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 ‘야행성 한국인'에서 '한중밸'을 이루기 까지...
쉽지 않았다. 1년 반 동안의 현지 초등학교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아마도 아이 인생에서 가장 걱정 없이 놀고 신나게 배우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유치원에서의 추억을 마저 지우지 못한 채 터벅터벅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교문을 지나니 마치 다른 차원에 들어선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만들어낼 소중한 추억들을 예측이라도 했던 것일까, 멋쩍은 웃음과 함께 '인생에 한 번밖에 없을 초등학교 입학 날에는 유치원 때처럼 울지 않을 것이다'라는 비장한 마음을 지닌 체 아이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었다.
요즘도 비슷하지만 당시 중국 현지 초등학교들은 '이렇게 힘들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규칙적인 환경 속에서 고강도의 학습과 규율을 통해 학생들의 학구열과 성적을 억지로라도 높이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현시대적인 시선으로는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당시의 순진무구한 아이는 새로 사귄 친구들과 노는 것이 마냥 행복할 때였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출석을 부른 후 운동장으로 나가 단체로 체조하고 율동하는 것이 그렇게 즐겁게 느껴졌나 보다, 얼마나 즐거웠으면 하루는 체조를 하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에게 잘 보이려고 무리한 나머지 전교생 앞에서 속옷노출을 감행하지 않나. 또 하루는 반 친구들에게 잘 보이려고 어머니가 싸주신 반찬을 자랑하다가 다 뺏기질 않나. 이렇게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아이는 어느샌가 완전한 중국인으로 변해있었고 오직 밤이 돼서야 집에서 모국의 문화를 찾는 '야행성 한국인'이 되어있었다.
'야행성 한국인'의 특징을 굳이 뽑자면 중국어 실력이 빠른 시간 내에 월등히 발전한다는 것, 너무 중국화 돼버린 나머지 한국문화의 기본인 예의범절을 까먹는다는 것 외에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러한 현상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장시간 계속되면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신 아이의 부모님은 책 속에 해답이 있다고 믿으셨다. 아이 또한 자신이 완전한 중국인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것일까, 서둘러 한국 책을 찾아 내용 길이 가리지 않고 읽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 다행히도 책 읽기에 재미를 붙인 아이는 서서히 '워라밸'(워크 라이프 밸런스)도 아닌 '한중밸'(한국인 중국인 밸런스)을 이루기 시작한다.
'한중밸'의 장점은 가족과 소통하고 모국인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데 있어서 문제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각 나라의 언어에는 각각 고유의 성격이 깃들어있기 때문에 한 명의 개인이 다수의 언어를 구사할 때 그에 따른 다수의 성격이 나온다고 한다. 아직 성격이라는 개념 자체조차 이해하지 못한 아이에게 낮과 밤을 번갈아 가며 바뀌는 문화적 엇갈림은 적지 않은 혼란을 불러왔다. 불행 중 다행일까 중국 친구들은 한결같이 변함없는 태도로 아이를 아껴주고 친구로서 더욱 편한 마음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도와줬다. 그때부터였을까, 아이는 점차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걸 즐기고 힘든 일이 있을 땐 주변 사람들과 함께 연합하여 상황을 극복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과 함께 쉽지 않았지만 즐거웠던 아이의 1학년이 끝이 났다. 갖가지 시련들을 극복하고 창피한 사건들을 뒤로한 채 아이는 중국 학교 시스템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미 너무나도 편해진 환경 속에서 친한 사람들과 새롭게 2학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지나 아이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상하이(上海)라고 불리는 도시로 이사 가게 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된다. 어린 마음에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너무나도 싫었던 아이는 앞으로 다가올 11년의 행복한 상하이 생활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불만과 우울감을 품고 상하이로 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