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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희감성 Jul 31. 2019

서른에 만난 미지의 세계, 미국 (2)

잊을 수 없는 입국심사

나는 그의 손에 들린 내 여권을 가리키며 물었다.


“뭐가 잘못됐나요?”


“No no no, 미국엔 처음이에요?”


“네, 처음이에요”


“와우, 환영해요! 당신 이름은 어떻게 발음하나요?”


내 이름을 설명해주자 내 입술을 열심히 쳐다보더니 완벽한 발음으로 내 이름을 따라했다.


“잘하셨어요! (There you go!)”


뿌듯한 얼굴로 그는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소희, 무슨 일 하나요? 뭐 예를 들면 여배우라든지”


내 귀를 의심하고 웃었다. 그도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매우 짓궂은 농담이었지만 압박적이고 무서울 거라 생각했던 입국심사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직감한 순간이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단기간 영어를 가르쳤어요. 뭐 그렇게 영어를 잘하진 않지만 기회가 돼서...”


나는 네이티브 영어 화자 앞이라 약간 부끄러워 하면서 대답했다.


“나보다 영어 잘하는 것 같은데?”


그는 또 무심한 듯 농담을 던졌다. 나는 그런 그의 태도에 그저 당황스럽고 놀라워서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어서 내 여행 일정에 대해서 몇 마디가 오고 가다가 그가 물었다.


“언제까지 미국에 있어요?”


“XX일에 뉴욕에서 떠나요”


“나 사실 8월에 한국 가는데. 휴가로. 그때 당신도 한국에 있어요?”


“네 있어요. 서울에요”


“그럼 8월에 우리 거기서 만날 수도 있겠네요?”


또 이렇게 불쑥 들어오는 이 작업의 끝은 어디인가 싶어 또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어색하게 한국에 가면 이태원에 꼭 가보라며 이야기하고 그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는 진지하게 이태원을 많이 추천받았다며 대답했다. 정말 서울에 가긴 가나보다 했다.


그렇게 빵빵 터지는 유쾌한 인터뷰가 끝이 나고 그는 내 여권에 도장을 쾅 찍은 뒤 얼굴에 가득 미소를 지은 채 건내줬다. 난생 처음 입국심사관이 짓궂게 추파를 던지는 경험을 해보긴 했지만 마치 이탈리아 남자들이 숨쉬듯이 그러하듯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는 이탈리아 혼혈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공항을 나선 뒤에는 에어비앤비 숙소로 향하는 택시를 불렀다. LAX 공항은 듣던 대로 정말 붐볐다. 보통 30분에서 50분 정도로 오랜 시간 대기해야 한다고 나왔지만 운 좋게 근처에 있던 택시가 내 요청에 응해줘서 5분 만에 금방 탈 수 있었다.


택시 기사는 멕시코 출신의 유쾌한 아저씨였다. 한마디로 투머치토커(Too much talker)라 할 수 있는데 그의 유쾌한 입담 덕분에 LA의 지독한 교통체증 가운데서 지루하지 않게 올 수 있었다. 그가 투머치토커였기에 LA 교통이나 생활, 경제, 이민정책 등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배울 수 있었다. 이후 여행에서도 정말 크게 도움이 될 만한 부분들이었다.


그리고 체크인한 에어비앤비 숙소의 호스트는 일본계 미국인 여성과 프랑스인 남성 커플이었다. 미국에 온 지 하루가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만난 이들이 모두 전형적인 백인 미국인이 아니라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만큼 이곳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란 것을 실감하기에 충분한 첫 날이었다.


나 같은 예술적 경험주의자에게는 이런 한 장면 한 장면이 매우 소중하다. 만난 사람들과 그들과의 대화, 그 장소의 날씨와 그 날의 공기의 향기 등이 모두 역사를 이루는 하나의 조각들이 된다. 그렇게 삶속에서 영원히 빛날 수 있도록 이렇게 영감 가득한 경험의 순간들을 기록하는 작업은 스스로가 마치 호머가 된 듯 삶이 만들어내는 역사에 심취하게 되는 효과마저 생기게 한다.


어쨌든 그만큼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기록들이다. 특별히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내딛은 첫 발이기에 기억속에 더욱 생생하게 남아있다. 비록 미국에서 가장 짧은 시간 머무른 곳이긴 하지만 내게 미국이란 곳에 대한 강렬한 첫인상을 남겨준 LA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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