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였다. 안 그래도 큰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몰라 순간 잠이 화들짝 깨버렸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