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 육아로 인한 우울증과 분노 & 상실감에 대해 이야기했던 바 있다. 그러다 보니 임신기간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후속 글은 내가 했던 태교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
임신을 준비하며 3개월 전부터 남편과 나는 각자 매일 한 알씩 엽산을 복용했다. 엽산의 중요성은 두 말할 것도 없으니 여기서 길게 언급하지는 않겠다. 그 후, 내가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하기도 전에 남편이 입덧을 시작했다. 운전하다 차를 세워 속을 가라앉히고, 냉장고 문을 열다 구토를 하며 냉동고기를 가져다 버린 건 나보다 앞서 남편이었다. 서로 다른 대륙에서 지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쿠베르트 증후군이라고 하는 남편에게서 나타난 몸의 변화 덕분에 나는 임신 테스트를 빠르게 해 볼 수 있었다.
몸의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하던 나는 나는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비행기가 월, 금 주 2회밖에 운행하지 않는 오지 출장이었다. 임신4주차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비행기를 타고 더구나 오지로 출장을 가야 한다니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대체할만한 인력이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장지에 도착해 미팅을 하던 중에 갑자기 세상 모든 냄새가 다 맡아지는 입덧이 시작되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고통스러웠다. 비위가 상해 앉지도 눕지도 못하면서도 내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태교였다! 임신과 출산을 겪은 엄마들 누구나 태교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해 보았겠지만 말이다. 내가 무결점 태교에 도전했다며 이렇게 감히 글을 쓸 수 있는 데에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에서다. 그중 기억나는 몇 가지를 소개해 볼까 한다.
1. 태교 일기
아기의 태교일기는 임신을 확신하던 3주차 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남편과 내 이름을 상징하는 한자를 조합해 태명을 정해 두었기에, 아기의 성별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태명을 적으며 매일 일기를 썼다.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나의 하루를 태아에게 말하듯 썼으니 태중 일기가 된 셈이다. 매일 하루에 약 30~40분씩 그 날 있었던 일기를 쓰면서 인상적인 순간을 기억해 웹툰처럼 그림도 함께 그렸다.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뭐랄까 태아와 교감하려는 나의 정성을 다하고 싶었다. 많은 날들은 쓰다가 너무 졸려 (임신하면 얼마나 졸린가! 마무리를 다 못하고 잠들기도 했다. 다음날 일어나 마침표를 찍어 일기를 정리했지만 그래도 그 정성을 임신 중 단 하루도 거른 적은 없었다.
출산 당일 아침에 마지막 페이지를 기록하고 태아와 곧 만나자고 마음의 준비를 나누며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총 2권으로 이루어진 태교일기에는 태아검진마다 생긴 에피소드와 태아를 둘러싼 모든 이야기들, 그리고 나의 몸 상태변화와 심리 변화 등 임신기간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다. 나중에 내 아이가 커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 번 읽어줄지는 모르겠지만, 두 권의 태교일기는 임신기간 아이와 외부로 연결된 제2의 탯줄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태교일기가 준 영향이라면, 태아와의 끊임없는 교감을 훈련하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매 순간 나의 모든 정신은 태아에게 집중되어 있을 수 있었고, 결국 그 모든 과정이 태교였다고 생각한다.
2. 태담
평소 수다 떨기에 재능 있는 편이긴 하지만, 상대가 없이 혼잣말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주변에 누가 있을라치면 더더욱 낯부끄러운 일일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1인 1 사무실 근무였기에 개인 공간에서 일했고, 출산휴가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남편과 떨어져 혼자 지냈기에 태담 하기에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태담은 시작되었고, 태아에게 끊임없이 들려주는 수다가 이어졌다. 태아의 성별을 확인한 후부터는 미리 지어둔 이름으로 태담을 이어갔다. 의식적으로 나의 모든 순간들을 이야기로 뱃속 태아에게 생중계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태아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태동이 시작되면서부터는 태담이 절정에 달해 배를 쓰다듬으며 하는 나의 말에 태아가 반응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그래서 그 기간 동안만큼은 이런 태아의 태동과 소통을 경험을 해 볼 수 없는 남자들이 안타깝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태아와 태동을 느끼며 교감한다는 것은 임신기간 중에서 가장 축복된 너무나 멋지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3. 멀리하기
내가 생각하는 주변의 부정한 것들을 가능한 멀리하는 것도 내가 노력했던 태교의 한 방법이었다. 예를 들면, 돈(지폐나 동전)은 가급적 만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또 평소 남의 말을자주 하는 사람들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일부러 피했다. 그리고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주로하는 사람들도 멀리하고 임신기간 중에는 되도록 만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일상이 매우 간결해졌다. 사람들로 인한 갈등관계가 전무하였을 정도로 임신기간 중 나의 대인관계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또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과 악수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임신 중임을 밝히고 양해를 구했다. 이는 당시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의 임신에 무한 호의적이었던 문화도 큰 역할을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태아를 위해 좋은 것들로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행한 노력이었다.
4. 요가와 수영으로 운동 태교
평소 집에서 하루 한 시간씩 요가를 해왔으므로 임신 중에도 계속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임신 중 가능한 요가를 찾아 동작을 하나씩 해 나갔다. 약간의 자극이 뱃속 태아에게도 좋다고 하여 요가를 하는 중에도 태담은 멈추지 않았다. 특히 배가 나올수록 등과 허리에 뻐근한 통증이 계속되었는데, 요가를 하면 스트레칭이 되면서 근육을 이완시킬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음악을 랜덤으로 틀어놓고 한 곡에 한 동작씩 하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이 한 시간이 금방 지나니 무료할 때에는 요가 태교에 도전해 보시기 바란다.
