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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욱 Mar 27. 2019

중국 성장 시리즈: 상하이 입성

EP 3: 11년 대장정의 시작

시작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가흥이 그립다고 징징대기만 하던 아이는 곧 시작될 11년간의 스펙터클한 여정을 상상도 못 한 채 상하이에 입성하게 된다. 현재 아시아 경제의 중심이 된 도시라 할지라도 당시 아이 눈에게는 그저 회색빛 감옥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진회이난루(金汇南路)를 중심으로 발전한 상하이 한인타운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에서 중국어 한마디 못해도 편하게 살 수 있는 지역이었다. 대형 한인마트와 함께 당구장 / 노래방 / PC방 등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한국기업들의 잇따른 중국 진출은 해당 지역의 유동인구를 급속도로 성장시켰다. 이러한 서울 뺨치는 환경 속에서 아이가 지난 1년 반 동안 힘겹게 배운 중국어를 잊어버릴까 봐 걱정하신 부모님은 급히 집 앞에 위치한 국제학교에 입학을 추진하였다. 새로운 환경에서 또다시 친구를 사귀고 적응해야 한다는 현실은 아이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1년 반간의 훈련을 거친 덕일까 아이 안에는 다시 한번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SUIS (Shanghai United International School)

아이가 입학한 학교의 정식 명칭은 'Shanghai United International School'로 당시 존재하던 다른 국제학교들보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을 요구함과 동시에 상당히 좋은 교육환경을 유지하는 학교로 알려져 있었다. 400미터 남짓의 운동장, 수백 명이 수용 가능한 대강당과 지하의 푸른빛 수영장은 가흥이라는 기준에 머물러있던 아이의 세계관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긍정적인 성격 때문이었을까 단순 무식하기만 했던 아이는 화려한 교내 시설들에 혹해 행복한 학교생활, 새로운 친구들과의 즐거운 교제를 기대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아이의 행복하기만 한 상상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입학식 전에 '오리엔테이션 데이'라는 하루 동안의 신입생들을 위한 예비 교육과정이 있었는데, 아니다 다를까 모든 과정들은 영어로 진행이 되었고 오로지 '한중 밸'에 초점을 두던 아이는 난생처음 회의감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 날을 시작으로 하루하루 새 학교 생활을 이어가는 일상 속에서 아이는 지난 1년 반 동안 열심히 중국어를 습득하고 문화를 배우려 발악했던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물론 친구 사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들 틈만 나면 모여서 놀기 바빴고 모든 수업과정이 영어로 진행되는 동안 아이는 그나마 몇 명 있던 한국 친구들에게 숙제 물어보기 급급했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학생들은 이미 한 학기 동안 서로 친해져 있었고 2학기에 갑작스럽게 들어간 아이가 침투하기에 친목의 벽은 꽤나 견고했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던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대만 친구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그들을 통해 점심시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축구를 접하게 된다. 당시 아이는 축구를 잘하지도 않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친구들과 친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갇혀 그나마 가흥에서 조금 알아주던 달리기 실력을 기반으로 열심히 연습하기 시작한다. 감사하게도 시간이 지나 축구는 아이 인생에 내린 한줄기 빛과 같이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천천히 친목의 벽은 허물어졌고 아이는 가흥에서 얻은 인간관계의 경험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그렇게 영어 배우기와 축구에 모든 것을 투자한 아이의 상하이에서의 첫 학기가 무난하게 흘러갔다. 3학년으로 올라간 아이는 무언가에 홀린 듯 과감히 영어 배우기는 내려놓은 채 프로선수 저리 가라 하는 열정으로 축구를 했고, 축구가 인생의 전부인 듯 살았다. 그렇다고 아이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부모님 또한 아이를 축구선수로 키울 생각이 없었지만 아이한테만큼은 축구가 전부인 3학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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