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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쥰세이 Oct 27. 2024

채용 담당자에게 보낸 유서




제출 서류 :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셀프’ 광고물

         (손 편지, PPT, Word, 포토샵, 일러스트 등 그 외 모든 영역 가능)  



  손편지를 써야 할 것 같았다. 눈에 들기 위함이었겠지만 지긋지긋한 과정을 끝내버리고 싶어서 유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서 ,  

주변보다 더 늦어질 거라던 교수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자퇴 신청서에 사인을 받아냈다. 그 걸음으로 편입학원에 등록했다. 그때의 나는 공부하고 싶은 학문을 전공을 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마음을 동하게 하고 열과 성을 다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공학용 계산기를 두드리며 차량이 지나갈 때 교량의 기둥이 받는 하중은 내가 찾는 답이 아니었다. 



대학 편입을 준비하던 시간 동안 나의 작정은 자살이었다. 이미 전년에도 지원한 대학에 몽땅 떨어져 버린 내가 다시 일 년을 준비한다 해도 합격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미량의 자신조차 없었다. 대학에 또 떨어지느니 내가 먼저 어딘가로 떨어지겠다는 계획이었다. 수단은 공부뿐으로 제한했다. 공부하다가 죽는 일. 즉 죽을 만큼 공부하는 일이었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다. 불안해질 때면 자살 시도를 했다. 공부에 투신하는 일은 가고 싶은 대학의 학과로 나를 환생시켰다.  



동경하던 회사에서 몇 년 만에 내가 준비하던 직군 채용공고를 게시했다. 나를 옥죄던 강박증이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 몇 년을 허비하며 조금씩 건강을 되찾아갔을 때였다. 눈이 번쩍 떠졌다. 예상 밖의 일이라 거리를 쏘다니며 지원하는 태도를 다짐했다. 몇 년간 이 일만을 생각하며 모아 놓은 글감을 추리고 단어들을 문장으로 연결했다. 문장을 써서 수상한 공모전 수상작들도 첨부했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수상과 경력란의 개수에 불안해질 때면 도서관 벽에 걸린 시계 속 숫자도 외면한 채 시침 분침 초침을 꽉 잡고 있는 한 가운데 나사를 보며 흔들리는 마음을 고정했다. 그럴 때마다 생각장[1]에 적었다. ‘오늘의 투신’.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시간으로의 투신이었다.  



YYYY년 MM 월 DD일 일요일 오후 세 시, 메일을 받았다.

‘고민을 거듭하느라 메일이 늦어 송구합니다. 안타깝게도 금번 저희 채용에서는 함께하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 면접 때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진심이 너무 많이 느껴져서 꽤 오랜 시간 고민을 하였으나 좀 더 경력이 많은 분을 뽑게 되었습니다. 계속 이 일을 하시게 된다면 언젠가 일터에서 만나 뵈게 되길 바랍니다.’ 



금요일 저녁까지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일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답이 왔다. 예상한 대로 나로 인해 시간이 더 걸렸다. 포트폴리오의 글이 면접으로 이끌었고 면접에서의 진심이 통했다고 나를 위로했지만 올림픽 시상식의 은메달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아도 결국 떨어진 것이었다. 내가 쓴 글들을 모두 읽어주었고 나를 만나 주었기에 납득이 가고 승복할 수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다. 전부를 보여줬다. 내가 쓴 글들을 보여줬고 세상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끙끙 앓으며 여기까지 오는 시간이 더뎌지게 한 강박증에 관해서도 처음 본 그들에게 말했다. 묻기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내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을 전부 벗은 것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얼마간 이 일을 피해 다녔다. 다른 일도 생각했다. 거리를 걸으며 보이는 사람들의 자리에 나를 대입시켰다. 무심히 게시물을 넘기던 엄지손가락이 멈춰 선 곳은 I 대행사의 인턴 모집 공고였다. 언젠가처럼 다시 눈이 번쩍 떠졌다. 이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았다. 형광등 아래 한숨이 쌓인 무거운 공기 속에서도 그들과 같은 일로 고민하고 염려할 수 있다면 내가 준비한 직군이든 다른 직군으로서든 상관없었다. 새 모집공고가 내가 이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역할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투신의 연속이었다. 대학에 시간에 활자에 투신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자리로 투신했다. 눈을 뜨면 다음 날로 환생했다. 그리고 오늘의 생을 이 유서에 투신한다. 그리고 닿을 수 있다면 I 대행사에 투신하고 싶다. 계속 어디론가 무언가로 투신하고 싶다. 이 일은 세상에 수많은 일 중 일부겠지만 나에게는 전부라 믿고 싶다. YYYY 년 MM 월 DD 일 오전 열 시 첫 수업, 광고학 개론 교수님을 기다리던 다소 시린 설렘과 인상 깊은 광고를 발표하는 떨림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그리고 집착으로 때론 애증으로 나에게 이 일이 전부다. 



이 유서는 나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어 이 일을 놓으려 했던 나의 몽매한 결정에 불복하는 항소이‘유서’이자 헤매고 실수하며 이곳저곳 부딪쳐서 길을 넓히고 멀리 돌아가다 늦어진 지각 사‘유서’이다.  

 배상 ,  


      


[1]순간의 생각이나 감상 따위를 적어두는 종이 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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