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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쥰세이 Oct 27. 2024

텍스트 비가 나의 안쪽 부분을 젖게 했다




  비의 계절이다. 나는 여름을 비의 계절과 태양의 계절로 나눈다. 내주까지 날씨 애플리케이션 속 비구름이 가득 찬 비의 계절을 지나고 있다. 이 계절은 살갗에 자리 잡은 모공 위치를 알려준다. 금방이라도 땀방울이 흘러버릴 듯이 아슬하게 맺혀있다. 이 계절 안에서 내가 잠겨져 있는 습기를 낮추는 건 괜한 일이 될 것만 같다. 차라리 내 안의 습도를 높여 보기로 했다. 이습치습, 습은 습으로 다스려보려 했다. 땀에 젖어 몸통에서 쉽사리 빠지지 않는 티셔츠 같은 바깥 대기보다 내 안을 훨씬 더 안이 젖어가게끔. 내 안의 습도를 높이는 방법을 알게 된 건 이천십구년 비의 계절에서였다.  



  러시아에서 돌아온 엄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베가스로 출국했다. 엄마가 없는 집에 아빠도 오지 않았다. 한 달이나 전화도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내가 집에 혼자 있게 해주기 위한 엄마의 조치였다. 일이 없었기에 복합터미널에 입점해 있는 영풍문고를 들락거리던 날이 대부분이었다. 입구를 지나 이곳저곳 어슬렁거리다 보면 그 책이 쌓여 있던 스팟에 멈춰 서 있었다. 멎은 발은 더 나아가지 않는다. 멀뚱히 커버를 바라본다. 사람 형상을 에두른 것인지 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것인지 모를 반 고흐 그림[1]의 살아 움직이듯 흘러 퍼져가는 무거운 블루. 붓끝에 고여있다가 왼쪽 가슴 끄트머리에 떨어져 버린 것만 같은 피빨강. 천구백팔십구년에 나온 도안이었다. 올드한 폰트로 써진 보라색 타이틀을 보며 중얼거렸다. ‘대체 어떤 시대이길래… 상실의 시대… 참…’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의 글을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살아오면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순간을 만난다. 알아채지 못하기도 하지만 삶의 무언가와 어딘가는 나에게 사인을 보내온다. 스웨터에 붙은 도깨비바늘처럼 나에게 닿아 있을 때는 인연이라, 살갗을 콕 찌를 때는 필연이라 불렀다. 여러 번 되풀이하여 찾아보면 한 가지가 가장 큰 이유일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기 시작한 건 현실도피였다. 왜 꼭 그의 소설로 도피하려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갈 곳이 없어서 가던 서점. 생각 없이 돌아다녔던 내부. 서점 스태프들이 쌓아놓은 책 무더기. 나의 발걸음이 멈춰 선 곳. 이것들이 거시적 필연을 이룬 것만 같다. 할 일도 갈 곳도 없어서 갔던 서점은 하루키 월드로 가는 입구가 되었다. 지긋지긋하고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어찌해보지 못하고 도피했다. 어디든 현실보다 나을 것 같았지만 그건 불시착이었다. 도망친 내가 펼친 곳은 상실의 시대였다. 분실이 아닌 상실이었다. 다른 것으로 대체 할 수도, 될 수 없는 존재에게 붙여지는 상실이었다. 서점 영업시간이 종료되었어도 소설 속 등장인물의 심정을 헤아려보며 터미널 근처 모텔촌을 끼고 돌아 돌아 돌아 집으로 갔다. 눈으로 들어온 텍스트 비가 나의 안쪽 부분을 젖게 했다. 밤늦게 걸어 돌아오는 길에 지나는 왕복 팔차선 교차로, 차 한 대 지나지 않는 늦은 시간에 여러 개 주광색 조명이 달린 높은 가로등 불은 내리는 부슬비를 하나하나 밝히고 있다. 비가 오는 줄도 몰랐다. 이미 안이 젖어 있으면 그런 것만 같다. 그 계절은 대부분 밤새 글을 읽고 오후에 일어나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말아먹고 다시 하루키 월드로 갔다. 그해 비의 계절은 홀로 동떨어져 오롯이 쉬는 겨를이 되어 주었다. 내 안의 습도가 높아져 세상이 습한 줄 몰랐던 지난 비의 계절이었다.



      

[1]별이 빛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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