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지금 파킨슨병이 문제가 아니에요. 중풍을 더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파킨슨은 약을 먹으면서 꾸준히 관리하면 되지만, 중풍은 쓰러지면 힘들죠"
아버지를 모시고 방문한 한의원에서 들은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한의원 원장님은 나의 임신과 출산까지 기나긴 과정을 진료하여 주셨으며, 나중에 아이 이름의 한자까지 지어주신 분으로 각별한 인연을 지닌 분이었다. 그분께서 아버지의 건강상태에 대해 꼼꼼히 진료하신 뒤 내린 결론은 물과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1. 수영장에 자주 가서 물속에서운동하기
2. 목욕탕에라도 자주 가서 몸을 물에 푹 담그기
3. 집에서 매일 반신욕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파킨슨 진단 이후 여느 환자들이 그렇듯 우울증이 생겼고,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으셨으며, 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 것을 내켜하지 않으셨다. 즉, 수영장이든 목욕탕이든 매일 같이 이동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럼남은 한 가지, 집에서 반신욕을 하실 수 있게 욕실을 바꾸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2년째 인테리어 & 리모델링 업체를 창업하고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 아버지를 위한 욕실 리모델링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욕실 공간을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가장 필요한 것은 반신욕을 할 수 있는 욕조와 세면대였다.
부모님께서는 10년 전에 마당 한편에 여섯 평 남짓한 황토방을 손수 지으셨고, 그 안에 아주 작은 욕실을 만드셨다. 크기가 작은 욕실이다 보니 꼭 필요한 것만 넣으셨다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작년 겨울에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하고 나서부터는 양치나 세수를 할 때 세면대가 없는 욕실에서 무릎을 굽혀 사용하기에 부담이 될 거라 짐작했다. 물론아버지께서는 한 번도 불편하다 말씀은 하신 적이 없었지만 나는 내심 신경이 쓰였던 터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 판단했다. 부모님 두 분이 지내시는 황토방 공간의 여러 불편함을 알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지금껏 외면해 왔었는데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리모델링의 미션은 아버지를 위한 반신욕이 가능한 욕조와 세면대를 시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간은 터무니 없이 비좁았다.
좌: 3D로 설계하며 모든 기구의 사이즈를 확인하고, 시공팀장님과 전화로 협의하며 시공을 준비했다. 우: 3D 렌더링 이미지
이 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다 넣으려다 보니 변기 사이즈 하나까지도 조율해야 했다. 여느 욕실 설계보다는 까다롭고 예민할 수 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좁아서 모든 것들이 불편하게만 느껴질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시공 협의를 끝내고 발주를 완료했다. 시공을 기다리다 보니 이제 곧 아버지가 만족스러운 반신욕을 하실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졌다.
세면대와 반신욕 샤워 배관을 나누어야 해서 바닥을 전체 철거하고 샤워 배관을 신설했다. 철거한 바닥에는 타일시공으로 마무리 하고 1일 양생기간을 두는 것으로 1일차 시공 완료!
2일차 시공은 벽면을 시공 -> 천장시공 -> 바닥시공으로 이어진다. 기존 지저분했던 함몰창문 부분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어머니께서는 매우 흡족해 하셨다.
좁은 욕실이었기 때문에 더 더 젠다이를 조적하여 세면대를 사용할 때 선반사용으로 상부 공간에 여유를 두었으면 했고, 욕실을 정면에서 보았을 때 시각적으로 넓어 보일 수 있도록 벽 패널 색상 배치를 다르게 설계해 착시효과를 주었다.
사용후 건조가 빠른 이 욕실은 바닥자재는 엠보가 있어 미끄러지지 않아 낙상의 위험도 적고, 슬리퍼를 신지 않고 사용할 수 있어 위생적이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시공2일차에 드디어 완성된 욕실은 위생적인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리모델링의 힘이 이런것이구나... 나의 역할에 다시 한 번 자부심을 느꼈더랬다.
인테리어 & 리모델링 업체를 창업한 이후 처음으로 손을 대어 보는 [우리 집] 공사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누구도 요구사항을 말한 적이 없었지만, 내가 모든 걸 관찰하고 필요한 것들을 설계하고 준비하는 시간 동안 느낀 감정은 뿌듯함이었다. 그리고 시공이 다 끝났을 때 느낀 성취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벅찼다.
특히, 좁은 공간에 들어갈 작은 욕조를 찾기 위해 새벽까지 많은 사이트를 돌아다닌 덕분에 굉장히 만족스러운 꼭 맞는 제품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비로소 황토방 욕실 리모델링의 포인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작은 욕실에 필요한 것은 빠짐없이 다 들어가 있니?"
라고 감탄하는 친척들과,
"사장님, 좁은 공간에 너무 욕심을 내신 거 아니에요? 어떻게 이렇게 다 설계해 집어넣으셨어요?"
라고 농담하며 일의 힘듬을 달래던 나의 멋진 시공 팀장님!
"우리 아버지를 위한 욕실이에요.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아버지를 케어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설계했어요"
라고 답하던 나...
효심(!)으로 시작되었던 우리 집 리모델링!
창업 1년 반 즈음에 찾아온 슬럼프도 극복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우리 집 공사는 부모님께는 쾌적한 욕실로, 그리고 나에게는 이 일을 하며 느끼는 보람으로 다시금 마음을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 셈이다.
아버지는 시공이 끝난 다음날 반신욕조에 몸을 담그셨고, 그 잠깐 동안 물을 네 컵이나 드셨다. 체내 노폐물이 빠지는 것이니 많이 드시라 연신 물을 떠다 드리면서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며칠 만에 혈색이 달라지셨음은 물론이다. 반신욕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 학기 남은 나의 건축학과 석사 논문의 주제는 우리 아버지와 같은 분들에게 맞는 공간을 준비하는 것으로 풀어낼 수 있다. 나의 공간에서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있도록, 몸이 불편한 분들이 내 집에서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한 주거공간을 고민하는 연구다.
어쩌면, 부모님을 위한 황토방 리모델링을 계기로 논문 작성에 더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