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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욱 Mar 15. 2019

중국 성장 시리즈: 6살 한국아이의 중국 침투 작전

EP 1: 振旭의 13년 중국생활의 시작

2004년 초가을, 한국어조차도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던 사당동 출신의 한 어린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중국 땅에 놓이게 된다. 완전한 자아 형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이는 단순히 비행기 타는 것이 재미있고 새로운 환경이 그저 신기했지만 즐거움은 거기까지였다. 상하이 남쪽에 작은 도시인 嘉兴 (자싱)에 발을 디딘지 얼마 안 지나, 중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아이는 유치원 첫날에 6년 인생 중 가장 고달프고 슬픈 하루를 보내게 된다.


아이의 험난한 모험기가 시작되기 전에, 잠깐 자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자싱은 상하이 남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한국인들에게는 김구 피난처로 유명한 곳이다. 그 외에 南湖 (남호), 月河街区 (월하 거리) 등의 작고 소소한 관광지가 있는데, 솔직히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기억에 남는 거라곤 대부분의 방과 후 시간을 보낸 집 앞 수영장, '톰과 제리'의 제리를 닮았다고 해서 Jerry 라는 내 인생 첫 영어 이름을 지어준 영어학원, 한국인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유치원 등이 전부다.


김구 피난처


유치원 첫날에 울보가 되어버린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현지 아이들은 자기들의 모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한국인이 그저 이상해 보였고, 아이 또한 한국어 한마디 할 줄 모르던 그 녀석들이 신기해 보였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핸드폰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너무 감사하다, 말도 안 되는 보디랭귀지로 소통하고 아날로그 방식의 놀이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거다. 말 한마디 안 통하지만 같이 놀고 시간 보내는 게 그저 즐거웠던 그때가 아마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 아닌가 싶다.


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중국 현지 유치원들은 점심 먹고 2시간 정도 따로 낮잠 자는 시간이 있다. 40분 동안 운동장에서 땀 뻘뻘 흘리며 뛰어놀고 들어온 6살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니 '낮잠 타임'이 어느샌가 '수다 타임'으로 바뀌어 있었다. '수다 타임' 덕에 중국어에 제법 능숙해진 아이는 한국인의 아이덴티티와 멀어짐과 동시에 현지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장난치고 선생님과도 문제없이 대화하는 '振旭' 가 되어있었다 (振旭는 아이의 중국어 이름이다).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중국인들은 은근히 오픈마인드한 종족이다. 그들의 문화에 잘 스며들기만 하면 베프 (베스트 프렌드)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이러한 의리가 넘치고 서로 아끼고 도우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중국 특유의 문화는 어린 유치원 친구들을 통해 振旭 에게 전달되었고 다가올 13년 중국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다.


유치원 낮잠 공간


아이는 타고난 토커 (Talker)가 아니었다. 특히 말 한마디 안 통하는 환경에서는 더더욱 과묵하고 말이 없었다. 은근히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쓸데없는 생각이 많았던 아이는 중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서서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 능숙한 중국어와 함께 소통의 벽이 사라짐과 동시에 아이는 현지 친구들과 '우정'이라는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자싱이라는 도시에는 소수의 관광지와 기본적인 공공시설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끼리 모여서 수다 떨고 뛰어노는 게 유일한 낙일 수밖에 없다. 비록 아무 생각 없이 땀 흘리며 노는 게 전부였지만 아이의 인생에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막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 아이에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별의 시간은 아이에게 추억을 정리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가까운 현지 초등학교에 등록한 아이에게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두려움도 컸지만 신기하게도 내심 '괜찮아, 중국어 잘 하니까, 이제 문제없어' 하면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더욱 컸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긍정적인 영향도 미칠 수 있지만 자아 형성이 완벽히 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경우, 자만심으로 이어질 확률이 크다. 아니나 다를까 어휘능력과는 별개로 새로운 교육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한마디로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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