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를 두드리며 머릿속에 담긴 생각들을 글로 풀어냈다.오랜 시간을 기저귀와 엄지손가락만 한 플라스틱 약통에 가루약을 흘리지 않고 시럽에 섞어 아기에게 먹이는 일상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랬던 내가 다시 나만의 다시 세계를 만들고 그 손으로 무아지경 키보드를 두드리다니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긴 시간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 갈증 인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마침표를 누르고 나니 해갈이 되었다.
브런치는 내게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힘이었다. 내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적으며, 우주공간을 유영하듯 다양한 작가들의 브런치를 방문하여 그들의 글을 읽었다. 병간호 육아라는 세계에 갇혀 있는 동안에 온라인 글쓰기 세계는 빠르게 변해 있었다. 글로 표현하는 소재와 주제, 소위 트렌드가 많이 변했음을 느꼈다. 다양한 자극은 머릿속에 떠올리고 지우고 잊혔던 글감을 표현하게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브런치에 다시금 글을 써 올리는 '작가'가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요령 없는 엄마 & 가족의 대소사에 무심한 딸 & 세무에 무지한 인테리어 창업 여성 & 시간에 쫓기는 혼돈의 건축학과 대학원생, 나는 욕심이 많아서였을까.
바빴고 또 너무나 바쁜 일상을 사는 이유로 글을 쓰는 시간만큼 편하고 좋은 휴식이 없었다. 다만 글을 쓰고 앉아 있을 여유도 사치처럼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다. 시간에 쫓기며 시간에 대한 압박에 시달렸다. 그럴수록 '작가의 서랍'에 쌓여있는 글감만큼 써야 한다는 부담도 커졌다.
일->일-> 일 또 일... 일하고 돌아오면 정신없이 반기는 육아와 집안일... 게다가 창업과 동시에 시작한 대학원 수업까지 묵묵히 시간이 흐르듯 그 바쁨과 피로와 스트레스 삼중고를 견뎠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뒤돌아 지나온 나의 길을 대견해하는 날이 오리라 희망을 놓지 않았다. 사실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2020년, 2021년 어느덧 2년이 흘렀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는 시구를 떠올릴 때마다 불안했다. 겁 없이 도전한 이 길이 옳았을까 수도 없이 자문하는 시간들이 있었다. 어쨌든 시작한 이상 견디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여 버틴 '무식했던 시간들'이 흘렀다.
어느덧 2022년이다.
아이는 그 스스로 자라서 유쾌한 다섯 살이 되었고 내년이 지나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창업한 회사는 이제 서서히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내부적인 요건들이 갖추어진다는 것은 나만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그만한 인력과 시간이 투자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장생활에서는 '일당백'으로 혼자만 잘해도 되는 일들을 해왔기에제대로 된 조직을 갖춘다는 것은 어려웠다. 나만 '돋보여서는' 안된다는 것과 함께 걸어갈 적합한 인재를 만나야 한다는 것들을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알게 되었다.
브런치가 전해준 2021년 깜짝 선물! 그 무엇보다 값진 통계자료를 보니 글을 쓸 수 있도록 수시로 독려하던 브런치, 그리고 각성하던 나,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뭉클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글을 썼다.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문득 글감이 떠오르면 스마트폰을 꺼냈고, 운전하며 잠깐 신호대기 시간에 문장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잠들기 전에 쓰기를 며칠을 이어가며 완성한 적도 완성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어느덧 3년 차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일상을 글로 쓰는 Life 파워블로거였던 나는 이제 육아 전문 글을 쓰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아이가 자라는 인상적인 순간들을 문자로 기록하는 것은 글로 쓰는 것이 가장 편한 소통방법으로 살아가는 엄마인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이라 생각했다.
며칠 전에는 줌으로 진행된 대학원 특강을 끝내고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설계하고 사람 만나고 상담하고 저녁도 굶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놀다 꼬질꼬질해진 아이를 씻기고 재워야 한다는 현실이 보였다.끝나지 않는 또 일이다. 순간 왜 이렇게 일상이 힘든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그러자 엄마가 수업하는 동안 옆에서 얌전히 밥을 먹고 나서 숨죽여 레고를 조립하며 놀던 아이는 자신도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이 말했다.
"엄마 힘들면 하지 마. 내가 돈 벌게"
"네가? 무엇으로 돈을 벌려고?"
"내가 여섯 살이 되면 유튜브 해서 돈 벌게. 엄마 그때까지만 일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서러웠던 감정이 쿡쿡 웃음으로 터졌다.
"그 대신 엄마가 유튜브 하기에 필요한 장비를 다 사주면 내가 돈 벌게"
요즘 다섯 살 아이가 하는 말이다. 돈을 번다는 생각은 감히 해보지도 못했을 나의 5세와 비교하면 요즘 아이들 참 빠르다. 게다가 유튜브로 돈 번다는 말이 이 세대 아이들에게는 익숙해졌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말은 학창 시절 성실한 학생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에 합격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 노동하여 보상을 급여로 받아 살아가는 고전적인 취업 프레임은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불을 지핀다. 내 아이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을 수차례 해왔던 것도, 외삼촌이 유명 유튜버라는 것도 5세 녀석에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했다.
어쨌거나 지친 엄마에게 위로하겠다는 생각이 너무 기특하고 대견하고 또 고마웠다. 이런 일상을 틈틈이 적을 수 있는 나는 어쨌거나 육아 전문 브런치 작가인 게 자랑스럽다. 사실 라이프 글을 쓴다는 것이 뭐 별것인가.
화려한 싱글이었을 때는 혼자 잘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다가 출산하고 아이가 생기면 애 낳는 얘기부터 아기 자라는 얘기 쓰는 것 아닌가. 변화된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아이와의 관계를 통해 매료되고 새로운 글감을 얻는 워킹맘 나의 현실이다.
2020년 이 브런치 태동이 그러했듯이 앞으로 아이는 매일같이 자라날 것이고 브런치가 나에게 내어준 이 소중한 온라인 공간도 나름의 소명의식을 갖고 그와의 소중한 이야기로 채워져 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