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너무나 당연히(!) 육아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 특유의 징징거림, 우는 소리가 싫어서 아이들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고, 하나 있는 어린 조카가 "꼬모~"하며 반가워해도 그 환영마저 부담스럽고 귀찮게 느껴지는 내 성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애당초 내 평생 아이를 낳아 키워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육아로부터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살아왔다. 육아에 관해 관심이 없었으므로, 무지했고, 또 무지했던 채로 나는 임신 준비 4개월, 임신기간 무려 9개월 도합 13개월 (임신기간에 대해서는 다음에 쓰기로 하겠다)을 지나 2016년 9월 9일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82년생 김지영]의 시간들
아기는 초보 엄마의 극한 무지에도 불구하고 첫 돌 무렵까지는 별다른 아픈 곳 없이 잘 자라줬다. 아마도 고독한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그의 운명이었으리라. 그런데 철딱서니 없는 남편과 나를 엄마 아빠로 만들어 준 아기는 첫 돌이 시작되는 날로부터 돌발진(roseola)을 시작으로 세상의 온갖 질병을 다 끌어안고 살기 시작했다. (당시 돌발진이 시작된 곳은 아기의 첫 돌 기념으로 방콕을 여행할 때였다. 정신없이 달려간 방콕 범룽랏 Bumrungrad 국제병원의 어느 연륜 있는 소아과 의사는 아기의 온몸에 핀 열꽃을 보고 뷰티풀~~ 이라고 말하며 (매우 예쁘게(!) 피었다고)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기도 했다)
세상에 이렇게 무수히도 많은 질병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이가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너무나도 당연히 그 모든 것은 내 몫이 되었다. 나는 태어나 이렇게 큰 고통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상태로 입퇴원을 반복하는 육아 전장에 파병되었고, 그곳에서 진심으로 장렬히 전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나에게 그 어느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단 1분이라도 어디론가 도망칠 수 없는 현실에서 극심한 우울증과 함께 세상의 모든 절망감과 상실감을 뒤집어쓴 채 견디고 또 견디어 냈다. 그것이 내가 겪은 2017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82년생 김지영]의 시간이었다.
아이가 입퇴원을 한 달에 두 번씩 반복하면서, 대형병원이라는 병원은 모조리 찾아다니는 생활이 일상이 되면서 아이의 첫 돌 이전에 세워둔 모든 계획은 어긋났다. 생활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점점 내 인생은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내가 찾아든 곳은 친정엄마의 곁이었다. 잠시 잠깐이라도 친정엄마의 손길은 너무나 감사한 것이었다. 또한 엄마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육아가 마치 다 저절로 되는 것만 같은 정신적 안정을 얻었다. 물론 당시 상황이 그러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그 시기에 아픈 아기를 안고 갈 곳이 어디 있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 친정살이는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지당하고 너무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2018년 조부모 황혼육아가 고통받는 노년의 삶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는 순간에 우리 집도 별다를 바가 없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육아를 '적성에 맞지 않는다'라고 하면 안 되나요?]
친정엄마가 나에게 "남들은 둘, 셋을 낳아 잘들 키우는데 너는 어째 한 명을 가지고 어쩔 줄 몰라하니" 하며 타박하셨을 때, 너무나 초연하게 내 입에서는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래요"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니 어미가 되어 적성에 맞고 안 맞고 가 어디 있어? 라며 엄마는 야단을 치셨지만 나는 이쯤 하여 우리 '적성'과 육아를 말해야 하지 않겠냐고 되묻고 싶다.
그랬다. 적성에 맞지 않아서... 어떤 일이든 적성에 맞고 안 맞고를 묻고 따지고 답하는데 왜 육아는 개개인의 적성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엄마들이 다 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이 적성여부를 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으며, 확인할 기회도 주지 않고, 교육을 받지 않았을까? 왜 아무도 이 세계에 대해 체험 또는 실습해 볼 수 있는, 학습할 기회를 주지 않았느냐 말이다. 지금껏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은 단연코 육아라는 생각에 주저함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말이다. 진심으로 고백하건대, 육아현장에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왜 이렇게도 적성에 안 맞는 일을 검증도 없이 선택했을까 하는 생각에 하루하루 후회의 연속이었더랬다.
아픈 아이가 하루 열댓 번 싼 똥을 손이 마를 새 없이 씻겨 옷 입히는 것도 정말 적성에 맞지 않았고,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한 숟가락도 채 먹이지 못하고 식은 채 방치되거나, 아이가 밥을 입에 물고 시간을 끄느라 두 시간이 넘게 밥 반 그릇도 못 먹고 있는 것도, 잠시도 엄마를 가만히 두지 않고 끊임없이 요구를 해 대는 것도 모든 게 나에게는 벅차고 싫은 일들이었다. 가급적이면 안 했으면 좋겠고, 이런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고,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시간들이 하루에 수십 번도 더 오르락내리락했다.
[숭고한 모성애를 강요하지 말라]
일본 영화 중에 다섯 살 딸을 두고 집을 나간 엄마가 한참 후에 돌아와 남편에게 고백하기를 '나는 사실 모성애를 느낀 적이 없었어요'라고 고백하는 부분이 있다. (영화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수십 번도 더 생각했던 것이 '과연 나는 모성애가 있는 것일까'였다. 내 안에 모성애는 무엇이길래 난 이토록 힘들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 지옥을 살고 있다 하면서도 내 새끼를 위해 보다 나은걸 찾아 하루하루를 바치고 있는 것일까? 숭고한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CF, 드라마, 그 외 여러 출판물 광고에서 보아왔던 이미지들 속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그동안 나는 어머니라는 이미지 속에서 숭고한 모성애를 강요당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뽀송뽀송하고 따스한 빛이 비쳐 드는 말끔하게 정리된 집에서 뽀얀 살결의 포동포동한 아가의 해맑은 웃음과 그런 아기를 높이 들어 올리며 단아하게 스커트와 블라우스, 카디건을 걸쳐 입고 정갈하게 빗은 머리칼을 하고 세상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런 엄마. 하지만 현실 속에 존재하는 그런 엄마는 단연코 없다.
힘들었다 말하기에는 어느 누구의 강요가 아닌 나의 선택이었으므로 더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내야 했다. 그리고 아이 낳고 살아 기르는 여성의 숭고한 삶에 대해 이야기만 했지 그 일상을 떠받치기 위해 한 여성의 삶을 토막 내는 엄청난 희생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아무도 말하지 않았음에 원망했다. 나는 그렇게 엄마가 되었고, 또 엄마가 되어 살고 있다. 더 이상 퇴로는 없다. 나의 이 엄청난 책임감이었든, 나의 이 엄청난 모성애였든 또는, 둘 다의 결합이었든 내가 선택하고 한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은 이상, 나를 감사하게도 엄마라 불러주는 한 아이가 존재하는 이상 나는 최선을 다해가며 육아를 수행한다.
그래서 나는 출산을 하지 않은 미혼여성들에게 꼭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 전에 반드시 이 일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인지 심사숙고해 보기를 권고하는 바이다. 직접 해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길이다. 부디 그대들의 적성에 맞는 선택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