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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Oct 18. 2021

만 5세 쁘띠 니꼴라(Le Petit Nicolas)

어느덧 말썽꾸러기가 된 6세 아들 육아란...


친정엄마는 아이와 함께 있는 나를 볼 때마다

'요령이 없다'라고 하셨다.

즉, 아이를 데리고도 충분히 다 할 수 있는데 나한테는 그런 요령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거고, 그래서 요령 없는 엄마와 있느라 아이 또한 힘든 거라고 말이다.


나도 안다.

매번 잘하려고 했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나에게 육아마음 깊자리한 무거운 바위였다. 이와 함께하는 시간이든 아니든 아이 생각만 하면 늘 죄책감이 뒤따라 괴로웠다. 잘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엄마라서, 완벽한 엄마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그렇지 못해서, 사랑만 주고 싶은데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혼자이고 싶은 시간도 간절해서 말이다.




어느덧 만 5세, 아이가 자랐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아이와 단 둘이 4박 5일 여행을 했다. 아이가 태어난 이래 단 둘이 이렇게나 오래 있어본 적이 없었지만 막상 하고 보니 우리는 꽤나 멋진 팀이었다. 서울에서 시작해 강원도 고성 동해바다와 인천 서해바다까지 누비는 동안 아이는 그 스스로 제 몫을 다 해냈고, 나는 아이에게 하나 둘 가르치는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아이의 성장에 감탄했다.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구나!"


라고 나의 놀라움을 표현하면 아이는 으쓱해했다. 어른들이 미처 느끼지 못하는 동안 아이는 른 속도로 자라고 있었 것이다.


물론 놀라운 성장은 지적인 영역뿐만이 아니었다. 아이의 성장 그 가파른 상승곡선 속에는 엄마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엄청난 개구쟁이가 되어가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음을 말이다.


평소 얌전아이라서 "이런 애는 따로 볼 것도 없어. 잘만 먹이면 하루 종일 한 번 울지도 않아"라고 동네 경로당 할머니들이 인정한 공인 순둥이였다. 그런데 최근 아이는 급격하게 변하였다. 엄마인 나로서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이 늘어났다.


사과를 먹으라고 깎아주면 냉장고에서 케첩과 초콜릿 시럽을 꺼내다가 사과에다 온통 범벅을 하고 있음을, 우유를 마시라고 한 컵 따라주면 우유 아저씨와 싸우겠다고 온갖 말싸움(?)을 벌이며 투쟁하고 있음을,  내다 버린 박스와 페트병을 모아다 접착테이프로 대포가 달린 탱크를 만들설명하고, 밴드 에이드 백여 개를 모조리 꺼내다 휴지심을 다섯 개 합쳐 칼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빨래집게 수십 개를 모아다 쌍철봉라며 만들어 흔들어 대는 것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닌 지경에 이르렀을 즈음... 나는 아이를 야단치려다 문득 랑스 유학시절에 킬킬거리며 읽었던 그 책이 떠올다.




소파와 그의 옷과 얼굴에 온통 초콜릿 시럽으로 범벅을 하고 천진난만눈빛으로 가득한 만 5세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 가슴속 깊이 끓어오르는 한숨을 내쉬말했다.


"너 진짜 쁘띠 니꼴라구나!"


아이의 '엄마,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는  표정을 보면서 떠올린 그것은 바로 프랑스 성인동화(?) Le Petit Nicolas 였다.


르 쁘띠 니꼴라! 국내에서는 '꼬마 니콜라'로 책과 영화가 소개된 바 있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식 유머와 쉬운 문장을 독해할 수 있는 덕분에 프랑스어 입문하는 외국인 학생에게 필수적으로 한 챕터 이상을 가르치는 국민 교과서이다. 


장 자끄 샹뻬라는 프랑스의 삽화가 덕분에 국내에서 유명한 꼬마 니콜라 시리즈는 프랑스에서 영화로 개봉된 바 있다. 책으로 읽는 즐거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얼마 전에는 사라진 머리끈을 찾으려 침대 부근 여기저기를 뒤적이다 침대 밑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여다본 어두운 그곳에서 나는 흡사 다리와 몸통이 분리된 실루엣의 이상한 느낌에 등꼴이 오싹했다. 흠칫 놀라는 내 옆에서 어느새 다가온 아이는 긴장된 몸짓으로 이실직고했다.


