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킹의 메시지는 복음이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기반으로 한 해석을 담고 있으니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누르시면 됩니다)
모든 미디어 컨텐츠가 그렇겠지만 유독 영화는 한정된 시간 안에 함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감독의 의도를 여러 상징적 장치를 통해 드러내는 컨텐츠 유형이다. 그래서 대사 한 줄, 장면의 구도 하나, 주인공의 의상이나 눈 색깔 하나하나까지가 모두 의도에 따라 세심하게 제단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관객들의 잠재의식에 친숙한 요소들과 함께 새로운 메시지를 함께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법이라 할 수 있다. 스파이더맨에서 유명한 장면으로 회자되는 장면인 달리는 지하철을 멈추게 하는 씬에서 스파이더맨의 포즈가 바로 그 전형적인 예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림으로써 인류를 구원하는 그 모습을 연상케 함으로써 관객들의 잠재의식에 스파이더맨의 영웅적 이미지를 친숙하게 안착시키기 때문이다.
(출처: Marvel)
(그렇다고 스파이더맨이 성경적인 메시지들로만 가득차 있냐? 그건 아니지만 관객의 호응 유도를 위해 전략적으로 이런 장치들을 이용한다는 거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곳이 할리우드, 전형적인 기독교 배경의 국가라는 것을 기억하자)
라이온킹도 마찬가지다. 그냥 어린 애들이나 보는 애니메이션 정도로 치부하거나 동물들 실사화를 어떻게 정교하게 했나, 비욘세 노래가 어떤가 정도로만 보면 지루해서 잠이 쏟아질 게 뻔하다. 실제로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그런 후기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과 달리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고 온 것 같다는 목소리들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본래 라이온킹이 디즈니의 명작으로 손꼽히고 또 워낙 팬들이 많기도 하기에 영화의 메시지보다는 이번에 개봉한 실사화 자체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클래식이 왜 클래식인가. 클래식은 영원하다. 읽고 또 읽어도 보고 또 봐도 새롭고 그 의미가 깊고 오묘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번 라이온킹의 실사화 버전을 평가할 때에는 더 엄격한 기준이 제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몇 차례 같은 작품을 관람해서 내용을 다 아는 관객들에게 기존 메시지를 얼마나 새롭게 잘 전달했는가도 새 버전에서 중요하게 볼 만한 평가요소일 것이다.
이에 필자는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말하고 싶다. 1994년에 개봉한 원작과 동일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알라딘과 달리 특별한 각색이 없다. 그래서 만족스럽다. 왜냐하면 라이온킹의 주제의식 자체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 주제의식은 또한 전 세계 판매량 1위인 책 성경의 메인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라이온킹이 성경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니? 이는 진정한 복음이 뭔지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진정한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 우리의 영은 그의 영,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영적 정체성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요한1서 4장 15-17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다소 파격적일 수 있다. 하지만 본래 복음(ευαγγελιον)은 헬라어 원어로 '믿기 힘들 정도로 기쁜 소식'이란 뜻이기 때문에 충격적인 게 정상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님이 그러하시듯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라이온킹에서 전달하는 메시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무리 어린 심바가 치기 어린 선택으로 인해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해도 그가 동물의 왕 사자라는 정체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기는 그 정체성을 잊었다 해도 가만히 있어도 다른 동물들을 떨게 하는 위엄 있는 그의 외모가 어디 가지 않는다. 아무리 잘못된 실수를 했다 해도 그 훌륭한 왕인 아버지의 정체성과 능력을 그대로 물려받은 자이기 때문에 결국 그 우월한 능력으로 악에 맞서는 것도 그의 몫이다.
성경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죄가 우리의 본래 정체성을 좌지우지할 수 없게 하기 위해 죄가 없으신 유일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그 죄를 해결하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셨다.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닫고 누려야 한다. 진짜 예수님으로서, 유다의 사자로서의 정체성을 누려야 한다.
요한1서 4장 9-10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내 안에 누가 있는지 알게 되면 더 이상 시간낭비할 것이 없어진다. 왕국의 생태계가 위험에 처해 있는데 이를 구원할 유일한 능력을 갖춘 자가 굼벵이나 먹으면서 '하쿠나 마타타' 하고만 있으면 누구에게 이득인가? 능력 낭비인 셈이다. 세상은 그를 필요로 하는데 말이다.
라이온킹의 메시지는 복음이다. 이 같은 복음이 우리의 마음을 만지는 순간 우리는 감동을 받고 스스로에게도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내 안에 계신 이가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이인데 (계15:3) 나는 과연 그의 부르심대로 살고 있나? 그렇지 않다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인가? 이런 질문이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자유로워진다. 내가 굼벵이나 먹으면서 죄책감에 시달리며 과거에 매여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자유를 느낀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에 차오른다. 이는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모두 적용되기 때문에 정확히 이유를 모른다 해도 우리의 영혼이 힐링을 받게 된다. 즉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을 실제처럼 잘 그려냈다고 해서 배우들이 노래를 잘한다고 해서 아기 심바가 귀엽다고 해서 감동을 받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대작에 숨은 메시지가 알게 모르게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이런 폭발적인 인기는 이미 그 내용이 알려져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어쩌면 예견된 것인지 모른다. 할리우드 대작들이나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고전 작품들의 메시지가 그러하듯 그 안에는 우리가 잘 알면서도 잘 알지 못하는 복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매달 날아드는 청구서에 지친 우리의 영혼을 향해 무파사는 이렇게 말한다.
"Look inside of you, Simba. You are more than what you have become. You must remember who you are"
(네 안을 들여다보렴, 심바. 너는 현재의 너보다 그 이상의 존재란다. 너는 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