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놀아주지 않는 나쁜 엄마?

아이 스스로 놀이를 찾았으면 해

by 뿌쌍

며칠 전 아이의 발레수업에 갔다가 엄마들과의 대화 중에 말이다. 아이들이 수업을 하는 동안 엄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대화 소재는 주로 아이들 교육에 관한 이야기다. 만 3세 아이들이 교육을 하면 뭘 얼마나 한다고 그런가 싶겠지만, 한 시간 대화는 금방 차고 넘친다.


그러는 중에 아이들과 놀아주는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아, 전 집에서는 안 놀아줘요"


라고 답했다가 동시에 모든 엄마들의 눈이 똥그래지며 나를 쳐다보는 경험을 했었다. 모든 이들의 깜짝 놀란 반응에 나는 순간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그리고 내내 그 대화에 다시 끼어들기 어려웠다. 내가 마치 아이를 방치하는 엄마처럼 느껴졌을까...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나는 육아에 적성이 맞는 사람이 아니다. 아니 거의 제로에 가까운 육아 DNA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기보다는 끊임없이 살뜰히 살펴야 한다는 부담감에 괴로웠다. 좀 내려놓고 편하게 육아에 임해야 하는데 성격상 그러하지 못했던 까닭인가 예민한 나는 아이와 놀아주는 것보다는 아이를 살피고 관찰하는 것에 더 빠르게 발달했나 보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하루 종일 기저귀 치우고 먹이고 씻기고 갈아 입히고 재우고 하느라 정신없는 하루가 다 지났다. 하지만 현재 39개월 아기는 엄마와 의사소통이 99% 완벽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재미도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함께 노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아기가 "엄마 같이 놀아요"라고 하며 자신의 플레이텐트에 들어가 자신은 앞에서 운전할 테니 나보고 그의 뒤에 인형들과 앉아 있으라 하면 즐거운 표정으로 함께 하며 있어 주는 정도다.


내 아이는 엄마가 자신의 놀이상대가 아님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덕분인지 나에게는 같이 놀자는 말을 열 번에 한 번 정도를 하고, 대부분은 외할머니에게 "나랑 놀고가요 할머니~~" 하며 조른다. 다행이다. 나는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엄마라고 모든걸 잘할 수는 없다. 그러니 못하는 것을 붙잡고 실랑이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을 더 많이 잘해 주는 것이 아이에게도 이득이지 않겠는가...


아이는 그런 엄마에게 익숙해져서 엄마가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시간에도, 엄마가 씻고 나오는 시간에도 장난감들과 말을 하며 즐겁게 혼자 놀이를 이어간다. 나는 아이의 이런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아이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심심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나를 편하게 하기 위한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그 스스로 노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유년시절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상상력을 키웠던 덕분에 창의적인 일에서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안 놀아주는 것과는 반대로 아이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꼭 해주는 것은 따로 있다.



1. 책 읽어 주기

아이는 생후 2개월 때부터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모습에 익숙해져 왔다. 아이가 알아듣든 아니든 나는 매일같이 동화책을 읽어 주었다. 저녁에 씻고 나서 아빠와 함께 쇼파에 앉아 엄마가 읽어주는 책읽기는 그의 첫 돌 때까지 루틴으로 이어졌다. 한국에 들어와 18개월이 되면서부터는 집에 있는 책을 닥치로 대로 읽어줬다.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초1에게 적합한 책이나 감정 동화 시리즈 책을 반복해 읽어주었다. 때문에 아이는 20개월 무렵 트로이의 목마를 매우 좋아했다. 두 돌 무렵에는 아이가 원하는 자동차 위주의 책을 사느라 부담이 되었지만, 세 돌 무렵 지인과 동네 이웃으로부터 집을 정리하며 나오는 다양한 동화책을 무려 1톤 가득한 분량을 기증(!) 받으면서 책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해졌다. 그 덕분에 아이는 매일 색다른 책을 골라와 엄마에게 읽어달라고 조른다. 아니 조르는 것이 아니라 저녁에 아이를 씻기고 잠옷을 입으면서부터 우리는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를 서로 되물으며 고민한다.


