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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May 27. 2021

마당에서 아이를 키웁니다

이미 40대 초반에 알아버린 전원생활의 매력



유년시절의 나는 너무 심심하면 집 옆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릴 수 있는 만큼 큰 원을 그린 후 작은 돌을 굴려가며 혼자 땅따먹기를 하다가 그래도 심심하면 운동장에서 잠이 들었다. 분한 시간을 흙에서 보냈을 정도로 전형적인 시골아이였다.


심심해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오빠 옆에서 어깨너머로 배 한글을 깨친 이후 본격적으로 책을 읽게 되었고, 일상의 무료함을 달랬던 나는 그렇게 세상의 절반 책을 통해 간접경험으로 채워갔나 보다. 덕분에 상상력이 키워졌고, 더 넓은 세계를 향해 꿈을 꾸게 된 것은 내 유년시절, 외롭고 적막했던 나머지 너무나 심심했던 시골생활 덕분(!)이었다.


대한민국 국경 밖을 떠며 보헤미안느의 삶을 살다가 돌연 인구 20만이 조금 넘는 으로 돌아만 3년째 살고 있는 나를 건축학과 교수님은 유턴 세대라 표현했다. 그때 알았다. 나와 같은 상황이 또 하나의 트렌드라는 것을.


부모님의 아늑한 품을 찾아 오랜 기간 떠나 있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가족에 대한 절절한 향수도, 그리움도, 한국음식에 대해 미치도록 갈망했던 식에 대한 정신적 없다. 매일 같이 부모님을 만나고, 언제든 맘 놓고 먹을 수 있는 김치가 지천에 널렸고, 어디서든 쉽게 하디 귀 순두부와 콩나물을 구할 수 있다.


친정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아이를 마음 놓고 키울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이 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환경이다. 리고 아마도 영원히 떠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제고 시나마 몇  국경 밖으로의 외출은 있을지언정 어쨌거나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의 삶은 대만족이다.


게다가 여전히 시골인 우리 집이 이제는 너무나 좋다. 마당! 잘 가꾸어진 한껏 멋을 낸 정원보다 박한 마당이라 불리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나에게 그러했듯 아이의 놀이터. 아파트처럼 다양한 놀이시설에 폭신한 레탄 매트가 깔려 있지 않, 인근에 세워진 한국스러운(!) 봇대마저 정겨운 이 마은 나를 키워냈고 또 대를 이어 내 아이도 키워주고 있는 셈이다.


5월5일 어린이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이른 아침부터 마당 한 귀퉁이에 준비해 놓은 풍선나무! 잠에서 깬 아이는 감탄하며 그의 하루를 만끽했다.


시골살이가 더없이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 삶의 여유다. 그리고 개방된 공간을 넓게 쓰는 매력을 단독주택에서 찾는다면 그건 단연코 마당이다. 언제든 활기차게 뛰어나가 강아지 빠방이와 함께 축구하고, 킥보드를 타고, 자전거를 타는 아이는 아파트에서 찾을 수 없는 '우리 집'에 대한 개념을 확장한다. 이 같은 공간에 대한 아이의 인식 훨씬 더 여유롭고 그러운 기질을 들어 줄 것이라 게 한다.


햇살이 좋은 주말에는 수영복을 입고 마당에서 물놀이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수영장에, 워터파크에 못 가는 대신 큰 목욕통과 한 번에 대량으로 부풀리는 물풍선을 잔뜩 샀다.
본격적으로 더워지면 이 마당에서 할 수 있는 더 많은 놀이거리를 찾으리라.


곧 다가올 9월이면 다섯 돌이 되는 아이는 제법 어린이의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다. 나를 지치게 했던 병치레도 사라졌고, 스스로 할 줄 아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손이 덜 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함께하는 대화는 순간 경이롭고 황홀한 시간을 만들어준다. 어쩜 5세와의 대화가 이리도 재미있을 수 있을까!


조부모 육아의 영향으로 할머니 언어 표현을 투영해 내는지라 아이와 대화하던 한 지인은 아이에게 "어째 비가 올 것처럼 무릎이 쑤시거나 허리가 아프지는 않니?"라고 묻기도 했다. 이 모습을 하고서는 '노친네' 표현을 거침없이 활용하는 까닭이다.


아이는 이따금씩 유치원 그의 친구들이 어디 어디 아파트에 산다며 '엄마 우리도 아파트로 이사 가요'라고 조르기도 한다.

그때마다 집 주변에 또래 친구들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든다. 그래도 마당 있는 집에서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파트로 이사 가지 않는 20% 미만의 죄책감이 사라지는 건 고집스러운 마법이다.


마당 넓은 집에서 아이는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매 순간을 만끽하고 있으며, 자연 속에서 성장해 간다. 잔디 풀을 뽑으면 옆에서 호미를 가지고 놀다가도 잡초들을 모아 가져다 버릴 줄도 알고, 할머니께서 귀하게 여기며 마당 입구로 옮겨다 심은 목단이 화초가 잘 자라는지의 여부를 관심 갖고 지켜보기도 한다.


내 경험이 최선은 아니겠지만... 유년시절에 더 더 심심해져야 비로소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갈 내면의 힘을 얻는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오늘도 아이의 심심한 하루에 힘(!)을 보탠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그 스스로 한글을 깨치기를 바라기에 조바심이 나더라도 한글을 가르치지 않고 애써 참아본다. 금보다 더 심심해져야 책을 스스로 읽으려 노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다린다. 라떼가 된 거니? ㅠㅠ


아이가 재미를 알아버린 아이패드로 보는 유튜브 동영상 등 번잡한 것들로부터 잠시나마 떨어져 있는 마당에서의 시간은 반가운 이유다. "엄마, 나 아이패드 봐도 돼?"를 반복하는 아이가 화면을 벗어나 집 주변을 둘러보기를 바라면서 마당으로 데리고 나온다.


함박눈이 내렸던 날, 마당에서 엄마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빠방이와 함께 뛰어놀며 그의 발자국을 찍던 아이, 시골살이 여유가 주는 대체불가한 매력이다.


지난주 일요일, 마당에서 따스함 정오 햇살 아래 몇 시간이고 풍선과 물아일체 되어 물놀이를 하는 아이를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이런 환경에서 육아를 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더 욕심내지 말고, 이만큼만 하고 살 수 있으면 충분하겠구나...라고 말이다.


집에서 피자를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편리한 생활인프라는 없지만 그 정도는 포기해도 다. 시골이를 하며 서적 풍요로움 속에서 아이의 영유아기를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고, 힘들다 하시면서도 손주 육아 재미에 활력을 얻으시는 부모님 곁에서 아이를 마음 놓고 키울 수 있어서 다행이고, 또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심내지 않겠다, 천천히 호흡하겠다는 다짐...

이상 보헤미안 유턴 세대의 시골살이 마당 육아 예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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