수영 태교는 출산휴가를 보냈던 제주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임신 32주부터 출산휴가가 시작되었는데 남편과 함께 수영을 하며 태담했던 시간은 너무나 평온했던 추억이다. 엎드린 상태로 물에 둥둥 떠 있으면 나는 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 좋았고, 태아에게도 편안한 상태가 된다 했다. 배가 무거워 제대로 된 수영을 하지는 못했지만 하루 한 시간 물에 떠 있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던 수영 태교는 임신 중인 예비엄마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5. 먹는 태교
해외에서 지내면서 출산을 위해 일부러 제주도를 택해 국내로 들어온 이유는 딱 두 가지에서였다. 첫 번째는 산후조리를 한국식으로 잘하고 싶어서, 두 번째는 임신 초기 극한 입덧을 겪으며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서였다. 출산 전에 먹고 싶은 한식을 실컷 먹고 싶다는 너무나 이기적인(!) 이유로 난 제주도를 택했다. 여행 겸 출산을 동시에 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에 고맙게도 남편은 이의 없이 따라주었다.
잔뜩 부른 배로 찾은 제주도는 한마디로 '애 낳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먹덧 하며 자연을 보며 태교하고 출산을 위한 장소로 그만한 곳이 없었다. 전복 구이를 비롯한 각종 해산물과 흑우, 흑돼지 등등 남편 손을 잡고 동네의 구석구석 숨은 맛집들을 찾아다녔다. 덕분에 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출산 직전까지 총 17kg가 되었지만, 제한없이 먹는 순간의 그 행복함은 임신 중 누릴 수 있는 특권 중의 특권 아니겠는가.
엄마가 행복하게 먹는 것이 최고의 태교라고 생각하며 체형의 변화에 두려움 없이 마음껏 원 없이 먹고 잠을 잤던 시기, 최고의 태교가 완성되었다!
6. 잠 태교
임신 전에도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침대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많은 시간을 누워서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휴식하는걸 즐기는 대표적 집순이인 나에게 임신기간은 아주 특별한 휴가와도 같았다. 게다가 잠이 늘어나는 생물학적 변화들도 완벽했다. 쏟아지는 잠을 따라 어디에 있건 누울 곳을 찾아 잠을 잤다. 내 평생 그토록 원없이 잠을 자며 당당했던 적이 있었던가! 매순간 잠을 통해 편안함을 유지한 것도 엄연히 태교였다.
7. 미리미리 하는 출산준비 태교
임신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맘 카페에서 족보처럼 떠돌아다니는 출산용품 리스트를 하나 구하는 것으로 출산준비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처음 보는 낯선 육아용품들에 무엇이 꼭 필요하고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 이해를 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일일이 찾아보고 선택해야 하는 끊임없는 결정의 순간이 이어졌다. 난 진심으로 출산준비가 출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초보 엄마로서는 무엇이 꼭 필요한지도 모른 채 남들이 쓰는 건 다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쉬웠다. 나중에 지나고 보면 과했더라 생각되는 용품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태어날 아이가 입을 첫 배넷저고리와 가제손수건 등등을 폭폭 삶아 널어 햇볕에 말려두고 반듯하게 접어 정리하던 내 심리적 정결함은 임신 중 가장 고귀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미리미리 하는출산준비는 아이의 물건들이 하나 둘 집 안에 정리해 눈에 뜨일 때마다 존재감을 각인시켜 줄 수 있어 아이의 자리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지나고 보면 출산용품을 준비하는 그 모든 시간은 태아를 위한 정성 어린 시간이었다.
8. 음악태교
평소 집에 있는 시간에는 늘 음악을 틀어놓고 생활했기에 임신 중에도 집안에는 다양한 음악이 랜덤으로 흘러나왔다. 장르에 구별을 두지 않고엄마가 즐겁게 듣는 음악은 자연스럽게 아기에게도 전해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9. 美 태교
의식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태아의 성별이 남자임을 알았을 때는 송중기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의 드라마를 봤다. ^^;; 일상이 매일같이 아름다울 리 없지만 태교를 위해 일부러 찾은 제주도에서는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1100 고지에 들러 우거진 나무와 산을 즐겼고 오름, 에메랄드빛 바다, 신선한 공기 등에 감탄하며 태아와 교감했다. 출산 전전날에는 남편 손을 잡고 성산일출봉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태아와 함께 나누려 노력했다.
[결론]
이상 내가 도전했던 무결점(?) 태교의 기록이다. 뇌 출산 이후 감퇴된 기억력에 의존해 쓴 글이라 빠뜨린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자부하는 무결점 태교의 핵심은 정성과 노력을 더한 마음가짐이지 않았을까?
그럼 이제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태교에 공들인 아이는 도대체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부모라도 조심스러워 선뜻 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아이가 이제 39개월이므로 육아를 경험해 본 독자들은 충분히 이해해 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한다면 태교에 공들인 차이가 있거나 또는 없거나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이의 성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고, 매 순간이 골든타임인 육아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출발선이 다르다고 끝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출산 전까지 엄마는 너에게 최선을 다했다... 는 심리적 당당함이 공짜로 주어지는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