아이는 잠들기 전에 침대에서 책 4-5권을 읽어줘도 계속 읽어달라 조르지 절대로 그만 읽자는 말을 먼저 한 적이 없다. 내가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먼저 자자고 해도 더 읽어달라 엄마를 설득하는 건 아이다. 이런 아이의 모습은 각 등장인물마다 각각 목소리를 바꿔가며 재미나게 읽어주는 엄마의 지난 노력에 대한 화답이다. 하루 40분 이상 또는 하루 한 시간 이상을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나는 아이의 놀이에 참여하지 않는 것에 대 미안해해야 하는 마음을 지운다.



가구디자인 수업에 엄마와 함께 참여했다. 아이를 위해 엄마가 직접 만든 의자에 오일을 바르는 모습



2. 원하는 대로 놀게 해 주기

오늘 점심 때는 햇살이 좋았다. 엊그제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아 정원 한켠에 쌓여 있었다. 아이는 자동차를 몇 개 챙기더니 "엄마, 눈을 치워야 해요. 제설차를 들고 우리 눈을 치우러 가요"라고 제안했다. 이럴 때 나는 흔쾌히 아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옷을 챙겨 입히고 2층 집에서 아이 손을 잡고 내려와 눈을 만지며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둔다. 그리고 옆에서 아이가 "엄마는 이렇게 해" 라고 일러주면 하라는 대로 해주지만 난 재미가 없다. 적극적으로 놀이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이는 눈을 만져 손이 시린 줄도 모르고 한 시간여 따스한 햇살 아래 포클레인과 제설차 장난감을 들고 눈과 함께 신나게 놀았고, 나는 그 모습을 한없이 지켜봤다.


얼마가 지나서였을까? 손이 너무 시릴것 같다며 이제 그만 들어가자고 했을 때, 아이는 떼쓰지 않고 선뜻 "그러자 엄마, 이따가 또 놀자" 하며 손을 털었다. 아이는 충분히 만족했던 것이다.


정원 한 켠에서 아직 녹지 않는 눈을 가지고 신나했던 아이의 제설차 놀이


집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무료할 때 적합하기로는 물감놀이만한게 또 없다. 그럴 때 나는 그 순간만큼은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게 해 준다. 나와 함께 물감을 맘대로 짜는 데칼코마니로 시작해 붓을 들고 물감을 섞다 손으로 신나게 범벅을 하고 놀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판을 깔아주고 난 지켜보기만 한다. '엄마한테 물감 뭍혀볼까?'하면 난 싫다고 답한다. 아이는 집중해 노느랴 엄마가 옆에서 말을 걸어도 대답을 안 한다. 한마디로 무아지경에 빠진 것이다. 이럴 때는 방해를 말자.



물감으로 범벅이 된 아이의 손과 자동차, 아이의 스트레스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3. 자주 데리고 다니기

나는 주로 아이와 함께 다니는 편이다. 집중해 제도를 했던 학원을 빼고는 실내 디자인과 수업을 들으러 갈 때도 자유로운 실기수업 과목에는 교수님들의 허락을 구한 후에 아이를 데려가 엄마가 무엇을 하는지 보여준다. 주민참여예산위원회 회의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데려가 회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까운 거리는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편하게 운전해 가지만, 먼길은 일부러 기차와 고속버스를 타고 가서 지하철을 타게 하고, 시내버스를 탈 수 있게 경험시켜 주는 것이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의 목적이다. 지인들을 만날 때도 같이 다녀서 우리는 무조건 '원 플러스 원'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상황을 접하고,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 길에서 배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교육이다.




아이와 집에서 좀 놀아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나는 대신에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기에는 유난이고 극성엄마다.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일부러 찾아서라도 함께 출발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엄마로서의 최선임을 아이도 알 것이다. 그러니 "트랜스포메이션~" 하며 장난감 놀이를 함께 해 주지 않았다고 하여 너무 미안해 하지 자.