"엄마 저건 내 인형이에요"


외삼촌이 그의 캠핑카에 애지중지하는 데코 중 하나였던 노키오 인형을 못내 마음에 들어 하는 조카에게 내어준 것이 대략 일 년 전이었다. 당시 아이는 외삼촌을 졸라 그 인형을 성취한 기쁨을 만끽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일 년 만에 침대 밑에서 사지 절단된 사체(!)로 발견된 것이었다.


머리끈 찾으려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에게 아이는 뜻밖의 선물을 안겨줬다. 5세다운 솔직한 고백과 용기!


헉~ 저게 뭐지? 하고 놀라워하는 나에게 아이는 되려 침착하게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다리가 찢어졌었노라 고백했다. 그리고 본인이 침대 밑에 숨노라 말했다. 초보 엄마는 이와 같은 식의 솔직함 앞에 화를 낼 수 없었다. 오히려 용기 있게 고백한 아이가 대견했다.


"그런데 왜 침대 밑에 숨겨놨어?"


라고 묻자, 엄마가 알면 혼날까 봐 그리했노라고 또 솔직하게 말해줬다. 그 순간 나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용기 있게 솔직하게 말해줘서 엄마는 감동받았다고 칭찬해줬다. 엄마에게 모든 걸 이실직고한 후 아이는 그 스스로 인형을 꺼내겠다며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이어갔다.


언제부터 침대 밑에 방치되어 있었을지 모를 인형 사건은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우리 집 쁘띠 니꼴라는 기행(!)을 멈추지 않고 매일 새로운 사건사고로 내 바쁜 일상에 이벤트를 더한다.


요즘 푹 빠진 종이접기! 유튜브를 보면서 따라접기는 육아의 신세계를 열어줬다. 직접 접은 멀리나는 종이비행기 색칠 삼매경에 빠지는 것은 덤이다!


오늘 브를 보며 아이와 하나씩 접은 두 개의 종이비행기는 일요일 오후 내내 집 안을 날아다녔다. 아이가 소파에 올라가 비행기를 날리니 거실 식탁에 앉아 집중하여 설계하는 내 머리에도 와 부딪히고, 몸에도 부딪히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수시로 글자를 알려달라, 숫자를 알려달라, 어떤 색으로 엄마 종이비행기를 데코해 주면 좋겠느냐, 칼을 만들자, 방패를 만들어 달라 등등 쉼 없이 물어대는 통에 그나마 있던 정신조차 혼미해졌다.


요즘 5세 아이는 BTS에 푹 빠져 춤을 따라하고 가사를 흥얼거린다. 며칠 전 BTS를 어떻게 쓰냐고 물어 알려 주었더랬다. BTS 그것은 아이가 처음으로 쓴 알파벳이 되었다.
레고조립은 더 정교해지고 창의적인 형태로 만들고 있다. 설계도면에 따라 만들지 않고, 여러 레고 부속을 모아 만들고 싶은 것을 창작해 완성해 내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만 5세, 최근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아이는 그 스스로 숫자도 깨우치고 한글도 배워가며, 태어난 이래 유지된 기나긴 문맹 시대와 기꺼이 단절하고 있다. 그 과정은 부모에게 놀라움의 연속이고, 그간의 보람과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어 이 시기 육아는 그 자체로서 일상에 활력이 된다. 


엄청난 개구쟁이로 자라고 있는 평범한 사내아이 만 5세의 기록, 이래서 자식을 기르면서 더더 애착을 형성하게 되는가 싶다.




쁘띠 니꼴라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아이를 위해 즉석에서 전자책을 다운로드하여 읽어주기 시작했다. 까르르 웃는 아이 옆에서 오랜만에 눈높이가 맞춰지는 순간, 20대 초반에 재미나게 읽던 그 느낌이 이젠 나의 일상이 되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쁘띠 니꼴라 사는 나와 아이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한숨만 나오는 시간들이 더없이 행복한 것임 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쯤 되면 출산이 꼭 그렇게 후회되는 것만도 아니다. 엄청난 고생 끝에 이런 낙이 오다니, 힘들더라도 집안에 '쁘띠 니꼴라' 한 명쯤은 기꺼이 환영하며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상 만 5세 사고뭉치의 귀여운 몸짓과 빵빵 터지는 언어 표현에  마침내 잠시 눈 멀어버리고야 만 초보 엄마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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