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리에이터 후기
크리에이터는 사실 23년도에 봤던 영화인데, 보고 나서 생각이 많아져서 한참 쏟아냈던 영화여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내용을 글로 남겨보려고 리뷰를 남긴다. 그리고 요즘 다시 SF에 꽂혀서 이것저것 찾다가 적어둔 조각글을 보게 됐다. 재미있어서 남겨두고 싶다.
영화 추천도 : ★★★☆☆
보고 나와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긴한데 추천할만 한가 하면 .... 별 세 개 정도.(두 개 반?)
나는 SF 장르를 좋아한다. 상상력으로 구축된 미래 세계가 흥미롭고, 그 속에서 인간의 본성이 오히려 가장 극단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완벽히 통제된 미래 환경 속에서 드러나는 원시적 인간성—그 간극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즐겁다. 이 영화도 그렇다.
일단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느낀 것은 강렬한 불쾌함이었다. 가족 서사 때문에 눈물을 흘리긴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영화의 서사 구조에서 느껴지는 모순이 너무 많아서 영화가 끝난 뒤에 극장에서 메모장을 함참을 붙들고 있었다.
어떤 점에서 불쾌함을 자극했는가.
두 가지 정도 포인트가 있는데, 첫 번째는 로봇이 비효율적이라는 점에서 느껴진 불편함이었다.
일차원적인 관점이지만 이 지점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서사 전체 구조를 모순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은 인간을 편리하게 돕기 위한 것이 아닌가?
로봇이 인간을 닮아가는 것이 궁극의 형태라면,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애초에 뭘 위한 로봇이었는가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무너지는 우주정거장에서 인간 아이의 보폭으로 뛰어갈 수밖에 없는 로봇이라니. 너무 비효율적이야...
게다가 로봇의 극치가 인간이라는 세계관은 인간을 창조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만 같다.
창조주를 닮은 피조물이라는 것에서 상하관계를 느끼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절대 이 영화를 즐겁게 감상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다.
영화의 배경은 인간이 로봇을 토벌하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단순한 인간의 실수로 한 도시가 파괴되었지만, 책임은 로봇에게 전가되고 '다시 만들면 되기 때문에 제거할 수 있다'는 논리로 소탕이 이어진다.
이러한 시선은 창조주가 피조물을 무가치하게 대하는 태도처럼 보였다.
만약 로봇을 감정 없는 예술 작품으로 간주한다면 이런 태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에게 고통과 감정을 부여한 상태에서, 동시에 무생물처럼 다루고 있었다.
제작자조차 의도하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그 안에서 나는 ‘인간이 신의 위치에 서고 싶어 하는 욕망’을 읽었다.
물론 내가 인간이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에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나 로봇을 무생물처럼 대하며 감정과 인식을 가진 존재를 만들고도 그것을 감동의 장치로 활용하는 방식은,
나에게 창조주의 관대함으로 포장된 오만처럼 느껴졌다.
글을 쓰면서 이 영화에 대해서 계속해서 파고드는 과정이 재미있긴했지만 영화의 세계관이 나와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기술이 인간을 닮아야 한다면, 우리는 먼저 인간의 불완전함과 책임을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많은 로봇에 대한 묘사가 인간에 가까울수록 완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인간에 대한 가벼운 불쾌함을 느끼게 된달까...스스로를 어쩌다 완전하다고 생각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로봇이 인간과 같은 기능을 탑재하게 되면 인간보다 로봇이 상위의 개체가 되지 않나?
인간이 그렇게 넘어서고 싶은 영원의 벽을 로봇이라면 넘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그 벽을 나는 결코 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로봇이 인간을 닮을 수 없을 것이라서 영화에서는 로봇을 그렇게 그리는 것일까? 단지 상상력의 산물로써?
그렇다면 이렇게 열이 나는 것이 우스운 일일 테지만...상상력일 뿐이라도 인간 스스로를 가장 완전한 개체로 보는 관점에 나는 동의하지 못하고 오만함을 느끼고마니 '뭐'든 느끼고 싶어서 영화를 보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시킨 영화.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이런 저런 망상과 그로부터 느껴지는 감정들을 써내려가는 일이 더 즐거웠던 영화.
이번 달에는 전기양을 완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